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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21일 (수) 11:21 판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현존하는 한역대장경(漢譯大藏經)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는 것은 바로 팔만대장경으로 알려진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이다.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과 교장(敎藏),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을 통틀어 고려대장경이라고 부른다.
초조대장경은 고려(高麗) 현종(顯宗, 1010~1031)대에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한 염원으로 1011년부터 북송판 대장경을 받아들여 판각하기(覆刻)하여 1029년에 완성하였다. 그 후 문종(文宗, 1047~1082)대에 거란 대장경[契丹大藏經]이 유입되자 북송판 대장경에 수록되지 않은 경전들을 간행하여 1087년에 완성함으로써 초조대장경의 정장(正藏)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20여 년 동안 중국, 일본, 우리나라 제가의 장서 1000여 부 5000여 권을 수집하여 분류 정리하고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의 목록을 편찬하였고, 이에 의거하여 초조대장경의 속장(續藏)인 고려 교장(敎藏)을 간행하였다. 그러나 팔공산(八公山) 부인사(符仁寺)에 보관되어 있던 초조재장경의 경판(經板)은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모두 소실되었다.
고려 고종(高宗) 24년(1237)부터 동 38년(1251) 9월에 이르기까지 16년 동안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의 제작이 이루어졌다. 고려는 대장도감(大藏都監)의 본사(本司)를 강화에 두고 분사(分司)를 남해에 설치하여 판각을 진행하였다. 당시 개태사(開泰寺)의 승통(僧統) 수기(守其)는 북송본과 거란본 및 고려대장경 초조본(初雕本)을 대교하여 오류를 정정하는 경문교감(經文校勘)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그 교감의 결과를 『교정별록(校正別錄)』 30권에 기록하였다. 이와 같이 고종 대에 완성을 본 고려 재조대장경은 역대의 모든 대장경 중 가장 정확하고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재조대장경은 남해의 분사대장도감에서 조성됐으며, 강화도 대장경판당에 보관됐다가 태조 7년(1398) 해인사로 옮겨졌다.
작가
최대섭(崔大燮): 1927년~1991년 서양화가. 전북 남원 출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사. 1956년-1965년 영생고등학교 및 한양공업고등학교 교사. 1988년 군산대학교 미술과 교수.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감사. 1974 한국미협 전국회의장상, 1975 카뉴국제회화제 국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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