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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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태조 익선관.jpg| 태조 익선관 착용 어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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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태조 익선관.jpg| 태조 익선관 착용 어진. 전주 경기전 소장.
 
파일:영조 익선관.jpg| 영조 익선관 착용 어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파일:영조 익선관.jpg| 영조 익선관 착용 어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파일:고종 익선관.jpg| 고종황제 익선관 착용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파일:고종 익선관.jpg| 고종황제 익선관 착용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2017년 2월 6일 (월) 23:06 판


익선관(翼善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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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360px|thumb|center|]]
대표명칭 익선관(翼善冠)
이칭별칭 翼蟮冠
착용신분 왕, 왕세자, 왕세손
착용성별 남성



정의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의 상복곤룡포를 착용할 때 쓰는 관.

어원

  • 관모의 각(角)이 위로 올라와 관의 모양이 ‘善(蟮, 매미날개)’자와 같기 때문에 이름 붙여짐.
  • ‘오사절상건(烏紗折上巾)’이라고 하기도 하고, ‘오사절각향상건(烏紗折角向上巾)’이라 하기도 하는데, 이는 관의 형태를 말로 풀음.

기원

북주(北周)에서 기원한 복두(幞頭)는 전쟁 수행에 편한 것으로 당나라 태종(太宗)은 천하에 전쟁이 끝난 것을 비유하여 복두를 모델로 익선관을 만들었음.[1]

착용신분과 착용상황

  • 왕과 왕세자의 상복.
  • 왕세자 관례 시의 초가복.
  • 왕, 왕세자, 왕세손의 익선관 형태는 모두 같음.

내용

1) 기본 형태

  • 2층의 형태로 앞은 낮고 뒤는 높으며 모라(帽羅)[2]로 관을 싸고 뒷부분에는 2개의 뿔[角]이 위로 곧게 붙어 있음.[3]
  • 조선 중기 이후 2층이 높아지고 2개의 뿔의 폭도 넓어졌다가 조선 말기에 2층이 낮아지는 형태.

관련항목

노드 관계 노드
익선관 관계 관련노드명
익선관 관계 관련노드명
익선관 관계 관련노드명
익선관 관계 관련노드명
익선관 관계 관련노드명

참고문헌

주석

  1. 『唐書』 卷24, 「車服志」 “太宗嘗以幞頭起於後周, 便武事者也. 方天下偃兵, 採古制爲翼善冠, 自服之.”
  2. 세종 26년에 사여된 익선관은 ‘검은색 추사[香皂皺紗]’로 기록됨(『조선왕조실록』 「세종 26년 3월 26일」)
  3. 『國朝續五禮儀補序例』「殿下視事服圖說」 “冠以毛羅裹之, 兩大角兩小角貼後向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