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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5일 (토) 20:21 판
민영규(閔泳奎) | |
대표명칭 | 민영규 |
---|---|
한자표기 | 閔泳奎 |
생몰년 | 1846년-1923년 |
본관 | 여흥(驪興) |
자 | 경오(景五) |
시대 | 조선-일제강점기 |
대표직함 | 의정대신, 일본 자작, 이조판서 |
부 | 궁내부 특진관 민경호 |
모 | 진사 오치기의 딸 해주 오씨 |
자녀 | 민봉식 |
상훈 | 훈이등팔괘장, 훈일등태극장, 대훈이화대수장 |
성격 | 인물 |
유형 | 백관 |
목차
정의
조선 후기의 백관 중 문관으로 여흥민씨 척족의 일원이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보고서』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기록되었다. 『순종순정황후가례도감의궤』의 주관자이다.
내용
관직
1875년(고종 12) 별시문과에 급제해 주서에 임명되었으며, 설서, 병조정랑, 서학교수, 장령, 응교 등을 지냈다. 1876년 병조정랑, 1879년 병조참판 등을 거쳐 1882년 형조참판, 예조참판을 지냈다. 1888년 형조판서가 되었고 1892년 이조판서가 되었다. 갑오개혁 때 면직되었다가 1897년(고종 34) 궁내부 대신으로 기용되었다. 1906년(고종 43) 의정대신이 되었고 일제강점 뒤에는 일본에게 자작 작위를 받았다.
사후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 2조 7호, 19호에 근거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으며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보고서』에 기록되었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민영규 | 순종순정황후가례도감의궤 | A는 B를 담당하였다 | |
민경호 | 민영규 | A는 B의 아버지이다 | |
오치기 | 민영규 | A는 B의 외조부이다 | |
해주 오씨 | 민영규 | A는 B의 어머니이다 | |
민봉식 | 민영규 | A는 B의 장남이다 |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