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부복궐상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설명) |
(→지식관계망) |
||
33번째 줄: | 33번째 줄: | ||
=='''지식관계망'''== | =='''지식관계망'''== | ||
===관계정보=== | ===관계정보=== | ||
− | |||
− | |||
− | |||
=='''시각자료'''== | =='''시각자료'''== |
2017년 8월 3일 (목) 16:39 판
지부복궐상소 (持斧伏闕上疏) |
|
대표명칭 | 지부복궐상소 |
---|---|
한자표기 | 持斧伏闕上疏 |
목차
정의
'도끼(斧)'를 '지니고(持)' 임금이 계신 '대궐(闕)'에 꿇어 '엎드려(伏)' '상소(上疏)'를 올린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도끼로 머리를 쳐 달라는 각오로 목숨을 걸고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
설명
유교적 가치관이 중심 이데올로기로 자리하였던 전근대기 군주와 신하의 관계는 '군신유의(君臣有義)'라는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조정에 나아가 군주의 신하가 될 경우, 신하의 예를 다하여 군주를 섬긴다. 이때 신하의 예를 다한다는 것은 군주 개인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신하로서 군주를 어떻게 섬겨야 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맹자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이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군주와 신하 사이에 요구되었던 '올바름(義)'의 가치는, 군주와 신하 상호 모두에게 있어서 중요한 덕목으로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지부복궐상소'는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신하된 자가 임금에게 올바름의 가치를 펴고자 했던 마음이 가장 극도로 발현된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 우탁의 지부복궐상소
- 내용 미정리
조선시대 중기, 조헌의 지부복궐상소
- 내용 미정리
조선시대 후기, 최익현의 지부복궐상소
- 내용 미정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24745&cid=42941&categoryId=42941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한설에 핀 매화_면암선생 서거 110주년 추모공연 "최익현의 지부복궐상소"(2016.04.17)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