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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ckquote|처음 도의선사가 서당(西堂: 지장선사(智藏禪師)를 가리킴)에게서 심인(心印)<ref>선가에서 글이나 말에 의하지 아니한 불타(佛陀: 깨달은 자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붓다'의 음역) 내심의 실증(實證)</ref>을 전수받고 후일 우리나라에 돌아와 그 선(禪)의 이치를 가르쳤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경의 가르침과 관법을 익혀 정신을 보존하는 법만을 숭상하여 무위임운(無爲任運)<ref>평상의 삶에 마음을 맡겨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음</ref>의 종(宗)에 모이지 아니하고 허탄한 것으로 여겨 높이어 중히 여기지 않았으니, 마치 달마<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87987 달마]",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조사가 양 무제를 만났음에도 뜻이 통하지 못한 것과 같았다. 이로 말미암아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함을 알고 산림에 은거하여 법을 염거선사(廉居禪師)에게 부촉(咐囑)<ref>부탁하여 맡김</ref>했다. 이에 염거선사가 설산(雪山: 지금의 설악산) 억성사(億聖寺)에 머물면서 조사의 마음을 전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여니, 체징선사가 가서 그를 섬겼다. 선사가 맑게 일심을 닦고 삼계(三界)<ref>불교의 세계관에서 중생이 생사유전(生死流轉)한다는 3단계의 미망(迷妄)의 세계.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00400 삼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에서 벗어나기를 구하여 목숨을 자기의 목숨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몸을 자기의 몸으로 여기지 않았다. 염거선사가 그 뜻과 기개에 짝할 만한 이가 없고 그 타고난 바탕이 범상치 않음을 알아, 현주(玄珠)<ref>도가(道家)에서, 검은 주옥(珠玉)이라는 뜻으로, 깊은 진리를 이르는 말</ref>를 부촉하고 법인(法印)<ref>진리의 표시.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의 표시. 원불교대사전,『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 온라인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111608&cid=50765&categoryId=50778 법인]", 원불교대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을 전해 주었다. | + | {{Blockquote|처음 도의선사가 서당(西堂: 지장선사(智藏禪師)를 가리킴)에게서 심인(心印)<ref>선가에서 글이나 말에 의하지 아니한 불타(佛陀: 깨달은 자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붓다'의 음역) 내심의 실증(實證: 확실한 증거, 확증)</ref>을 전수받고 후일 우리나라에 돌아와 그 선(禪)의 이치를 가르쳤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경의 가르침과 관법을 익혀 정신을 보존하는 법만을 숭상하여 무위임운(無爲任運)<ref>평상의 삶에 마음을 맡겨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음</ref>의 종(宗)에 모이지 아니하고 허탄한 것으로 여겨 높이어 중히 여기지 않았으니, 마치 달마<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87987 달마]",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조사가 양 무제를 만났음에도 뜻이 통하지 못한 것과 같았다. 이로 말미암아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함을 알고 산림에 은거하여 법을 염거선사(廉居禪師)에게 부촉(咐囑)<ref>부탁하여 맡김</ref>했다. 이에 염거선사가 설산(雪山: 지금의 설악산) 억성사(億聖寺)에 머물면서 조사의 마음을 전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여니, 체징선사가 가서 그를 섬겼다. 선사가 맑게 일심을 닦고 삼계(三界)<ref>불교의 세계관에서 중생이 생사유전(生死流轉)한다는 3단계의 미망(迷妄)의 세계.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00400 삼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에서 벗어나기를 구하여 목숨을 자기의 목숨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몸을 자기의 몸으로 여기지 않았다. 염거선사가 그 뜻과 기개에 짝할 만한 이가 없고 그 타고난 바탕이 범상치 않음을 알아, 현주(玄珠)<ref>도가(道家)에서, 검은 주옥(珠玉)이라는 뜻으로, 깊은 진리를 이르는 말</ref>를 부촉하고 법인(法印)<ref>진리의 표시.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의 표시. 원불교대사전,『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 온라인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111608&cid=50765&categoryId=50778 법인]", 원불교대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을 전해 주었다. |
|출처=이지관,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신라편, 가산불교문화연구원, 1994, 106-107쪽.}} | |출처=이지관,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신라편, 가산불교문화연구원, 1994, 106-107쪽.}} | ||
2017년 10월 25일 (수) 13:43 판
염거(廉居, 廉巨) | |
대표명칭 | 염거 |
---|---|
영문명칭 | Yeomgeo |
한자 | 廉居, 廉巨 |
생몰년 | ?-844(문성왕6) |
승탑 |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
정의
신라 말기의 승려.
내용
생애
도의(道義)의 제자로, 가지산파(迦智山派)의 2대 조사(祖師)[1]이다.[2][3]
도의가 처음 남종선(南宗禪)을 전래하였을 당시 신라에는 교학불교(敎學佛敎)가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어, 도의의 선사상이 제대로 수용되지 못했다.[4] 염거 역시 선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었던 시대에 설악산에 은거하며 지내다가, 체징(體澄)에게 법맥을 전하여 가지산파(迦智山派)를 대성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뒤 입적하였다.[5]
도의-염거-체징으로 법맥이 이어지는 과정은 체징의 탑비인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비(長興 寶林寺 普照禪師塔碑)의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처음 도의선사가 서당(西堂: 지장선사(智藏禪師)를 가리킴)에게서 심인(心印)[6]을 전수받고 후일 우리나라에 돌아와 그 선(禪)의 이치를 가르쳤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경의 가르침과 관법을 익혀 정신을 보존하는 법만을 숭상하여 무위임운(無爲任運)[7]의 종(宗)에 모이지 아니하고 허탄한 것으로 여겨 높이어 중히 여기지 않았으니, 마치 달마[8]조사가 양 무제를 만났음에도 뜻이 통하지 못한 것과 같았다. 이로 말미암아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함을 알고 산림에 은거하여 법을 염거선사(廉居禪師)에게 부촉(咐囑)[9]했다. 이에 염거선사가 설산(雪山: 지금의 설악산) 억성사(億聖寺)에 머물면서 조사의 마음을 전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여니, 체징선사가 가서 그를 섬겼다. 선사가 맑게 일심을 닦고 삼계(三界)[10] 에서 벗어나기를 구하여 목숨을 자기의 목숨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몸을 자기의 몸으로 여기지 않았다. 염거선사가 그 뜻과 기개에 짝할 만한 이가 없고 그 타고난 바탕이 범상치 않음을 알아, 현주(玄珠)[11]를 부촉하고 법인(法印)[12] 을 전해 주었다. | ||
출처: 이지관,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신라편, 가산불교문화연구원, 1994, 106-107쪽. |
승탑
844년(문성왕 6)에 조성된 전 흥법사 염거화상탑(傳興法寺廉居和尙塔)은 1962년 국보 제104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13]
지식관계망
"그래프 삽입"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 염거 | A는 B를 위한 승탑이다 | |
염거 | 동제염거화상탑지 | A는 B에 기록되었다 | |
도의 | 염거 | A는 B의 스승이다 | |
염거 | 체징 | A는 B의 스승이다 | |
도의 | 가지산문 | A는 B를 개창하였다 | |
염거 | 양양 진전사 | A는 B에서 수행하였다 | |
염거 |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비 | A는 B에 기록되었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844년 | 염거가 입적하였다. |
844년 | 염거의 승탑인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이 건립되었다. |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 ↑ 한 종파를 세워서, 그 종지(宗旨)를 열어 주장(主掌)한 사람의 존칭. 선종의 달마 대사와 같은 사람
- ↑ 박상국, "염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3년 05월 14일. - ↑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온라인 참조: "염거", 용어해설,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김신곤, 김봉규, 『불맥, 한국의 선사들』, 우리출판사, 2004, 194쪽.
- ↑ 박상국, "염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3년 05월 14일. - ↑ 선가에서 글이나 말에 의하지 아니한 불타(佛陀: 깨달은 자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붓다'의 음역) 내심의 실증(實證: 확실한 증거, 확증)
- ↑ 평상의 삶에 마음을 맡겨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음
- ↑ "달마",
『두산백과』online . - ↑ 부탁하여 맡김
- ↑ 불교의 세계관에서 중생이 생사유전(生死流轉)한다는 3단계의 미망(迷妄)의 세계. "삼계,
『두산백과』online . - ↑ 도가(道家)에서, 검은 주옥(珠玉)이라는 뜻으로, 깊은 진리를 이르는 말
- ↑ 진리의 표시.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의 표시. 원불교대사전,『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 온라인참조: "법인", 원불교대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전)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 ↑ "동제염거화상탑지",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참고문헌
-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온라인 참조: "염거", 용어해설,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박상국, "염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3년 05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