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무선 표준영정"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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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은 영정동상심의위원회의 조사 결과 선정된 109위의 선현 중 하나로서 [[표준영정]]으로 제작되었다. 그는 고려 말 화약을 비롯한 무기 연구 및 제조에 힘써 여러 번 왜구의 침략을 물리쳤으며, 우리나라 무기제조사와 전쟁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즉 [[최무선]]이 가진 이미지를 활용, 국민들에게 국가 안보 및 국력 증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109위의 선현 중 명장(名將)이 10명, 구국 및 순국선열이 31명, 기타 구국과 국방 관련 인물이 11인으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ref>이영미,「한국표준영정연구 -제도의 제정과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51-52쪽.</ref> | [[최무선]]은 영정동상심의위원회의 조사 결과 선정된 109위의 선현 중 하나로서 [[표준영정]]으로 제작되었다. 그는 고려 말 화약을 비롯한 무기 연구 및 제조에 힘써 여러 번 왜구의 침략을 물리쳤으며, 우리나라 무기제조사와 전쟁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즉 [[최무선]]이 가진 이미지를 활용, 국민들에게 국가 안보 및 국력 증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109위의 선현 중 명장(名將)이 10명, 구국 및 순국선열이 31명, 기타 구국과 국방 관련 인물이 11인으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ref>이영미,「한국표준영정연구 -제도의 제정과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51-52쪽.</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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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총 표준영정(1992)]],[[정도전 표준영정(1994)]] 등을 비롯한 14점의 [[표준영정]]을 그린 작가 권오창은 "최근의 표준 영정은 전신상이 원칙이기 때문에 반신상은 논의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하였다.<ref>신화준,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426760,'동해왕 이사부' 표준 영정 포럼 "반신상 배제 전신상이 원칙"]",『강원도민일보』, 2009년 8월 10일.</ref> 그러나 [[최무선]] 표준영정의 경우 약 30년 전 제작, 지정되었기 때문에 반신상으로 그려져 있다. | + | [[설총 표준영정(1992)]], [[정도전 표준영정(1994)]] 등을 비롯한 14점의 [[표준영정]]을 그린 작가 권오창은 "최근의 표준 영정은 전신상이 원칙이기 때문에 반신상은 논의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하였다.<ref>신화준,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426760,'동해왕 이사부' 표준 영정 포럼 "반신상 배제 전신상이 원칙"]",『강원도민일보』, 2009년 8월 10일.</ref> 그러나 [[최무선]] 표준영정의 경우 약 30년 전 제작, 지정되었기 때문에 반신상으로 그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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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색 관복을 차려입은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 | 푸른 색 관복을 차려입은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 |
2017년 8월 16일 (수) 15:42 판
최무선 영정 | |
한자명칭 | 崔茂宣影幀 |
---|---|
작가 | 신영상 |
제작시기 | 1987년 |
소장처 | 국립현대미술관 |
유형 | 표준영정 |
크기(세로×가로) | 135×88㎝ |
정의
고려 말기의 발명가 최무선(崔茂宣, 1325년-1395년)의 표준영정.
내용
노석 신영상(老石 辛永常, 1935년-)이 그렸고 1987년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표준영정 선정 배경
최무선은 영정동상심의위원회의 조사 결과 선정된 109위의 선현 중 하나로서 표준영정으로 제작되었다. 그는 고려 말 화약을 비롯한 무기 연구 및 제조에 힘써 여러 번 왜구의 침략을 물리쳤으며, 우리나라 무기제조사와 전쟁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즉 최무선이 가진 이미지를 활용, 국민들에게 국가 안보 및 국력 증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109위의 선현 중 명장(名將)이 10명, 구국 및 순국선열이 31명, 기타 구국과 국방 관련 인물이 11인으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1]
반신상
설총 표준영정(1992), 정도전 표준영정(1994) 등을 비롯한 14점의 표준영정을 그린 작가 권오창은 "최근의 표준 영정은 전신상이 원칙이기 때문에 반신상은 논의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하였다.[2] 그러나 최무선 표준영정의 경우 약 30년 전 제작, 지정되었기 때문에 반신상으로 그려져 있다.
관복 차림
푸른 색 관복을 차려입은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최무선 표준영정(1987) | 표준영정 | A는 B에 해당한다 | |
최무선 표준영정(1987) | 최무선 | A는 B를 묘사하였다 | |
최무선 표준영정(1987) | 국립현대미술관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
신영상 | 최무선 표준영정(1987) | A는 B를 제작하였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987년 | 최무선 표준영정(1987)이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다. |
시각자료
갤러리
최무선 표준영정(1987년 지정)
주석
- ↑ 이영미,「한국표준영정연구 -제도의 제정과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51-52쪽.
- ↑ 신화준, "이사부' 표준 영정 포럼 "반신상 배제 전신상이 원칙"",『강원도민일보』, 2009년 8월 10일.
참고문헌
- 논문
- 이영미,「한국표준영정연구 -제도의 제정과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 조은정, 「표준영정에 대한 연구」, 『로컬리티 인문학』 제15권,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6.
- 웹자원
- 신화준, "이사부' 표준 영정 포럼 "반신상 배제 전신상이 원칙"",『강원도민일보』, 2009년 8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