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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서는 넓은 뜻으로는 [[예서|예서(隷書)]] 이전에 있는 서체로 갑골문(甲骨文)·금문(金文)·석고문(石鼓文)·육국고문(六國古文)·소전(小篆)·무전(繆篆)·첩전(疊篆) 등이 모두 이에 속한다. 좁은 뜻으로는 대전(大篆)과 소전이 주축이 된다.<ref>김응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9472 전서]",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동주시대 청동기의 명문(銘文) 등에 지방적 특색이 나타나는데 서방의 진나라를 중심으로 쓰인 공식 서체를 대전, 또는 주문이라고 하며 소전은 진의 통일후, 시황제가 이사(李斯)에게 명하여 대전을 간략하게 한 것이다.</ref>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용어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3350&cid=42635&categoryId=42635 전서]", 미술대사전(용어편),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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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서는 넓은 뜻으로는 [[예서|예서(隷書)]] 이전에 있는 서체로 갑골문(甲骨文)·금문(金文)·석고문(石鼓文)·육국고문(六國古文)·소전(小篆)·무전(繆篆)·첩전(疊篆) 등이 모두 이에 속한다. 좁은 뜻으로는 대전(大篆)과 소전이 주축이 된다.<ref>김응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9472 전서]",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동주시대 청동기의 명문(銘文) 등에 지방적 특색이 나타나는데 서방의 진나라를 중심으로 쓰인 공식 서체를 대전, 또는 주문이라고 하며 소전은 진의 통일후, 시황제가 이사(李斯)에게 명하여 대전을 간략하게 한 것이다.</ref><ref>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용어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3350&cid=42635&categoryId=42635 전서]", 미술대사전(용어편),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전서는 당시 일반적으로 쓰이던 서체이지만 전서를 약(略)해서 사무용으로 쓰기 위해 [[예서|예서(隸書)]]가 만들어졌으며 빨리 쓰기 위한 필기체로서 초서(草書)가 생겼다. 한대에 [[예서]]가 보급된 이후, 전서는 새인(壐印), 제명(題銘), 액자(額子) 등에만 사용하게 되었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58138 전서]",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전서는 당시 일반적으로 쓰이던 서체이지만 전서를 약(略)해서 사무용으로 쓰기 위해 [[예서|예서(隸書)]]가 만들어졌으며 빨리 쓰기 위한 필기체로서 초서(草書)가 생겼다. 한대에 [[예서]]가 보급된 이후, 전서는 새인(壐印), 제명(題銘), 액자(額子) 등에만 사용하게 되었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58138 전서]",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2017년 9월 20일 (수) 23:38 판

전서
(篆書)
대표명칭 전서
한자표기 篆書
이칭 대전, 주문, 소전
관련개념 예서(隷書)



정의

고대 한자 서체.

내용

전서는 넓은 뜻으로는 예서(隷書) 이전에 있는 서체로 갑골문(甲骨文)·금문(金文)·석고문(石鼓文)·육국고문(六國古文)·소전(小篆)·무전(繆篆)·첩전(疊篆) 등이 모두 이에 속한다. 좁은 뜻으로는 대전(大篆)과 소전이 주축이 된다.[1] 동주시대 청동기의 명문(銘文) 등에 지방적 특색이 나타나는데 서방의 진나라를 중심으로 쓰인 공식 서체를 대전, 또는 주문이라고 하며 소전은 진의 통일후, 시황제가 이사(李斯)에게 명하여 대전을 간략하게 한 것이다.</ref>[2]

전서는 당시 일반적으로 쓰이던 서체이지만 전서를 약(略)해서 사무용으로 쓰기 위해 예서(隸書)가 만들어졌으며 빨리 쓰기 위한 필기체로서 초서(草書)가 생겼다. 한대에 예서가 보급된 이후, 전서는 새인(壐印), 제명(題銘), 액자(額子) 등에만 사용하게 되었다.[3]

전서는 신도비, 탑비 등의 제액(題額)에 많이 쓰인다. 전서로 쓴 제액을 전액(篆額)이라고 한다.[4]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전서 예서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전서 제액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시각자료

주석

  1. 김응현, "전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용어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전서", 미술대사전(용어편),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3. "전서", 『두산백과』online.
  4. 연송 김환수, "내 이름은 전서로 써보기(전서체 검색사이트 소개), 『다음블로그 - 안산김씨 』online, 작성일:2010년 4월 27일.

참고문헌

  • 김응현, "전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전서", 『두산백과』online.
  •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용어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참조:"전서", 미술대사전(용어편),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연송 김환수, "내 이름은 전서로 써보기(전서체 검색사이트 소개), 『다음블로그 - 안산김씨 』online, 작성일:2010년 4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