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홍의장군 곽재우 관련 기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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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선조실록』 선조 25년(1592년) 6월 28일. 온라인 참조: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506028_004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html><online style="color:purple">『조선왕조실록』<sup>online</sup></online></html>, 국사편찬위원회.<ref>『선조실록』 선조 25년(1592년) 6월 28일. 온라인 참조: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506028_004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html><online style="color:purple">『조선왕조실록』<sup>online</sup></online></html>, 국사편찬위원회.</ref>
 
|출처= 『선조실록』 선조 25년(1592년) 6월 28일. 온라인 참조: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506028_004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html><online style="color:purple">『조선왕조실록』<sup>online</sup></online></html>, 국사편찬위원회.<ref>『선조실록』 선조 25년(1592년) 6월 28일. 온라인 참조: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506028_004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html><online style="color:purple">『조선왕조실록』<sup>online</sup></online></html>, 국사편찬위원회.</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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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복과 자결방식===
 
작품 속 [[민영환]]은 훈장과 견장을 단 서구식 예복을 입고 있고, 왼손 근처에 작은 칼이 놓여져 있다.<br/>
 
그러나 실제 그의 자결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상반되는 의견들이 있는데, 당시 그의 최후를 목격했던 [[김우현]] 목사의 증언에 따르면 [[민영환]]은 한복차림으로 사망했고, 장도(粧刀)로 몸의 여러부분을 찔러 유혈이 낭자했다고 한다.<br/>
 
그의 사망 현장 목격자 중 한 명인 [[시종무관]] [[어담|어담(魚潭)]]은 그가 오른손에 손톱 깎기만한 작은 칼을 쥔 채로 사망하였고, 할복 자살을 시도하였다가 실패하여 목을 찔러 두 치 넓이의 구멍을 내었다고 회고하였고, [[민영환]]의 장남 [[민장식]]의 아들인 [[민병진]]도 그의 조부가 단도로 목숨을 끊었다고 밝혔다.
 
 
===자결장소===
 
작품에 묘사된 배경은 승려와 마당의 석등<ref>"현재까지의 유물조사에 의하면 석등은 주로 사찰·능묘, 그리고 그 유적지에 주로 남아 있으며, 궁궐이나 저택 등의 유적지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8395 석등]",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등을 고려하였을 때 [[조계사]] 뒤편에 있던 [[민영환]] 자택으로 추정되며 유해가 갈무리되지 않고 자결할 당시의 상태 그대로 그려져 있다.<br/>
 
그러나 [[민영환]]이 [[민영환 자결터|순국 자결한 장소]]는 의관 [[이완식]]의 집이라는 것이 국사편찬위원회의 고증을 거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시종무관]] [[어담|어담(魚潭)]]과 [[김우현]] 목사, [[민병진]]의 회고에 따르면, [[민영환 집터|민영환의 집]]에 [[민영환]]의 어머니와 가족이 있었기에 자결 장소를 청지기였던 [[이완식]]의 집으로 택했으며, 그의 유해가 [[이완식]]의 집에서 발견된 뒤 본저(本邸)로 옮겨졌기 때문에 자결한 당시 모습을 하인 한 사람과 청지기 식구만 목격했다고 한다.
 
  
 
=='''지식 관계망'''==
 
=='''지식 관계망'''==

2017년 9월 25일 (월) 14:59 판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관련 기사()
파일:민족기록화 일러 관련기사.jpg
김현승 일러스트레이터
대표명칭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관련 기사



정의

민족기록화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고증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은 기사

내용

작품 속 곽재우

홍의장군 곽재우 : 전복의 복장이 사실과 다름. 이는 고구려벽화 신라의 토기유물, 조선시ㅐ드이 복식자료등을 미루어 볼 때 고쳐야 함. 곽재우는 전복이 그 아비가 명나라 북경에 갔을 때 황제가 하사한 붉은 비단의 철릭(帖裏)을 입었다고 한다. 그래서 홍의 장군紅衣將軍)이라 불렸다고 한다.


Quote-left.png 재우는 그 아비가 명나라 북경에 갔을 때에 황제가 하사한 붉은 비단 철릭을 입고서, 지금 장사(將士)들을 거느리고 의령현의 경내 및 낙동강 가를 마구 누비면서 왜적을 보면 그 수를 불문하고 반드시 말을 달려 돌격하니, 화살에 맞는 적이 많아서 그를 보면 바로 퇴각하여 달아나 감히 대항하지 못합니다. Quote-right.png
출처: 『선조실록』 선조 25년(1592년) 6월 28일. 온라인 참조: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조선왕조실록』online, 국사편찬위원회.[1]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관련 기사 손수광-충정공 민영환의 자결순국 A는 B와 관련이 있다

시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1. 『선조실록』 선조 25년(1592년) 6월 28일. 온라인 참조: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조선왕조실록』online, 국사편찬위원회.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단행본
  2.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