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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씨]]의 중심 본관은 [[이천서씨]]이며, 나머지는 모두 [[이천서씨]]에서 분파된 것이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와 『조선씨족통보』에는 이천서씨에서 달성·장성·연산·남평·평당·부여 등이 갈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시조는 [[서진]](徐晋)으로 고려 때 봉익대부판도판서 벼슬을 역임하면서 공을 세워 달성군에 봉해지고 달성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세거하게 되어 후손들이 본관을 달성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였다. | [[서씨]]의 중심 본관은 [[이천서씨]]이며, 나머지는 모두 [[이천서씨]]에서 분파된 것이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와 『조선씨족통보』에는 이천서씨에서 달성·장성·연산·남평·평당·부여 등이 갈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시조는 [[서진]](徐晋)으로 고려 때 봉익대부판도판서 벼슬을 역임하면서 공을 세워 달성군에 봉해지고 달성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세거하게 되어 후손들이 본관을 달성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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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산 지역의 달성서씨는 매곡동, 상북면 좌삼리, 하북면 답곡리, 북부동 등에 거주하고 있는데, 특히 매곡동과 상북면 좌삼리 등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 지역에는 후손들이 재실과 사당을 보유하여 매년 향사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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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삼재]](左森齋)와 [[증산사]](甑山祠) 등이 있다. [[좌삼재]]는 1972년 양산시 상북면 좌삼리에 거주하는 서씨 문중에서 조상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고, 매년 음력 10월 12일에 역대 조상들의 얼을 기리는 행사를 한다. [[증산사]]는 [[서몽호]]의 향사를 위해 세운 사당이다. [[서몽호]]의 묘도 이곳에 있다. |
2024년 2월 3일 (토) 09:58 판
양산 달성서씨 집성촌(達城徐氏集姓村)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서진을 시조로 하고 서몽호·서의손·서두조를 입향조로 하는 달성서씨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는 마을들. 서씨의 중심 본관은 이천서씨이며, 나머지는 모두 이천서씨에서 분파된 것이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와 『조선씨족통보』에는 이천서씨에서 달성·장성·연산·남평·평당·부여 등이 갈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시조는 서진(徐晋)으로 고려 때 봉익대부판도판서 벼슬을 역임하면서 공을 세워 달성군에 봉해지고 달성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세거하게 되어 후손들이 본관을 달성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였다.
양산 지역의 달성서씨는 매곡동, 상북면 좌삼리, 하북면 답곡리, 북부동 등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 지역의 연원은 차이가 있다. 매곡 지역 달성서씨는 서몽호(徐夢虎) 때 울산으로부터 와서 이곳에 살았다. 서몽호는 서인충과 함께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동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안무사 이상신(李尙信)의 보고에 의해 훈련원주부에 제수되었다.
달성군 서진의 8세손 서의손(徐義孫)이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곡성현감으로 있을 때인 1531년(중종 26) 복성군 옥사에 연루되어 화가 미칠까 두려워 좌삼에 은거하여 정착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 때 서의손의 증손인 서중룡(徐仲龍)이 출정하면서 가족들을 이곳에 피난시켜 이주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좌삼마을은 양산에서 가장 많은 달성서씨가 거주하고 있는 곳으로 유추되고 있다. 답곡 지역 달성서씨들은 공조참의 서두조(徐斗祚)의 후손이다. 북부동은 호민재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따라서 양산 지역의 달성서씨의 입향은 상북면과 하북면 지역은 동일하게 입향하였을 것으로 유추되지만, 매곡동은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양산 지역의 달성서씨는 매곡동, 상북면 좌삼리, 하북면 답곡리, 북부동 등에 거주하고 있는데, 특히 매곡동과 상북면 좌삼리 등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 지역에는 후손들이 재실과 사당을 보유하여 매년 향사하고 있다.
좌삼재(左森齋)와 증산사(甑山祠) 등이 있다. 좌삼재는 1972년 양산시 상북면 좌삼리에 거주하는 서씨 문중에서 조상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고, 매년 음력 10월 12일에 역대 조상들의 얼을 기리는 행사를 한다. 증산사는 서몽호의 향사를 위해 세운 사당이다. 서몽호의 묘도 이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