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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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으면서 지붕돌 네 귀퉁이의 치켜올림이 경쾌한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탑 가운데 하나이다. 기단에 새겨진 아름다운 조각과 1층 몸돌의 세련된 불상 조각은 진전사의 화려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ref>"[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1,01220000,32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문화재검색,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유산정보』<sup>online</sup></online></html>, 문화재청.</ref> |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으면서 지붕돌 네 귀퉁이의 치켜올림이 경쾌한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탑 가운데 하나이다. 기단에 새겨진 아름다운 조각과 1층 몸돌의 세련된 불상 조각은 진전사의 화려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ref>"[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1,01220000,32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문화재검색,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유산정보』<sup>online</sup></online></html>, 문화재청.</ref> | ||
− | 1966년 2월 28일 국보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5m이다. | + | 1966년 2월 28일 국보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5m이다. 탑은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은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천의 자락을 흩날리는 비천상(飛天像)이 사방으로 각각 둘씩 모두 여덟이 양각되었고, 위층 기단에는 구름 위에 앉아 무기를 들고 있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이 사방에 둘씩 양각되었다. 1층 탑신에는 사방불(四方佛) 각 면마다 양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가 살짝 올라가 경쾌하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3층 상륜부(相輪部)에는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지고 노반(露盤)만 남아있을 뿐이다. |
− | 탑은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은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천의 자락을 흩날리는 비천상(飛天像)이 사방으로 각각 둘씩 모두 여덟이 양각되었고, 위층 기단에는 구름 위에 앉아 무기를 들고 있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이 사방에 둘씩 양각되었다. 1층 탑신에는 사방불(四方佛) 각 면마다 양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가 살짝 올라가 경쾌하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3층 상륜부(相輪部)에는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지고 노반(露盤)만 남아있을 뿐이다. | ||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전성기의 정교함과 기품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화려하거나 장식적이지 않고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균형이 잡혀 있으면서 지붕돌 네 귀퉁이의 치켜올림이 경쾌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기단에 새겨진 아름다운 조각과 탑신의 세련된 불상 조각은 진전사의 화려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전성기의 정교함과 기품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화려하거나 장식적이지 않고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균형이 잡혀 있으면서 지붕돌 네 귀퉁이의 치켜올림이 경쾌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기단에 새겨진 아름다운 조각과 탑신의 세련된 불상 조각은 진전사의 화려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 ||
불국사 삼층석탑의 장중함이 이 탑에서는 아담함으로 바뀌었으며, 불국사 삼층석탑이 중대 신라 중앙 귀족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이 탑은 지방 호족의 새로운 문화 능력을 과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07798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불국사 삼층석탑의 장중함이 이 탑에서는 아담함으로 바뀌었으며, 불국사 삼층석탑이 중대 신라 중앙 귀족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이 탑은 지방 호족의 새로운 문화 능력을 과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07798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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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전사터의 법당자리 앞에 서 있는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있는데, 기단으로부터 탑신에 이르기까지 많은 새김장식이 베풀어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 진전사터의 법당자리 앞에 서 있는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있는데, 기단으로부터 탑신에 이르기까지 많은 새김장식이 베풀어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 ||
아랫기단은 높직한 댓돌 위로 바닥, 벽, 덮개를 형성하는 석재를 각 부위마다 여러 장의 돌로 맞추고 있는데 벽면에는 귀기둥과 각 면 하나씩의 사잇기둥이 새겨지고, 덮개돌에는 약간의 경사를 두면서 둥글고 각이 진 2단의 괴임턱을 돋우었다. 윗기단은 각 면에 귀기둥과 사잇기둥 하나씩을 새겼고, 덮개돌에는 밑에 안턱이 있고 위에는 각이 진 2단의 괴임턱이 돋아 있다. 그런데 이 탑의 상하 기단에는 각 면을 사잇기둥으로 이등분하여 아래층에는 연꽃대좌 위에 광배를 갖추고 띠자락을 휘날리며 앉아 있는 비천상을 새겨 넣고, 위층의 벽면에는 팔부중상을 배치하였는데 조각기법이 매우 정교하고 유려하며 생기가 있다. | 아랫기단은 높직한 댓돌 위로 바닥, 벽, 덮개를 형성하는 석재를 각 부위마다 여러 장의 돌로 맞추고 있는데 벽면에는 귀기둥과 각 면 하나씩의 사잇기둥이 새겨지고, 덮개돌에는 약간의 경사를 두면서 둥글고 각이 진 2단의 괴임턱을 돋우었다. 윗기단은 각 면에 귀기둥과 사잇기둥 하나씩을 새겼고, 덮개돌에는 밑에 안턱이 있고 위에는 각이 진 2단의 괴임턱이 돋아 있다. 그런데 이 탑의 상하 기단에는 각 면을 사잇기둥으로 이등분하여 아래층에는 연꽃대좌 위에 광배를 갖추고 띠자락을 휘날리며 앉아 있는 비천상을 새겨 넣고, 위층의 벽면에는 팔부중상을 배치하였는데 조각기법이 매우 정교하고 유려하며 생기가 있다. | ||
− | 탑신부는 각 층의 몸체와 지붕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네 벽에는 귀기둥이 새겨지고 처마 밑에는 5단의 층단받침이 나 있으며, 지붕 위에는 각이 진 2단의 괴임턱을 돋우고 있다. 특히 1층탑신의 네 벽에는 각 면에 하나씩 앉은 부처를 유려하게 새기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없어졌다 | + | 탑신부는 각 층의 몸체와 지붕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네 벽에는 귀기둥이 새겨지고 처마 밑에는 5단의 층단받침이 나 있으며, 지붕 위에는 각이 진 2단의 괴임턱을 돋우고 있다. 특히 1층탑신의 네 벽에는 각 면에 하나씩 앉은 부처를 유려하게 새기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없어졌다.<ref>한국불교미술대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75864&cid=46710&categoryId=46710 진전사지삼층석탑]",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한국사전연구사.</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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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관계망'''== | =='''지식관계망'''== |
2017년 7월 15일 (토) 12:28 판
정의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진전사지(陳田寺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내용
탑은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 놓은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날아갈 듯한 옷을 입은 천인상(天人像)이 있으며, 위층 기단에는 구름위에 앉아 무기를 들고 있는 웅건한 모습의 8부신중(八部神衆)이 있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1층 몸돌에는 각기 다양한 모습의 불상 조각들이 있다.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려져 있어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3층 지붕돌 꼭대기에는 받침돌만 남아있을 뿐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으면서 지붕돌 네 귀퉁이의 치켜올림이 경쾌한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탑 가운데 하나이다. 기단에 새겨진 아름다운 조각과 1층 몸돌의 세련된 불상 조각은 진전사의 화려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1]
1966년 2월 28일 국보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5m이다. 탑은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은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천의 자락을 흩날리는 비천상(飛天像)이 사방으로 각각 둘씩 모두 여덟이 양각되었고, 위층 기단에는 구름 위에 앉아 무기를 들고 있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이 사방에 둘씩 양각되었다. 1층 탑신에는 사방불(四方佛) 각 면마다 양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가 살짝 올라가 경쾌하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3층 상륜부(相輪部)에는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지고 노반(露盤)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전성기의 정교함과 기품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화려하거나 장식적이지 않고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균형이 잡혀 있으면서 지붕돌 네 귀퉁이의 치켜올림이 경쾌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기단에 새겨진 아름다운 조각과 탑신의 세련된 불상 조각은 진전사의 화려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불국사 삼층석탑의 장중함이 이 탑에서는 아담함으로 바뀌었으며, 불국사 삼층석탑이 중대 신라 중앙 귀족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이 탑은 지방 호족의 새로운 문화 능력을 과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2]
진전사터의 법당자리 앞에 서 있는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있는데, 기단으로부터 탑신에 이르기까지 많은 새김장식이 베풀어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아랫기단은 높직한 댓돌 위로 바닥, 벽, 덮개를 형성하는 석재를 각 부위마다 여러 장의 돌로 맞추고 있는데 벽면에는 귀기둥과 각 면 하나씩의 사잇기둥이 새겨지고, 덮개돌에는 약간의 경사를 두면서 둥글고 각이 진 2단의 괴임턱을 돋우었다. 윗기단은 각 면에 귀기둥과 사잇기둥 하나씩을 새겼고, 덮개돌에는 밑에 안턱이 있고 위에는 각이 진 2단의 괴임턱이 돋아 있다. 그런데 이 탑의 상하 기단에는 각 면을 사잇기둥으로 이등분하여 아래층에는 연꽃대좌 위에 광배를 갖추고 띠자락을 휘날리며 앉아 있는 비천상을 새겨 넣고, 위층의 벽면에는 팔부중상을 배치하였는데 조각기법이 매우 정교하고 유려하며 생기가 있다. 탑신부는 각 층의 몸체와 지붕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네 벽에는 귀기둥이 새겨지고 처마 밑에는 5단의 층단받침이 나 있으며, 지붕 위에는 각이 진 2단의 괴임턱을 돋우고 있다. 특히 1층탑신의 네 벽에는 각 면에 하나씩 앉은 부처를 유려하게 새기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없어졌다.[3]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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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 양양 진전사지 | A는 B에 있다 |
시각자료
영상
- YTN NEWS, "삼층석탑 / YTN", YouTube, 게시일: 2016년 5월 11일.
주석
- ↑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 ↑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두산백과』online . - ↑ 한국불교미술대전, "진전사지삼층석탑",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한국사전연구사.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