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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이 책은 본래 전집 12권, 후집 10권, 모두 22권으로 되어 있으나 본 장서각본 '[[고문진보언해]]'는 전집 권 1-5・7, 후집 권6・7만이 현존한다. 번역한 연대와 번역자는 알 수는 없다. '[[고문진보]]'는 옛 글의 참된 보배라는 뜻으로, 중국의 고전작품 중 훌륭한 작품을 가려 뽑아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문인들의 시문(詩文)을 수련하기 위한 교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내용은 주나라 전국시대 [[굴원]]의 [[초사]]로부터, 진나라・한나라, 그리고 육조시대 및 당나라・송나라 등 역대의 유명한 시문을 망라하여 수록하였다. 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장서각]] 소장본은 그 한글 표기나 [[영빈이씨]],1696-1764의 [[영빈이씨 장서인|장서인]]으로 보아 [[영조]] 연간(1694-1762)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문진보]]'를 모두 언해한 것은 아니고 발췌하여 언해한 것이다. 상하 2단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상단에는 한자음을 한글로 먼저 쓰고 그 왼쪽에 한문 원문을 싣고 있고, 하단에는 상단의 한문을 언해하였다. <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252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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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황견]](黃堅)이 편찬한 '[[상설고문진보대전]](詳說古文眞寶大全)'을 조선 후기에 한글로 번역한 언해서(諺解書)이다. 이 책은 본래 전집 12권, 후집 10권, 모두 22권으로 되어 있으나 본 장서각본 '[[고문진보언해]]'는 전집 권 1-5・7, 후집 권6・7만이 현존한다. 번역한 연대와 번역자는 알 수는 없다. '[[고문진보]]'는 옛 글의 참된 보배라는 뜻으로, 중국의 고전작품 중 훌륭한 작품을 가려 뽑아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문인들의 시문(詩文)을 수련하기 위한 교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내용은 주나라 전국시대 [[굴원]]의 [[초사]]로부터, 진나라・한나라, 그리고 육조시대 및 당나라・송나라 등 역대의 유명한 시문을 망라하여 수록하였다. 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장서각]] 소장본은 그 한글 표기나 [[영빈이씨]](1696-1764)의 장서인(藏書印)으로 보아 [[조선 영조]] 연간(1694-1762)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문진보]]'를 모두 언해한 것은 아니고 발췌하여 언해한 것이다. 상하 2단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상단에는 한자음을 한글로 먼저 쓰고 그 왼쪽에 한문 원문을 싣고 있고, 하단에는 상단의 한문을 언해하였다. <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252쪽.</REF>
  
 
===현존 고문진보의 특징===
 
===현존 고문진보의 특징===
현재 [[고려대학교 육당문고]]에 전집 권2-12, 후집 권1-6의 17권 8책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장서각]]도서에 후집 권7-10의 4권과 『문장궤범』이 모두 6책으로 소장되어 있다. 육당문고본과 장서각본의 필체는 동일인의 것이며, 제목도 모두 [[상설고문진보언해]]’로 되어 있다. 필사기가 없어 그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언해에 나타난 한글표기로 추정하여 보면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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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려대학교 육당문고]]에 전집 권2-12, 후집 권1-6의 17권 8책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장서각]]도서에 후집 권7-10의 4권과 『문장궤범』이 모두 6책으로 소장되어 있다. 육당문고본과 장서각본의 필체는 동일인의 것이며, 제목도 모두 '[[상설고문진보언해]]'로 되어 있다. 필사기가 없어 그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언해에 나타난 한글표기로 추정하여 보면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REF> 홍윤표,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3578 고문진보언해]",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REF> 홍윤표,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3578 고문진보언해]",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고문진보의 특성===
 
===고문진보의 특성===
이 책의 전집 권3과 후집 권1의 앞에 조선시대 서화가인 [[윤용구|윤용구(尹用求)]]가 68세 때 쓴 [[고문진보언해낙질보충사실|고문진보언해낙질보충사실(古文眞寶諺解落秩補充事實)]]’에 의하여서도 이 책이 19세기초에도 존재하였던 것을 알 수 있어 그러한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언해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책은 한문 원문이 그 한자음과 토가 한글로 쓰여진 채 앞에 실려 있고 그 뒤에 한글로 된 언해문이 실려 있다. 언해문에도 한자와 한자음을 달아놓고 있다. 또, 다른 이본인 장서각본은 제목이 [[고문진보언해]]’로 되어 있으며, 전집 권1-5·7, 후집 권6·7만이 현존하는 8권 8책의 낙질본이다. 이 책은 그 한글표기나 장서인(藏書印)으로 보아 영조연간(1694-1762)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나 그 필사자 및 언해자는 알 수 없다. 앞의 『[[상설고문진보언해]]』와는 달리 『[[고문진보]]』를 모두 언해한 것이 아니고 발췌하여 언해한 것이다. 상하 2단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상단에는 한자음을 한글로 먼저 쓰고 그 왼쪽에 한문 원문을 싣고 있고, 하단에는 상단의 한문을 한글로 언해하여놓고 있다. 장서각본은 앞의 육당문고본에 비하여 의역체(意譯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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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전집 권3과 후집 권1의 앞에 조선시대 서화가인 [[윤용구|윤용구(尹用求)]]가 68세 때 쓴 '[[고문진보언해낙질보충사실|고문진보언해낙질보충사실(古文眞寶諺解落秩補充事實)]]'에 의하여서도 이 책이 19세기초에도 존재하였던 것을 알 수 있어 그러한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언해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책은 한문 원문이 그 한자음과 토가 한글로 쓰여진 채 앞에 실려 있고 그 뒤에 한글로 된 언해문이 실려 있다. 언해문에도 한자와 한자음을 달아놓고 있다. 또, 다른 이본인 장서각본은 제목이 '[[고문진보언해]]'로 되어 있으며, 전집 권1-5·7, 후집 권6·7만이 현존하는 8권 8책의 낙질본이다. 이 책은 그 한글표기나 장서인(藏書印)으로 보아 영조연간(1694-1762)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나 그 필사자 및 언해자는 알 수 없다. 앞의 『[[상설고문진보언해]]』와는 달리 『[[고문진보]]』를 모두 언해한 것이 아니고 발췌하여 언해한 것이다. 상하 2단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상단에는 한자음을 한글로 먼저 쓰고 그 왼쪽에 한문 원문을 싣고 있고, 하단에는 상단의 한문을 한글로 언해하여놓고 있다. 장서각본은 앞의 육당문고본에 비하여 의역체(意譯體)이다.
 
<REF> 홍윤표,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3578 고문진보언해]",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REF> 홍윤표,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3578 고문진보언해]",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고문진보의 성격 및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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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4일 (토) 00:24 판

고문진보언해
한글팀 고문진보언해 01 고문진보언해 메인.png
한자명칭 古文眞寶諺解
영문명칭 A Korean translation of ancient Chinese writings
간행시기 조선 영조 연간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청구기호 4-389
유형 고서
크기(세로×가로) 30.3×23.5㎝
판본 필사본
수량 8책
표기문자 한글, 한자


정의

송나라 황견(黃堅)이 편찬한 '상설고문진보대전(詳說古文眞寶大全)'을 조선 후기에 한글로 번역한 언해서(諺解書)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송나라 황견(黃堅)이 편찬한 '상설고문진보대전(詳說古文眞寶大全)'을 조선 후기에 한글로 번역한 언해서(諺解書)이다. 이 책은 본래 전집 12권, 후집 10권, 모두 22권으로 되어 있으나 본 장서각본 '고문진보언해'는 전집 권 1-5・7, 후집 권6・7만이 현존한다. 번역한 연대와 번역자는 알 수는 없다. '고문진보'는 옛 글의 참된 보배라는 뜻으로, 중국의 고전작품 중 훌륭한 작품을 가려 뽑아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문인들의 시문(詩文)을 수련하기 위한 교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내용은 주나라 전국시대 굴원초사로부터, 진나라・한나라, 그리고 육조시대 및 당나라・송나라 등 역대의 유명한 시문을 망라하여 수록하였다. 본 장서각 소장본은 그 한글 표기나 영빈이씨(1696-1764)의 장서인(藏書印)으로 보아 조선 영조 연간(1694-1762)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문진보'를 모두 언해한 것은 아니고 발췌하여 언해한 것이다. 상하 2단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상단에는 한자음을 한글로 먼저 쓰고 그 왼쪽에 한문 원문을 싣고 있고, 하단에는 상단의 한문을 언해하였다. [1]

현존 고문진보의 특징

현재 고려대학교 육당문고에 전집 권2-12, 후집 권1-6의 17권 8책이, 장서각도서에 후집 권7-10의 4권과 『문장궤범』이 모두 6책으로 소장되어 있다. 육당문고본과 장서각본의 필체는 동일인의 것이며, 제목도 모두 '상설고문진보언해'로 되어 있다. 필사기가 없어 그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언해에 나타난 한글표기로 추정하여 보면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2]

고문진보의 특성

이 책의 전집 권3과 후집 권1의 앞에 조선시대 서화가인 윤용구(尹用求)가 68세 때 쓴 '고문진보언해낙질보충사실(古文眞寶諺解落秩補充事實)'에 의하여서도 이 책이 19세기초에도 존재하였던 것을 알 수 있어 그러한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언해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책은 한문 원문이 그 한자음과 토가 한글로 쓰여진 채 앞에 실려 있고 그 뒤에 한글로 된 언해문이 실려 있다. 언해문에도 한자와 한자음을 달아놓고 있다. 또, 다른 이본인 장서각본은 제목이 '고문진보언해'로 되어 있으며, 전집 권1-5·7, 후집 권6·7만이 현존하는 8권 8책의 낙질본이다. 이 책은 그 한글표기나 장서인(藏書印)으로 보아 영조연간(1694-1762)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나 그 필사자 및 언해자는 알 수 없다. 앞의 『상설고문진보언해』와는 달리 『고문진보』를 모두 언해한 것이 아니고 발췌하여 언해한 것이다. 상하 2단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상단에는 한자음을 한글로 먼저 쓰고 그 왼쪽에 한문 원문을 싣고 있고, 하단에는 상단의 한문을 한글로 언해하여놓고 있다. 장서각본은 앞의 육당문고본에 비하여 의역체(意譯體)이다. [3]

고문진보의 성격 및 의의

고문진보』는 고문의 참된 보배라는 뜻으로, 중국의 고전작품 중 그 진수를 가려 뽑아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 나라에서도 문인들의 시문 수련을 위한 교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이 책은 한문학연구와 국어사연구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문헌이다. 1986년 고려서림(高麗書林)에서 4책으로 묶어 영인하였으나 장서각본은 제외하였다. [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고문진보언해 편찬 고문진보언해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고문진보언해 상설고문진보대전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고문진보언해 고문진보언해낙질보충사실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영조 고문진보언해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영빈이씨 고문진보언해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영조 영빈이씨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영빈이씨 장서인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상설고문진보대전 황견 A는 B에 의해 제작되었다 A dcterms:creator B
고문진보언해낙질보충사실 윤용구 A는 B에 의해 제작되었다 A dcterms:creator B
초사 굴원 A는 B에 의해 제작되었다 A dcterms:creator B
고문진보언해 장서인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고문진보언해 초사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고문진보언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고문진보언해 고려대학교 육당문고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고문진보언해 고려서림 A는 B에 의해 영인되었다 A dcterms:publisher B
고문진보언해 상설고문진보대전 A는 B의 언해본이다 A edm:isDerivativeOf B
고문진보언해 고문진보언해낙질보충사실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영조연간 고문진보언해가 간행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39197 127.054387 고문진보언해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252쪽.
  2. 홍윤표, "고문진보언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홍윤표, "고문진보언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 홍윤표, "고문진보언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단행본
    1. 정규복, 「상설고문진보대전언해본해제」, 『영인본고문진보언해』 1, 고려서림, 1986.
  • 논문
    1. 천혜봉, 「고문진보대전에 대하여」, 『역사학보』 61, 1974.
    2. 조윤제, 「고문진보언해의 편영」, 『현대문학』 102, 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