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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9일 (일) 16:27 판
선조 국문 유서 | |
한자명칭 | 宣祖 國文 諭書 |
---|---|
영문명칭 | King Seonjo’s writing to his people written in Korean while he was in retreat at Uiju during the Imjin Wars |
작자 | 선조 |
작성시기 | 1593년 |
간행시기 | 조선후기 |
기탁처 | 권이도 기탁 |
소장처 | 부산시립박물관, 보물 제951호 |
유형 | 고문서 |
크기(세로×가로) | 80×40㎝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章 |
표기문자 | 한글, 한자 |
정의
임진왜란 중 선조가 의주에 피신해 있을 당시 백성들에게 내린 한글 교서
내용
임진왜란 중 선조가 의주에 피신해 있을 당시 백성들에게 내린 한글 교서이다. 장지에 10행 429자로 작성했으며,‘유서지보諭書之寶’가 세 군데 찍혀 있다. 임진왜란 당시 많은 조선인이 포로가 되어 왜군에 협력했는데, 선조는 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글 교서를 반포함으로써 포로가 된 백성을 회유해 돌아오게 하였다. 이 유서는 선조가 한양으로 돌아오기 한 달 전에 내려진 것인데, 당시 김해성을 지키던 장수 권탁權卓, 1544~1593은 이 문서를 가지고 적진에 침투해 적병 수십 명을 죽이고 포로 100여 명을 구출해 돌아왔다. 이 교서는 권탁의 후손이 보관하다가 1854년철종5 김해시 흥동에 어서각御書閣이 건립되면서 이곳에 보관되었다. 유서의 내용은 강제로 왜인에게 붙들려 간 백성은 죄를 묻지 않는다는 것과 왜군을 잡아오거나 왜군의 정보를 알아오는 사람, 또는 포로로 잡힌 우리 백성들을 설득해 데려오는 사람에게는 천민, 양민을 가리지 않고 벼슬을 내린다는 것이었다. 이 자료를 통해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으며, 당시 사용된 한글의 용례를 확인할 수 있다.[1]
부연설명
『선조 국문 유서』는 당시 김해수성장(金海守城將)이었던 권탁(權卓)이 지니고 있던 것을 집안 대대로 전해 오다가 철종 6년(1855)에 김해시 흥동(興洞)에 권탁을 기리는 현충사(顯忠祠)를 지으면서 곁에 세워진 어서각(御書閣)에 봉안되었다. 1975년 7월에 이 문서를 도난당했다가 1년 반 뒤에 다시 찾았다. 1975년에 지방 문화재로, 1988년 6월 16일에는 보물 제951호로 지정되었다. 2002년 5월부터 부산시립박물관(현 부산광역시 부산박물관)에 대여 전시되고 있다.[2]
언어학적 연구로 보았을 때 『선조 국문 유서』는 당시 만력 21년(1593)시기의 쓰여진 한글 문서로 16세기와 17세기 명청교체기 시기의 국어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3]
시각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전시 [1] 한글전시도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선조 | 선조 국문 유서 | A는 B를 반표했다 | 1593 |
선조 국문 유서 | 백성 | A는 B를 언급했다 | |
선조 | 의주 | A는 B에 있었다 | |
권탁 | 선조 국문 유서 | A는 B를 보관했다 | |
선조 국문 유서 | 어서각 | A는 B에 소장되었다 | |
선조 국문 유서 | 부산시립박물관 | A는 B에 소장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5.129623 | 129.092841 | 선조 국문 유서는 부산시립박물관에서 보관되고 있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855 | 선조 국문 유서는 어서각에 봉안되었다 |
2002 | 선조 국문 유서는 부산시립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
참고문헌
- 논문
- 이병근, 「<선조 국문 유서>의 국어학적 의의」, 『冠嶽語文硏究』,, Vol 21, 1996, 1-18쪽.
- 김유범, 「한글 고문서 <宣祖國文諭書>에 대하여」, 『국어사연구』, Vol 18, 2014, 193-218쪽.
- 온라인
- 선조 국문 유서,
『문화재청』online , 문화재청. 최종확인: 2017년 4월 9일
- 선조 국문 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