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양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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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揚孚)라고도 한다. 사목곡(沙木谷)출신.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파(曦陽山派)의 개산조 지선(知詵)의 법을 이어받았다. 906년(효공왕 10)에는 폐사가 된 지 오래된 경상남도 합천 초계의 백엄사(伯嚴寺)를 중창하고 주지가 되었다. 그뒤 그의 법맥을 희양산파 제3조인 정진대사(靜眞大師) 긍양(兢讓)에게 물려주었다.<ref>김위석,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5536 양부]",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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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楊孚)는 [[구산선문|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희양산파(曦陽山派)]]의 개산조 [[도헌|지선(知詵)]]의 법을 이어받았다. 906년(효공왕 10)에는 폐사가 된 지 오래된 경상남도 합천 초계의 백엄사(伯嚴寺)를 중창하고 주지가 되었다. 그뒤 그의 법맥을 희양산파 제3조인 정진대사(靜眞大師) 긍양(兢讓)에게 물려주었다.<ref>김위석,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5536 양부]",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탑상(塔像)> 제4의 ‘백엄사석탑사리(伯嚴寺石塔舍利)'조에 따르면, 사목곡(沙木谷) 출신으로 906년(효공왕 10년) 오랫동안 폐사로 남아 있던 백엄사(伯嚴寺: 경남 합천군 대양면 백암리)를 중창하여 주지가 되었으며 917년(경명왕 1년) 입적했다고 한다. 또한 고려시대 이몽유(李夢游)의 <봉암사정진대사원오탑비(鳳巖寺靜眞大師圓悟塔碑)>에 따르면, 양부는 희양산문(曦陽山門)의 개조인 도헌(道憲)의 제자이며 희양산문의 실제 개창자인 정진대사 긍양(兢讓)의 스승이라고 한다. 곧 양부는 도헌의 법맥을 이어 긍양에게 전함으로써 훗날 긍양이 북종(北宗) 점선(漸禪)을 특징으로 하는 희양산문을 실제로 개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 것이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334880&cid=40942&categoryId=34266 양부]", 두산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탑상(塔像)> 제4의 ‘백엄사석탑사리(伯嚴寺石塔舍利)'조에 따르면, 사목곡(沙木谷) 출신으로 906년(효공왕 10년) 오랫동안 폐사로 남아 있던 백엄사(伯嚴寺: 경남 합천군 대양면 백암리)를 중창하여 주지가 되었으며 917년(경명왕 1년) 입적했다고 한다. 또한 고려시대 이몽유(李夢游)의 <봉암사정진대사원오탑비(鳳巖寺靜眞大師圓悟塔碑)>에 따르면, 양부는 희양산문(曦陽山門)의 개조인 도헌(道憲)의 제자이며 희양산문의 실제 개창자인 정진대사 긍양(兢讓)의 스승이라고 한다. 곧 양부는 도헌의 법맥을 이어 긍양에게 전함으로써 훗날 긍양이 북종(北宗) 점선(漸禪)을 특징으로 하는 희양산문을 실제로 개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 것이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334880&cid=40942&categoryId=34266 양부]", 두산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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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7일 (일) 16:01 판

양부(楊孚)
BHST Monk1.png
대표명칭 양부
한자 楊孚
생몰년 ?-917년
이칭 양부(揚孚)
출신지 사목곡(沙木谷)


정의

신라 말기의 승려.

내용

양부(楊孚)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파(曦陽山派)의 개산조 지선(知詵)의 법을 이어받았다. 906년(효공왕 10)에는 폐사가 된 지 오래된 경상남도 합천 초계의 백엄사(伯嚴寺)를 중창하고 주지가 되었다. 그뒤 그의 법맥을 희양산파 제3조인 정진대사(靜眞大師) 긍양(兢讓)에게 물려주었다.[1]

《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탑상(塔像)> 제4의 ‘백엄사석탑사리(伯嚴寺石塔舍利)'조에 따르면, 사목곡(沙木谷) 출신으로 906년(효공왕 10년) 오랫동안 폐사로 남아 있던 백엄사(伯嚴寺: 경남 합천군 대양면 백암리)를 중창하여 주지가 되었으며 917년(경명왕 1년) 입적했다고 한다. 또한 고려시대 이몽유(李夢游)의 <봉암사정진대사원오탑비(鳳巖寺靜眞大師圓悟塔碑)>에 따르면, 양부는 희양산문(曦陽山門)의 개조인 도헌(道憲)의 제자이며 희양산문의 실제 개창자인 정진대사 긍양(兢讓)의 스승이라고 한다. 곧 양부는 도헌의 법맥을 이어 긍양에게 전함으로써 훗날 긍양이 북종(北宗) 점선(漸禪)을 특징으로 하는 희양산문을 실제로 개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 것이다.[2]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도헌 양부 A는 B의 스승이다 A ekc:hasDisciple B
양부 긍양 A는 B의 스승이다 A ekc:hasDisciple B
합천 백엄사 양부 A는 B가 중건하였다 A ekc:renovator B

각주

  1. 김위석, "양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양부",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