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육 표준영정"의 두 판 사이의 차이
(→관계정보) |
|||
28번째 줄: | 28번째 줄: | ||
=='''지식 관계망'''== | =='''지식 관계망'''== | ||
===관계정보=== | ===관계정보=== | ||
− | {|class="wikitable sortable" | +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background:white; width:100%; text-align:center;" |
!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 | |- |
2017년 11월 23일 (목) 17:20 판
김육 표준영정 | |
한자명칭 | 金堉 標準影幀 |
---|---|
작가 | 오낭자 |
제작시기 | 1991년 |
소장처 | 국립현대미술관 |
유형 | 표준영정 |
크기(세로×가로) | 159cm X 96cm |
목차
정의
1580(선조 13)∼1658(효종 9).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화가 오낭자가 1991년에 그린 표준영정이다.
내용
표준영정에서 김육을 보다
하얀 머리와 수염이 길게 가슴까지 늘어져 있어, 표준영정에 그려진 김육의 모습이 매우 노쇠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관복의 특성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당상관 직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구름과 기린 함께있는 흉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1] 김육은 만년에 영의정 자리에 오르는데 당시 영의정은 문관직에서 정1품 관직으로, 모든 문인 관직 중에서 가장 높은 벼슬이다. 또한 문반 관원들이 가장 희망하는 자리이며, 실무 및 정치 경험이 많이 쌓일 때 이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김육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최고 관직에 있을 때 모습을 표준영정에서 보여준 것이라 볼 수 있다. 자세와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있으며 뒤에 의자는 호피 무뉘를 보이고 있다.
작가 오낭자에 대해서
오낭자는 1946년 6월 29일에 태어난 미술 작가이다. 그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및 홍익대 교육대학원 졸업하였다. 개인전을 총 18회(서울7회, 뉴욕 및 미주5회, 파리, 독일, 대만, 부산, 광주)하였으며, 1964-1981년까지 국전특선4회, 입선11회를 하였다. 1991년 문화체육관광부 주체로 김수로왕, 허왕후, 김육 의 표준영정을 제작 하였다. 이후 가장 최근에는 2011년에 대한민국 미술대전 조직위원에서 A&C 아트페어 운영위원을 하였고, 2011-2012년에는 대한민국 선정작가전 심사위원으로 활동 하였다.[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김육 표준영정 | 김육 | A는 B를 모델로 하였다 | |
표준영정 | 김육 표준영정 | A는 B를 포함한다 | |
오낭자 | 김육 표준영정 | A는 B를 제작하였다 | |
오낭자 | 김수로왕 표준영정 | A는 B를 제작하였다 | |
오낭자 | 허왕후 표준영정 | A는 B를 제작하였다 | |
문화체육관광부 | 김육 표준영정 제작 | A는 B를 주도하였다 | |
오낭자 | 김육 표준영정 제작 | A는 B에 참가하였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991년 | 오낭자는 김육 표준영정을 제작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431181 | 127.020363 | 김육 표준영정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있다 |
시각자료
갤러리
- 초상화 인물 김육 01 김육 표준영정.jpg
김육 표준영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