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기록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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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은 [[박정희]] 대통령 재임중인 1979년에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그려진 그림으로, [[최대섭]] 화백의 작품이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br/>
 
'''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은 [[박정희]] 대통령 재임중인 1979년에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그려진 그림으로, [[최대섭]] 화백의 작품이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br/>
고려시대 배경의 민족기록화 열 한 작품 중 하나로, [[화통도감|화통도감(火筒都監)]]에서    [[고려]] 후기 왜구를 토벌한 무신인 [[최무선]]으로, 그는 14세기 중엽 왜구가 창궐하자 화약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수입에 의존하던 화약 제조와 총기 제작의 국산화를 결심했다.        [[최무선]]이 중인 1592년 10월 1차 [[진주성싸움]]에서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이 3,800명의 관군과 2만여명의 백성들을 지휘하여 [[진주성]]을 공격하던 왜군을 격파하여 곡창지대인 호남 진출을 막아낸 장면을 담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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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배경의 민족기록화 열 한 작품 중 하나로, [[고려]] 후기 무신 [[최무선]]이 [[화통도감|화통도감(火筒都監)]]에서 화약을 제조하는 장면을 담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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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31일 (화) 15:14 판


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
최대섭-화약제조(최무선)-1979s.jpg
작가 최대섭
제작연도 1979년
규격 300호(290.9x197cm)
유형 고려
분류 유화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개요

최무선화통도감최대섭 「화약제조(최무선)」 1979
이 그림에 대한 정보

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박정희 대통령 재임중인 1979년에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그려진 그림으로, 최대섭 화백의 작품이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고려시대 배경의 민족기록화 열 한 작품 중 하나로, 고려 후기 무신 최무선화통도감(火筒都監)에서 화약을 제조하는 장면을 담았다.

민족기록화 작품 시각화 예시

내용

작품 속 인물은 고려 후기 왜구를 토벌한 무신인 최무선으로, 그는 14세기 중엽 왜구가 창궐하자 화약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수입에 의존하던 화약 제조와 총기 제작의 국산화를 결심했다. 그러나 화약 재료 가운데 하나인 염초는 여러 공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구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만드는 방법이나 재료에 따라 성능에도 차이가 많았다. 최무선은 염초 제작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이원(李元)으로부터 염초를 흙에서 추출하는 방법을 배워 드디어 화약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화약을 이용하여 화전(火箭)과 같은 간단한 무기를 실험해 본 결과 자신감을 얻은 최무선은 화약과 화약무기를 연구하고 제조할 화통도감(火筒都監) 설치를 조정에 건의하였다. 이에 1377년(우왕 3) 10월 화통도감이 설치되어 화약과 화약무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최무선화통도감에서 총포류·발사류·로켓병기 등 모두 18종의 화약무기를 개발하였다. 뿐만 아니라 1380년 왜구가 500여척의 선박을 이끌고 금강 하구의 진포로 쳐들어온 진포대첩때 원수 나세(羅世), 심덕부(沈德符)와 함께 각종 화기로 무장한 선박을 이끌고 나가 싸워 큰 공을 세웠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전경과 중경을 격퇴당하는 적군의 모습으로 가득 채우고 이를 검은 색의 거친 윤곽선과 전체적인 붉은 톤으로 묘사함으로써 보는 이의 긴장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널려있는 적군의 시체, 총포의 폭음과 인마(人馬)의 절규로 가득한 아비규환의 상황은 잔혹한 죽음에 대한 보편적인 반감(反感)이나 비애가 아닌 적의 파멸을 통한 아군의 승리를 역으로 강하게 전달한다.[1]
일반적인 민족기록화는 주요 장수나 아군을 중앙에 배치하여 중심으로 삼고 아군의 시점에서 적군의 공격을 막아내거나 추격하는 구도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경우 원근감을 이용하여 화폭을 상하로 이등분하여 하단의 중앙에는 일본의 전통 투구인 가부토를 쓴 귀신 모양을 한 왜장이 한손에는 흰 빛의 일본도를 치켜 들고 있다. 왜장이 탄 말은 사나운 표정으로 울부짖고 있고, 왜장의 왼편에는 등 뒤에 여러 대의 화살을 맞고 고통스럽게 죽아 가는 왜병의 모습과 쓰려져 가는 말을 표현하였다.
작품 상단 왼쪽 끝에는 푸른 색으로 칠해진 남강이 보이고, 왜군의 주요 공격 지점이었던 동문과 북문을 두축으로 성을 공격하는 적군에 각종 무기로 반격하는 조선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차 진주성싸움에서 왜군은 대나무로 만든 사다리와 나무 방패를 이용하여 성을 공격하였는데, 이 작품의 여러 곳에서 대나무 방패 뒤에 숨어 성을 향해 조총을 발사하는 왜군과 사다리를 타고 성안으로 진입하려는 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시민 장군은 백성들에게 군복을 입히고 군기(軍旗)를 여럿 세워 병력을 많아 보이게 하는 심리전을 걸었는데, 그림에서도 성안에 노랑,파랑,적색의 용대기들이 수 없이 나부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관련 민족기록화

고려시대 배경 작품

추출정보

작품정보 연결망

관련항목

노드 관계 노드
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 ~에 의해 그려지다 최대섭
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 ~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 ~을 소재로 삼다 최무선
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 ~을 소재로 삼다 화통도감

시간정보

중심 시간정보명 시간값
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 제작연도 1979년

공간정보

중심 연결정보 공간정보이름 경도 위도
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37.3915557 127.0547403


참고문헌

주석

  1. 박혜성, 「1960-1970년대 민족기록화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3년, 92-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