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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서희환(徐喜煥)
 
서예가 서희환(徐喜煥)
  
이천서씨 병부상서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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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서씨]] 병부상서공파
  
 
해방 이후 「애국시」, 「화엄경」, 「용비어천가」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
 
해방 이후 「애국시」, 「화엄경」, 「용비어천가」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

2022년 10월 13일 (목) 07:32 판

서예가 서희환(徐喜煥)

이천서씨 병부상서공파

해방 이후 「애국시」, 「화엄경」, 「용비어천가」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

전남 목포 출신. 호는 평보(平步). 일찍이 근대의 명서가 소전(素荃)손재형(孫在馨, 1903∼81)에게 사사했다. 초기에는 전서 필법을 한글에 접목시킨 소위 “국문전서(國文篆書)”라는 스승의 서풍으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한문에 비해 단조로운 구조와 짧은 전통을 극복하기 위해 고졸한 문기(文氣)와 생동감을 불어넣으려 했는데, 특히 도식적 형태의 한글 판본체나 유려한 필치의 궁체(宮體)와는 색다른 풍격을 추구했다.


국전에 출품하여 4차례 계속 특선을 수상했는데, 그중 1968년 제17회 국전 때 이은상(李殷相)의 시를 쓴 한글작품 <애국시 愛國詩>를 출품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이는 국전사상 서예 부문에서 최초 대상을 수상한 것인데, 당시 그의 출품작이 스승의 국문전서와 유사하다는 논의가 제기되기도 했다. 그 뒤 한글 판본체를 바탕으로 예스러운 풍격을 바탕으로 독특한 감필법(減筆法)으로 질박하면서도 굳센 필치를 이루었고, 또 흘림을 가미한 필사체에서는 더욱 고졸한 서풍을 이루는 등 한글 서예의 미학적 영역을 새롭게 넓혀갔다. 전각(篆刻)도 잘했는데 한글 글씨와 잘 어울리는 특유의 각풍(刻風)이 돋보인다.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에서 교편을 잡았고 대학미전 운영위원을 지냈으며, 국전 초대작가·심사위원, 대한민국 미술대전 및 동아미술제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전라남도 문화상을 수상했다. 필적으로 <국민교육헌장(1968년)>·<행주산성 전첩비문>(1970년)·<칠백의총 비문>(1971년)·대전의 <윤봉길 의사 동상문>·익산과 횡성의 <三·一운동 기념비문>·구미의 <구미공업단지 준공비문>·서울의 <백제토성 사적비문>·경주의 <석가탑 다보탑 신건기 비문> 등과 곳곳에 많은 편액 글씨를 남겼다. 대작으로 1974년≪화엄경≫ 10,915자를 쓴 <화엄경 10곡병풍>, 성경의 시편과 요한복음, 그리고 찬송가를 쓴 <성경 12곡병풍>, 예술의전당에 소장된 <용비어천가> 등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