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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7일 (목) 15:53 판
야자대 (也字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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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야자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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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也字帶 |
이칭별칭 | 속대 |
구분 | 대 |
착용신분 | 문무백관 |
착용성별 | 남성 |
목차
정의
내용
복식구성
착용신분
백관이 착용한다.
착용상황
형태
야자대는 품대와 같이 띠의 가죽을 직물로 감싸고 니금(泥金)으로 5줄의 선을 그린 후 그 위에 띠돈을 장식한다. 품대와 다른 것은 긴 띠의 안쪽에 짧은 보조대가 달려 있는데 이것이 야자대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띠 겉면의 등부분에 북두칠성이라고 하는 7개의 장방형 띠돈을 달았다. 그리고 띠의 양 끝에는 버클과 타미 또는 달미(撻尾)라고 기록되어 있는 끝장식용 띠돈이 각각 달려 있다. 띠의 안쪽에 달린 보조대에는 버클의 걸쇠을 고정하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는데 긴 띠의 버클의 걸쇠와 연결하여 띠를 채운다. 타미가 달린 쪽의 긴 띠는 반대쪽 허리띠에 꽂아 아래로 길게 내려뜨렸다.[1] 이렇게 띠의 한쪽을 늘어뜨린 형태가 ‘야(也)’자와 비슷하여 ‘야자대’라 한다.[2]
기타
공복에 사용하는 야자대는 『경국대전』에 1품은 서각(犀角)을 사용하고 2품과 정3품은 여지금(荔枝金)을, 종3품 이하 9품까지는 흑각을 사용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의 기록에는 야자품대, 야자서대(也字犀帶), 야자금대(也字金帶), 학정야대(鶴頂也帶), 은야대(銀也帶), 야자오각대(也字烏角帶) 등의 기록이 보인다. 대체로 상복용 품대 띠돈과 일치한다. 따라서 착용자의 품계에 따라 상복이나 시복용 품대의 띠돈 재료를 야자대의 띠돈으로 사용 한 것으로 짐작된다.
대전선사박물관에는 1888년 송종오(宋鍾五1828~1904)가 장원급제하여 사용한 것이라고 하는 야자대가 소장되어 있다. 청색 비단으로 싼 204.5cm 길이의 띠에 띠돈 11개가 장식되어 있다. 띠를 보관하는 통에는 금야대(갏也帶)라고 쓰여있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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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대 | 왕 | A는 B를 착용하였다 |
야자대 | 왕세자 | A는 B를 착용하였다 |
야자대 | 왕세손 | A는 B를 착용하였다 |
야자대 | 도포 | A는 B에 착용한다 |
야자대 | 의궤 | A는 B에 기록되어 있다 |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 ↑ 이은주, 「궁궐 안 특별한 사람들의 옷차림-제12편 문무백관의 공복」, 『월간 문화재식』 339호,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2, 13쪽.
- ↑ 이은주, 「《덕온공주가례등록》을 통해 본 공주가례복식」, 『한국복식』 30호, 단국대학교석주선기념박물관, 2012, 82쪽.
- ↑ 이은주, 「궁궐 안 특별한 사람들의 옷차림-제12편 문무백관의 공복」, 『월간 문화재식』 339호,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2, 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