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36번째 줄: 36번째 줄:
 
|필드수= 15
 
|필드수= 15
 
}}
 
}}
==정의==
+
=='''정의'''==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이 목민관, 즉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指針)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8631 목민심서]",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온라인 서비스의 내용에서 발췌·편집. 2017년 04월 27일 확인.</ref>
+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이 목민관, 즉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指針)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8631 목민심서]",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내용==
+
=='''설명'''==
*『목민심서(牧民心書)』는 1818년 정약용(丁若鏞)이 집필한 책으로, 48권 16책으로 된 필사본이다. 이 책은 부임(赴任)·율기(律己 : 자기 자신을 다스림)·봉공(奉公)·애민(愛民)·이전(吏典)·호전(戶典)·예전(禮典)·병전(兵典)·형전(刑典)·공전(工典)·진황(賑荒)·해관(解官 : 관원을 면직함) 등 모두 12편으로 구성되었고, 각 편은 다시 6조로 나누어 모두 72조로 편제되었다.
+
『목민심서(牧民心書)』는 1818년 [[정약용]](丁若鏞)이 집필한 책으로, 48권 16책으로 된 필사본이다. 이 책은 부임(赴任)·율기(律己 : 자기 자신을 다스림)·봉공(奉公)·애민(愛民)·이전(吏典)·호전(戶典)·예전(禮典)·병전(兵典)·형전(刑典)·공전(工典)·진황(賑荒)·해관(解官 : 관원을 면직함) 등 모두 12편으로 구성되었고, 각 편은 다시 6조로 나누어 모두 72조로 편제되었다.<br/>
*『목민심서』를 비롯해 조선 초기의 『목민심감(牧民心鑑)』, 후기의 『거관요람(居官要覽)』·『거관대요(居官大要)』·『임관정요(臨官政要)』(안정복) 등 여러 목민서가 지향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목민관의 정기(正己 :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함)와 청백 사상이 전편에 걸쳐 강하게 흐르고 있는 점이다. 또한, 청렴은 수령의 본무이며 모든 선(善)의 원천이며 덕의 근본이니, 청렴하지 않고 능히 수령 노릇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
『목민심서』를 비롯해 조선 초기의 『목민심감(牧民心鑑)』, 후기의 『거관요람(居官要覽)』·『거관대요(居官大要)』·『임관정요(臨官政要)』(안정복) 등 여러 목민서가 지향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목민관의 정기(正己 :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함)와 청백 사상이 전편에 걸쳐 강하게 흐르고 있는 점이다. 또한, 청렴은 수령의 본무이며 모든 선(善)의 원천이며 덕의 근본이니, 청렴하지 않고 능히 수령 노릇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br/>
*이 책은 1901년 광문사에서 인간(印刊)한 바 있으며, 1969년 민족문화추진회와 1977년 대양서적(大洋書籍), 1981년 다산연구회(茶山硏究會)에서 각각 국역이 간행되었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8631 목민심서]",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온라인 서비스의 내용에서 발췌·편집. 2017년 04월 27일 확인.</ref>
+
이 책은 1901년 광문사에서 인간(印刊)한 바 있으며, 1969년 민족문화추진회와 1977년 대양서적(大洋書籍), 1981년 다산연구회(茶山硏究會)에서 각각 국역이 간행되었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8631 목민심서]",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시각자료==
+
=='''지식 관계망'''==
 
+
===관계정보===
==관련항목==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style="width:30%"|항목A!!style="width:30%"|항목B!!style="width:25%"|관계!!style="width:15%"|비고
 
!style="width:30%"|항목A!!style="width:30%"|항목B!!style="width:25%"|관계!!style="width:15%"|비고
52번째 줄: 51번째 줄:
 
| [[정약용]] || {{PAGENAME}}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818년
 
| [[정약용]] || {{PAGENAME}}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818년
 
|-
 
|-
 +
| {{PAGENAME}} || [[경세유표]]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
 +
| {{PAGENAME}} || [[흠흠신서]]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
 +
|{{PAGENAME}}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
  
==시간정보==
+
===시간정보===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width:100%;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width:100%;
 
!style="width:20%px"|시간정보!!style="width:80%px"|내용
 
!style="width:20%px"|시간정보!!style="width:80%px"|내용
 
|-
 
|-
|1818년 || [[정약용]]이 {{PAGENAME}}를 창작하였다.
+
|1818년 || [[정약용]]이 {{PAGENAME}}를 저술하였다.
 
|}
 
|}
<!--
+
 
==공간정보==
+
===공간정보===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width:100%;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width:100%;  
!style="width:20%px"|공간정보!!style="width:80%px"|내용
+
!style="width:5%px"|위도!!style="width:5%px"|경도!!style="width:90%px"|내용
 
|-
 
|-
|127.054364/37.392258 || [[장서각]]에 {{PAGENAME}}가 소장되어 있다.
+
| 37.392258|| 127.054364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PAGENAME}}가 소장되어 있다.
 
|}
 
|}
-->
 
==참고문헌==
 
  
==주석==
+
=='''시각자료'''==
 +
===가상현실===
 +
===갤러리===
 +
===영상===
 +
 
 +
=='''주석'''==
 
<references/>
 
<references/>
  
[[분류:민족기록화]]
+
=='''참고문헌'''==
[[분류:문헌]]
+
 
[[분류:민족기록화 문헌]]
+
[[분류:민족기록화]][[분류:문헌]][[분류:민족기록화 문헌]]

2017년 7월 12일 (수) 10:29 판

틀:문헌정보2

정의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이 목민관, 즉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指針)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1]

설명

『목민심서(牧民心書)』는 1818년 정약용(丁若鏞)이 집필한 책으로, 48권 16책으로 된 필사본이다. 이 책은 부임(赴任)·율기(律己 : 자기 자신을 다스림)·봉공(奉公)·애민(愛民)·이전(吏典)·호전(戶典)·예전(禮典)·병전(兵典)·형전(刑典)·공전(工典)·진황(賑荒)·해관(解官 : 관원을 면직함) 등 모두 12편으로 구성되었고, 각 편은 다시 6조로 나누어 모두 72조로 편제되었다.
『목민심서』를 비롯해 조선 초기의 『목민심감(牧民心鑑)』, 후기의 『거관요람(居官要覽)』·『거관대요(居官大要)』·『임관정요(臨官政要)』(안정복) 등 여러 목민서가 지향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목민관의 정기(正己 :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함)와 청백 사상이 전편에 걸쳐 강하게 흐르고 있는 점이다. 또한, 청렴은 수령의 본무이며 모든 선(善)의 원천이며 덕의 근본이니, 청렴하지 않고 능히 수령 노릇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책은 1901년 광문사에서 인간(印刊)한 바 있으며, 1969년 민족문화추진회와 1977년 대양서적(大洋書籍), 1981년 다산연구회(茶山硏究會)에서 각각 국역이 간행되었다.[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정약용 목민심서 A는 B를 저술하였다 1818년
목민심서 경세유표 A는 B와 관련이 있다
목민심서 흠흠신서 A는 B와 관련이 있다
목민심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818년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저술하였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392258 127.054364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목민심서가 소장되어 있다.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1. "목민심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목민심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