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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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탑상(塔像)> 제4의 ‘백엄사석탑사리(伯嚴寺石塔舍利)'조에 따르면, 사목곡(沙木谷) 출신으로 906년(효공왕 10년) 오랫동안 폐사로 남아 있던 백엄사(伯嚴寺: 경남 합천군 대양면 백암리)를 중창하여 주지가 되었으며 917년(경명왕 1년) 입적했다고 한다. 또한 고려시대 이몽유(李夢游)의 <봉암사정진대사원오탑비(鳳巖寺靜眞大師圓悟塔碑)>에 따르면, 양부는 희양산문(曦陽山門)의 개조인 도헌(道憲)의 제자이며 희양산문의 실제 개창자인 정진대사 긍양(兢讓)의 스승이라고 한다. 곧 양부는 도헌의 법맥을 이어 긍양에게 전함으로써 훗날 긍양이 북종(北宗) 점선(漸禪)을 특징으로 하는 희양산문을 실제로 개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 것이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334880&cid=40942&categoryId=34266 양부]", 두산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탑상(塔像)> 제4의 ‘백엄사석탑사리(伯嚴寺石塔舍利)'조에 따르면, 사목곡(沙木谷) 출신으로 906년(효공왕 10년) 오랫동안 폐사로 남아 있던 백엄사(伯嚴寺: 경남 합천군 대양면 백암리)를 중창하여 주지가 되었으며 917년(경명왕 1년) 입적했다고 한다. 또한 고려시대 이몽유(李夢游)의 <봉암사정진대사원오탑비(鳳巖寺靜眞大師圓悟塔碑)>에 따르면, 양부는 희양산문(曦陽山門)의 개조인 도헌(道憲)의 제자이며 희양산문의 실제 개창자인 정진대사 긍양(兢讓)의 스승이라고 한다. 곧 양부는 도헌의 법맥을 이어 긍양에게 전함으로써 훗날 긍양이 북종(北宗) 점선(漸禪)을 특징으로 하는 희양산문을 실제로 개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 것이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334880&cid=40942&categoryId=34266 양부]", 두산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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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7일 (일) 16:01 판
양부(楊孚) | |
대표명칭 | 양부 |
---|---|
한자 | 楊孚 |
생몰년 | ?-917년 |
이칭 | 양부(揚孚) |
출신지 | 사목곡(沙木谷) |
정의
신라 말기의 승려.
내용
양부(楊孚)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파(曦陽山派)의 개산조 지선(知詵)의 법을 이어받았다. 906년(효공왕 10)에는 폐사가 된 지 오래된 경상남도 합천 초계의 백엄사(伯嚴寺)를 중창하고 주지가 되었다. 그뒤 그의 법맥을 희양산파 제3조인 정진대사(靜眞大師) 긍양(兢讓)에게 물려주었다.[1]
《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탑상(塔像)> 제4의 ‘백엄사석탑사리(伯嚴寺石塔舍利)'조에 따르면, 사목곡(沙木谷) 출신으로 906년(효공왕 10년) 오랫동안 폐사로 남아 있던 백엄사(伯嚴寺: 경남 합천군 대양면 백암리)를 중창하여 주지가 되었으며 917년(경명왕 1년) 입적했다고 한다. 또한 고려시대 이몽유(李夢游)의 <봉암사정진대사원오탑비(鳳巖寺靜眞大師圓悟塔碑)>에 따르면, 양부는 희양산문(曦陽山門)의 개조인 도헌(道憲)의 제자이며 희양산문의 실제 개창자인 정진대사 긍양(兢讓)의 스승이라고 한다. 곧 양부는 도헌의 법맥을 이어 긍양에게 전함으로써 훗날 긍양이 북종(北宗) 점선(漸禪)을 특징으로 하는 희양산문을 실제로 개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 것이다.[2]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도헌 | 양부 | A는 B의 스승이다 | A ekc:hasDisciple B |
양부 | 긍양 | A는 B의 스승이다 | A ekc:hasDisciple B |
합천 백엄사 | 양부 | A는 B가 중건하였다 | A ekc:renovator B |
각주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