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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일(道一)의 제자 보원(普願)은 첫눈에 법기(法器)임을 알고 그에게 심인을 전한 뒤 그의 법인(法印)이 신라로 간다고 탄식하였다고 한다.
 
도일(道一)의 제자 보원(普願)은 첫눈에 법기(法器)임을 알고 그에게 심인을 전한 뒤 그의 법인(法印)이 신라로 간다고 탄식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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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년(헌덕왕 17) 사신들을 따라 당나라에 들어가 남전보원을 찾아가 예를 드리니 첫눈에 법기임을 알고 "오종의 범인이 동국으로 돌아가는구나!"라고 찬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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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9일 (토) 01:15 판

도윤(道允)
BHST Monk1.png
대표명칭 도윤
한자 道允
생몰년 798년(소성왕 원년)-868년(경문왕 8)
시호 철감(澈鑒)
쌍봉(雙峰)
도윤(道允)
탑호 징소(澄昭)
성씨 박씨(朴氏)
출신지 경기도 시흥
승탑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승탑비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정의

신라시대의 승려.

내용

가계와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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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으로 구산선문 가운데 사자선문(사자선문)의 개조이며, 남전보원(남전보원)의 법사이다. 성은 박씨이며, 한주 휴암현(휴암현, 오늘날의 황해도 봉산) 사람으로 지방호족 가문엔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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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영식, 『조당집 읽기』, 운주사, 302쪽.


출가수행

18세에 출가하여 귀신사(鬼神寺)에서 『화엄경』을 공부하였으나, 원돈(圓頓)을 가르치는 화엄이 심인(心印)을 전하는 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여 825년 당나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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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에 출가하여 귀신사에서 화엄을 배웠지만 "원돈의 가르침이 어찌 심인의 묘용만 하겠는가?" 하고 선법을 수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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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구법유학

도일(道一)의 제자 보원(普願)은 첫눈에 법기(法器)임을 알고 그에게 심인을 전한 뒤 그의 법인(法印)이 신라로 간다고 탄식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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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년(헌덕왕 17) 사신들을 따라 당나라에 들어가 남전보원을 찾아가 예를 드리니 첫눈에 법기임을 알고 "오종의 범인이 동국으로 돌아가는구나!"라고 찬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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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활동

847년(문성왕 9) 범일(梵日)과 함께 귀국하여 금강산에 머무르며 후학들을 지도하였는데, 경문왕도 그때 그에게 귀의하였다.

입적

868년 4월 18일 문인들을 모아 법을 널리 펼 것을 당부하고 나이 71세, 법랍 44세로 입적하였다. 시호는 철감선사(澈鑒禪師)이며, 탑호(塔號)는 징소(澄昭)이다. 죽을 때 오색과명이 입에서 나와 공중에 상서로운 상이 퍼져나갔다하여 서기만천철감국사(瑞氣滿天澈鑒國師)라고도 한다.

지식관계망

"그래프 삽입"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참고문헌

  • 「雙峯和尙道允」, 『祖堂集』 卷第十七. 온라인 참조: "雙峯和尙道允", 조당집, 한국고대사료집성 중국편, 『한국사데이터베이스』online, 국사편찬위원회.
  • 이일야, "우리의 법인(法印)이 모두 동국으로 돌아가는구나", 법보신문, 2014년 10월 15일.
  • 이일야, 『아홉 개의 산문이 열리다』, 조계종출판사, 2016.
  • 정영식, 『조당집 읽기』, 운주사, 2016.
  • 조범환, 「신라 하대 도윤선사와 사자산문의 개창」, 『신라사학보』 10, 신라사학회, 2007, 223-252쪽.
  • 최연식, 「사자산 선문의 성립과정에 대한 재검토」, 『불교학연구』 21, 불교학연구회, 219-2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