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월광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관련문화유산) |
(→관련항목) |
||
35번째 줄: | 35번째 줄: | ||
!style="width:30%"|항목A!!style="width:30%"|항목B!!style="width:25%"|관계!!style="width:15%"|비고 | !style="width:30%"|항목A!!style="width:30%"|항목B!!style="width:25%"|관계!!style="width:15%"|비고 | ||
|- | |- | ||
− | |[[ | + | |[[도증]] || [[제천 월광사]] || A는 B를 창건하였다 || |
|- | |- | ||
|[[대통]] || [[제천 월광사]] ||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 | |[[대통]] || [[제천 월광사]] ||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 |
2017년 11월 16일 (목) 23:45 판
제천 월광사 (堤川 月光寺) |
|
대표명칭 | 제천 월광사 |
---|---|
한자 | 堤川 月光寺 |
창건자 | 도증(道證)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있었던 삼국시대-조선시대의 절.
내용
월광사(月光寺)는 신라 효소왕 때의 승려 도증(道證)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구산선문 가운데 성주산문(聖住山門)을 개창한 낭혜화상 무염(無染)의 제자인 원랑선사 대통(圓朗禪師 大通)이 머물렀던 곳이다.[1]
법상종 계열로 존속하다가 경문왕 때에 대통이 선사상을 전파하면서 선종계 사찰로 바뀌었다. 절터 초입 송계계곡에서 고려 시대에 제작된 대불정주비(大佛頂呪碑)가 발견되어 고려 시대에도 선종 계통의 사찰로 법맥을 유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절터에서 조선 시대 기와편과 백자편이 수습되는 점을 볼 때 조선 전기까지 존속하다가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2]
관련문화유산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도증 | 제천 월광사 | A는 B를 창건하였다 | |
대통 | 제천 월광사 |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 |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 대통 | A는 B를 위한 비이다 | |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 국립중앙박물관 | A는 B에 있다 | |
제천 월광사지 | 제천 월광사 | A는 B의 터이다 |
시각자료
주석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