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서병원(徐丙元))
 
1번째 줄: 1번째 줄:
 
서병원(徐丙元)
 
서병원(徐丙元)
 +
 +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朝鮮臨戰報國團 慶北支部)
 +
 +
일제강점기 말 대구에서 일제의 전쟁 동원 정책에 부응하기 위하여 결성된 친일 단체.
 +
 +
[개설]
 +
 +
조선임전보국단은 중일전쟁이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던 시점인 1941년 전쟁에 협력하기 위하여 임전대책협의회와 흥아보국단 준비위원회를 통합하여 조직한 친일 단체였다. 조선임전보국단의 단장은 최린이었고 부단장은 고원훈, 고문은 박중양·윤치호·이진호·한상룡이었다. 조선임전보국단의 주요 사업은 국민 개조 실천 운동, 물자의 공출 및 헌납 운동, 국민 생활 쇄신 운동, 저축 장려와 국채 소화, 근로 보국 도장의 설치, 기타 애국 운동 등이었다 조선임전보국단은 결성 이후 각계의 중견 친일 분자를 총망라한 전국적 지부 조직을 거느렸고, 1942년 1월 5일에는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를 발족시켰다. 1941년 12월 7일 대구의 남욱정공립보통학교[현 대구서부초등학교] 강당에서 결성된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朝鮮臨戰報國團慶北支部)는 전시체제기 대구·경상북도 지역 최대의 친일 민간단체였다.
 +
 +
[설립 목적]
 +
 +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는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취지와 조선임전보국단의 강령을 실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강령은 황국신민으로서 황도 정신 선양 및 사상 통일 기함, 전시체제 국민 생활 개선, 근로 보국 정신 강화, 국채 소화·저축 장려·물자 공출·생산 확충 매진, 국방 사상 보급 등이었다.
 +
 +
[변천]
 +
 +
1941년 12월 7일 결성된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는 1942년 국민총력경북연맹에 흡수되었다.
 +
 +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
 +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는 1941년 12월 7일 열린 결성식에서 고문 4명, 상임이사 15명, 이사 36명, 평의원 46명, 감사 4명을 선출하였다.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의 이사는 정해붕(鄭海鵬), 이용우(李龍雨), [[서병국]](徐丙國), [[서병조]](徐丙朝), 서병원(徐丙元), [[서철규]](徐喆圭), 정운용(鄭雲用), 김용주(金龍周), 안병규(安炳圭), 문명기(文明琦), 이호(李浩), 이채우(李採雨), 김성재(金聖在), 김두하(金斗河), 추병화(秋秉和) 등이었다.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의 결성식에서는 조선임전보국단 단장 최린이 ‘대동아공영권 확립과 태평양’이라는 제목의 축사를 하였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한규복이 ‘조선임전보국단의 사명’이라는 제목의 축사를 하였다.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는 1941년 12월 13일 밤에 ‘정전(征戰) 관철의 밤’을 열고, 임전 보국을 위한 선전전을 펼쳤다.
 +
 +
[의의와 평가]
 +
 +
일제강점기 말 대구·경상북도 지역 최대의 친일 민간단체였던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는 일제의 전쟁 동원 정책에 부응하며 전시체제 강화를 위한 활동에 역량을 집중하였다.

2024년 2월 7일 (수) 15:45 판

서병원(徐丙元)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朝鮮臨戰報國團 慶北支部)

일제강점기 말 대구에서 일제의 전쟁 동원 정책에 부응하기 위하여 결성된 친일 단체.

[개설]

조선임전보국단은 중일전쟁이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던 시점인 1941년 전쟁에 협력하기 위하여 임전대책협의회와 흥아보국단 준비위원회를 통합하여 조직한 친일 단체였다. 조선임전보국단의 단장은 최린이었고 부단장은 고원훈, 고문은 박중양·윤치호·이진호·한상룡이었다. 조선임전보국단의 주요 사업은 국민 개조 실천 운동, 물자의 공출 및 헌납 운동, 국민 생활 쇄신 운동, 저축 장려와 국채 소화, 근로 보국 도장의 설치, 기타 애국 운동 등이었다 조선임전보국단은 결성 이후 각계의 중견 친일 분자를 총망라한 전국적 지부 조직을 거느렸고, 1942년 1월 5일에는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를 발족시켰다. 1941년 12월 7일 대구의 남욱정공립보통학교[현 대구서부초등학교] 강당에서 결성된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朝鮮臨戰報國團慶北支部)는 전시체제기 대구·경상북도 지역 최대의 친일 민간단체였다.

[설립 목적]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는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취지와 조선임전보국단의 강령을 실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강령은 황국신민으로서 황도 정신 선양 및 사상 통일 기함, 전시체제 국민 생활 개선, 근로 보국 정신 강화, 국채 소화·저축 장려·물자 공출·생산 확충 매진, 국방 사상 보급 등이었다.

[변천]

1941년 12월 7일 결성된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는 1942년 국민총력경북연맹에 흡수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는 1941년 12월 7일 열린 결성식에서 고문 4명, 상임이사 15명, 이사 36명, 평의원 46명, 감사 4명을 선출하였다.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의 이사는 정해붕(鄭海鵬), 이용우(李龍雨), 서병국(徐丙國), 서병조(徐丙朝), 서병원(徐丙元), 서철규(徐喆圭), 정운용(鄭雲用), 김용주(金龍周), 안병규(安炳圭), 문명기(文明琦), 이호(李浩), 이채우(李採雨), 김성재(金聖在), 김두하(金斗河), 추병화(秋秉和) 등이었다.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의 결성식에서는 조선임전보국단 단장 최린이 ‘대동아공영권 확립과 태평양’이라는 제목의 축사를 하였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한규복이 ‘조선임전보국단의 사명’이라는 제목의 축사를 하였다.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는 1941년 12월 13일 밤에 ‘정전(征戰) 관철의 밤’을 열고, 임전 보국을 위한 선전전을 펼쳤다.

[의의와 평가]

일제강점기 말 대구·경상북도 지역 최대의 친일 민간단체였던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는 일제의 전쟁 동원 정책에 부응하며 전시체제 강화를 위한 활동에 역량을 집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