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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 + | 조선시대 궁중의례 등의 행사에 쓰이는 음악, 노래, 무용을 담당한 기관으로 [[예조|예조(禮曹)]] 소속의 정3품 관청이다.<ref>『經國大典』, 卷1, 「吏典」, “‘掌樂院’. </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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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종 의례에서 연행되는 악무는 예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연행되는 것이므로 예악 모두에 밝은 [[장악원]] 제조의 역할이 중요했다. 음악연주에 뛰어나면서 음악교육에도 능한 전악의 음악감독 역할은 또 다른 맥락에서 중요했다. 이들의 조정과 [[장악원]] 소속 음악인들의 기예가 함께하여 조선시대 궁중음악이 제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ref>송지원, 「조선시대 궁중의례의 예악」, 『韓國史市民講座』, Vol.45, 2009, 111쪽.</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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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전통을 이은 전악서(典樂署), 아악서(雅樂署), 관습도감(慣習都監)과 조선 초 새로 설치된 악학(樂學)에서 이 업무를 담당하다가 1457년(세조 3) 전악서와 아악서를 장악서(掌樂署), 악학과 관습도감을 악학도감(樂學都監)으로 개편했다.<br /> | 고려의 전통을 이은 전악서(典樂署), 아악서(雅樂署), 관습도감(慣習都監)과 조선 초 새로 설치된 악학(樂學)에서 이 업무를 담당하다가 1457년(세조 3) 전악서와 아악서를 장악서(掌樂署), 악학과 관습도감을 악학도감(樂學都監)으로 개편했다.<br /> | ||
− | + | 『경국대전』에 따르면 2명의 당상관(堂上官)이 [[장악원]] 제조(提調)를 맡았고, 정3품의 [[장악원]] 정(正) 1명, 종4품의 첨정(僉正) 1명, 종6품의 주부(主簿) 1명, 종7품의 직장(直長) 1명이 관리로 소속되어 있었다. 실제 음악연주에 관련된 전문 음악인은 체아직(遞兒職)<ref>체아직(遞兒職): 정해진 녹봉이 없이 계절마다 근무 성적을 평가하여 녹봉을 지급하기 위해 만든 벼슬을 말한다.</ref> 녹관으로 잡직(雜織)에 해당했다. [[장악원]]의 체아직 녹관 가운데 음악 전문인으로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품계는 정 6품의 ‘전악(典樂)’<ref>전악(典樂): 1명으로, 악사의 체아직이다.</ref>으로 음악감독의 역할을 담당한다. 전악을 필두로 하여 종 6품의 ‘부전악(副典樂)’,<ref>부전악(副典樂): 2명으로, 1명은 악사의 체아직, 1명은 악생이나 악공의 체아직이다.</ref> 정 7품의 ‘전률(典律)’<ref>전률(典律):2명으로, 1명은 악생의 체아직, 1명은 악공의 체아직이다.</ref>과 종 7품의 ‘부전률(副典律, 2명)’, 정 8품의 ‘전음(典音, 2명)’과 종 8품의 ‘부전음(副典音)’<ref>부전음(副典音): 4명으로, 1명은 악생의 체아직, 3명은 악공의 체아직이다.</ref>, 정 9품의 ‘전성(典聲)’<ref>전성(典聲): 4명은 악생의 체아직, 6명은 악공의 체아직이다.</ref>과 종 9품의 ‘부전성(副典聲)’<ref>부전성(副典聲): 6명은 악생의 체아직, 12명은 악공의 체아직, 4명은 관현맹인의 체아직이다.</ref>이 좌방의 악생과 우방의 악공을 이끌면서 각각 담당한 음악을 준비하여 실제 음악 연주에 임하였다.<ref>송지원, 「조선시대 장악원의 악인과 음악교육 연구」, 『한국음악연구』, Vol.43, 2008, 125쪽.</ref> | |
− | 『경국대전』에 따르면 2명의 당상관(堂上官)이 [[장악원]] 제조(提調)를 맡았고, 정3품의 [[장악원]] 정(正) 1명, 종4품의 첨정(僉正) 1명, 종6품의 주부(主簿) 1명, 종7품의 직장(直長) 1명이 관리로 소속되어 있었다. 실제 음악연주에 관련된 전문 음악인은 체아직(遞兒職)<ref>체아직(遞兒職): 정해진 녹봉이 없이 계절마다 근무 성적을 평가하여 녹봉을 지급하기 위해 만든 벼슬을 말한다.</ref> 녹관으로 잡직(雜織)에 해당했다. [[장악원]]의 체아직 녹관 가운데 음악 전문인으로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품계는 정 6품의 ‘전악(典樂)’<ref>전악(典樂): 1명으로, 악사의 체아직이다.</ref>으로 음악감독의 역할을 담당한다. 전악을 필두로 하여 종 6품의 ‘부전악(副典樂)’,<ref>부전악(副典樂): 2명으로, 1명은 악사의 체아직, 1명은 악생이나 악공의 체아직이다.</ref> 정 7품의 ‘전률(典律)’<ref>전률(典律):2명으로, 1명은 악생의 체아직, 1명은 악공의 체아직이다.</ref>과 종 7품의 ‘부전률(副典律, 2명)’, 정 8품의 ‘전음(典音, 2명)’과 종 8품의 ‘부전음(副典音)’<ref>부전음(副典音): 4명으로, 1명은 악생의 체아직, 3명은 악공의 체아직이다.</ref>, 정 9품의 ‘전성(典聲)’<ref>전성(典聲): 4명은 악생의 체아직, 6명은 악공의 체아직이다.</ref>과 종 9품의 ‘부전성(副典聲)’<ref>부전성(副典聲): 6명은 악생의 체아직, 12명은 악공의 체아직, 4명은 관현맹인의 체아직이다.</ref>이 좌방의 악생과 우방의 악공을 이끌면서 각각 담당한 음악을 준비하여 실제 음악 연주에 임하였다.<ref>송지원, 「조선시대 장악원의 악인과 음악교육 연구」, 『한국음악연구』, Vol.43, 2008, 125쪽.</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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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악 악사 2명, 악생 297명(후보생 100명), 속악 악사 2명, 악공 518명(매 10인당 후보생 1명), 가동(歌童)10명”의 음악인이 속해 있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후보생을 제외한 악사와 악생, 악공, 가동의 수만 합산해도 총 829명이고, 후보생을 포함한다면 981명이라는 거대 인원이 된다. 그 외에 선상기(選上妓), 즉 지방에서 뽑아 올리는 여성 음악인이 150명, 연화대(蓮花臺)10명, 기타 의녀(醫女)등도 여러 연향에서 궁중 정재를 추는 인원으로 동원되어 왕실의 여러 행사에서 각각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악사와 악생, 악공의 인원에 더하여 기녀 150인, 연화대 10인 등을 모두 합산하면 989명(후보생까지 포함하면 1,141명)의 인원이 [[장악원]]에 속하게 된다.<ref>송지원, | + | 아악 악사 2명, 악생 297명(후보생 100명), 속악 악사 2명, 악공 518명(매 10인당 후보생 1명), 가동(歌童)10명”의 음악인이 속해 있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후보생을 제외한 악사와 악생, 악공, 가동의 수만 합산해도 총 829명이고, 후보생을 포함한다면 981명이라는 거대 인원이 된다. 그 외에 선상기(選上妓), 즉 지방에서 뽑아 올리는 여성 음악인이 150명, 연화대(蓮花臺)10명, 기타 의녀(醫女)등도 여러 연향에서 궁중 정재를 추는 인원으로 동원되어 왕실의 여러 행사에서 각각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악사와 악생, 악공의 인원에 더하여 기녀 150인, 연화대 10인 등을 모두 합산하면 989명(후보생까지 포함하면 1,141명)의 인원이 [[장악원]]에 속하게 된다.<ref>송지원, 「조선시대 궁중의례의 예악」, 『韓國史市民講座』, Vol.45, 2009, 109쪽.</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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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6일 (일) 23:06 판
목차
정의
조선시대 궁중의례 등의 행사에 쓰이는 음악, 노래, 무용을 담당한 기관으로 예조(禮曹) 소속의 정3품 관청이다.[1]
내용
업무
조선왕실에서 행해지는 각종 국가전례에는 독립된 의례와 음악이 같이 행해져, 의례를 행할 때 음악이 항상 같이 수반된 의례의 일부였다. 『국조오례의』를 기준으로 보면, 200여종이 넘는 의례에서 다양한 음악이 연주되었다. 대표적인 의례로 종묘대제 등의 제사의례를 비롯해 가례 등에 의례에 악대가 구성되어 음악 연주를 했다.[2] 각종 의례에서 연행되는 악무는 예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연행되는 것이므로 예악 모두에 밝은 장악원 제조의 역할이 중요했다. 음악연주에 뛰어나면서 음악교육에도 능한 전악의 음악감독 역할은 또 다른 맥락에서 중요했다. 이들의 조정과 장악원 소속 음악인들의 기예가 함께하여 조선시대 궁중음악이 제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3]
구성
고려의 전통을 이은 전악서(典樂署), 아악서(雅樂署), 관습도감(慣習都監)과 조선 초 새로 설치된 악학(樂學)에서 이 업무를 담당하다가 1457년(세조 3) 전악서와 아악서를 장악서(掌樂署), 악학과 관습도감을 악학도감(樂學都監)으로 개편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2명의 당상관(堂上官)이 장악원 제조(提調)를 맡았고, 정3품의 장악원 정(正) 1명, 종4품의 첨정(僉正) 1명, 종6품의 주부(主簿) 1명, 종7품의 직장(直長) 1명이 관리로 소속되어 있었다. 실제 음악연주에 관련된 전문 음악인은 체아직(遞兒職)[4] 녹관으로 잡직(雜織)에 해당했다. 장악원의 체아직 녹관 가운데 음악 전문인으로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품계는 정 6품의 ‘전악(典樂)’[5]으로 음악감독의 역할을 담당한다. 전악을 필두로 하여 종 6품의 ‘부전악(副典樂)’,[6] 정 7품의 ‘전률(典律)’[7]과 종 7품의 ‘부전률(副典律, 2명)’, 정 8품의 ‘전음(典音, 2명)’과 종 8품의 ‘부전음(副典音)’[8], 정 9품의 ‘전성(典聲)’[9]과 종 9품의 ‘부전성(副典聲)’[10]이 좌방의 악생과 우방의 악공을 이끌면서 각각 담당한 음악을 준비하여 실제 음악 연주에 임하였다.[11]
아악 악사 2명, 악생 297명(후보생 100명), 속악 악사 2명, 악공 518명(매 10인당 후보생 1명), 가동(歌童)10명”의 음악인이 속해 있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후보생을 제외한 악사와 악생, 악공, 가동의 수만 합산해도 총 829명이고, 후보생을 포함한다면 981명이라는 거대 인원이 된다. 그 외에 선상기(選上妓), 즉 지방에서 뽑아 올리는 여성 음악인이 150명, 연화대(蓮花臺)10명, 기타 의녀(醫女)등도 여러 연향에서 궁중 정재를 추는 인원으로 동원되어 왕실의 여러 행사에서 각각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악사와 악생, 악공의 인원에 더하여 기녀 150인, 연화대 10인 등을 모두 합산하면 989명(후보생까지 포함하면 1,141명)의 인원이 장악원에 속하게 된다.[1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음악 | 장악원 | A는 B에 관장한다 | |
노래 | 장악원 | A는 B에 관장한다 | |
무용 | 장악원 | A는 B에 관장한다 | |
장악원 | 표지석 | A는 B에 남아있다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
1470년 이전 | 장악원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
1895년 | 장악원은 궁내부 장례원으로 이름과 소속이 변경됏다 |
1897년 | 장례원은 교방사로 이름을 변경했다 |
1907년 | 교방사는 장악과로 이름을 변경했다 |
1951년 | 장악원은 국립국악원에서 계승하고 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565642 | 126.9842738 | 장악원 표지석이 종로에 세워져 있다. |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 ↑ 『經國大典』, 卷1, 「吏典」, “‘掌樂院’.
- ↑ 송지원, 「조선시대 장악원의 악인과 음악교육 연구」, 『한국음악연구』, Vol.43, 2008, 125쪽.
- ↑ 송지원, 「조선시대 궁중의례의 예악」, 『韓國史市民講座』, Vol.45, 2009, 111쪽.
- ↑ 체아직(遞兒職): 정해진 녹봉이 없이 계절마다 근무 성적을 평가하여 녹봉을 지급하기 위해 만든 벼슬을 말한다.
- ↑ 전악(典樂): 1명으로, 악사의 체아직이다.
- ↑ 부전악(副典樂): 2명으로, 1명은 악사의 체아직, 1명은 악생이나 악공의 체아직이다.
- ↑ 전률(典律):2명으로, 1명은 악생의 체아직, 1명은 악공의 체아직이다.
- ↑ 부전음(副典音): 4명으로, 1명은 악생의 체아직, 3명은 악공의 체아직이다.
- ↑ 전성(典聲): 4명은 악생의 체아직, 6명은 악공의 체아직이다.
- ↑ 부전성(副典聲): 6명은 악생의 체아직, 12명은 악공의 체아직, 4명은 관현맹인의 체아직이다.
- ↑ 송지원, 「조선시대 장악원의 악인과 음악교육 연구」, 『한국음악연구』, Vol.43, 2008, 125쪽.
- ↑ 송지원, 「조선시대 궁중의례의 예악」, 『韓國史市民講座』, Vol.45, 2009, 109쪽.
- ↑ 국립국악원.
- ↑ 국립국악원.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송지원, 「조선시대 궁중의례의 예악」, 『韓國史市民講座』, Vol.45, 2009.
- 송지원, 「조선시대 장악원의 악인과 음악교육 연구」, 『한국음악연구』, Vol.43,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