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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1564년(명종19)~1656년(효종7). 자 사신(士信). 호 시시당(是是堂). 참봉(參奉) 서명세(徐名世)의 아들. 수직(壽職)으로 자헌대부(資憲大夫) 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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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학식과 훌륭한 행실이 있었음. 공이 일찍이 소수서원(紹修書院)에 있었을 때에, 거재(居齋)하던 유생들이 취한대(翠寒臺)에서 방탕하게 놀고 있자, 공이 “바위는 비록 말을 하지 않으나, 경자(敬字)는 아직 그대로 있다.[巖雖不言, 敬字猶存]”는 8자를 손수 써서 보이니, 제생들이 감복하였다고 하였음. | 공은 학식과 훌륭한 행실이 있었음. 공이 일찍이 소수서원(紹修書院)에 있었을 때에, 거재(居齋)하던 유생들이 취한대(翠寒臺)에서 방탕하게 놀고 있자, 공이 “바위는 비록 말을 하지 않으나, 경자(敬字)는 아직 그대로 있다.[巖雖不言, 敬字猶存]”는 8자를 손수 써서 보이니, 제생들이 감복하였다고 하였음. |
2022년 8월 24일 (수) 00:45 판
1564년(명종19)~1656년(효종7).
자 사신(士信). 호 시시당(是是堂). 참봉(參奉) 서명세(徐名世)의 아들. 수직(壽職)으로 자헌대부(資憲大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받음.
공은 학식과 훌륭한 행실이 있었음. 공이 일찍이 소수서원(紹修書院)에 있었을 때에, 거재(居齋)하던 유생들이 취한대(翠寒臺)에서 방탕하게 놀고 있자, 공이 “바위는 비록 말을 하지 않으나, 경자(敬字)는 아직 그대로 있다.[巖雖不言, 敬字猶存]”는 8자를 손수 써서 보이니, 제생들이 감복하였다고 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