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인각사 석불좌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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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체표현이나 의습선의 표현, 상호 표현 등 모든 면에서 부드럽게 처리하였다. 머리에는 굵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큼직하게 솟아 있다. | + | 신체표현이나 의습선의 표현, 상호 표현 등 모든 면에서 부드럽게 처리하였다. 머리에는 굵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큼직하게 솟아 있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991641 군위 인각사 석불좌상(軍威 麟角寺 石佛坐像)]",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얼굴은 전체적으로 통통하고 둥글한 윤곽에 눈코입이 작게 표현 되었으며, 특히 입이 작고 양 끝이 움푹하게 들어가 있어서 뺨이 더 통통하게 보인다. 양 귓불은 길게 늘어져 어깨까지 닿아 있다.<ref>주진령,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7066 군위인각사석불좌상]",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목에는 3개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표현되었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991641 군위 인각사 석불좌상(軍威 麟角寺 石佛坐像)]",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 | 얼굴은 전체적으로 통통하고 둥글한 윤곽에 눈코입이 작게 표현 되었으며, 특히 입이 작고 양 끝이 움푹하게 들어가 있어서 뺨이 더 통통하게 보인다. 양 귓불은 길게 늘어져 어깨까지 닿아 있다. | ||
− | 목에는 3개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표현되었다. | ||
− | 양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평행된 옷주름이 촘촘하게 물 흐르듯 새겨져 있으며, U자형으로 넓게 트인 가슴에는 속옷과 띠매듭이 드러나고 있다. 무릎사이의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퍼진 옷주름은 양팔뚝을 감싸고 흘러내린 대의(大衣)의 주름과 겹쳐져 무릎 부근에서 크게 3단의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손 모양은 오른손으로 촉지인(觸地印)을 취하고 있고, 왼손으로 선정인(禪定印)을 취하였으며, 손 위에는 조그마한 보주(寶珠)를 올려 놓았다. | + | 양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평행된 옷주름이 촘촘하게 물 흐르듯 새겨져 있으며, U자형으로 넓게 트인 가슴에는 속옷과 띠매듭이 드러나고 있다. 무릎사이의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퍼진 옷주름은 양팔뚝을 감싸고 흘러내린 대의(大衣)의 주름과 겹쳐져 무릎 부근에서 크게 3단의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손 모양은 오른손으로 촉지인(觸地印)을 취하고 있고, 왼손으로 선정인(禪定印)을 취하였으며, 손 위에는 조그마한 보주(寶珠)를 올려 놓았다.<ref>"[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3390000,37 군위인각사석불좌상]", 문화재검색,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유산정보』<sup>online</sup></online></html>, 문화재청.</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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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4일 (수) 15:53 판
정의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인각사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1]
내용
원래 석불좌상은 인각사 괴산1리에 있던 것을 옮겨 온 것이며 주재료는 사암이다. 전체 높이 약 153㎝, 불두 높이 약 53.5㎝, 어깨 폭 약 64㎝, 무릎 폭 약 97.5㎝이다.[2]
신체표현이나 의습선의 표현, 상호 표현 등 모든 면에서 부드럽게 처리하였다. 머리에는 굵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큼직하게 솟아 있다.[3] 얼굴은 전체적으로 통통하고 둥글한 윤곽에 눈코입이 작게 표현 되었으며, 특히 입이 작고 양 끝이 움푹하게 들어가 있어서 뺨이 더 통통하게 보인다. 양 귓불은 길게 늘어져 어깨까지 닿아 있다.[4] 목에는 3개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표현되었다.[5]
양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평행된 옷주름이 촘촘하게 물 흐르듯 새겨져 있으며, U자형으로 넓게 트인 가슴에는 속옷과 띠매듭이 드러나고 있다. 무릎사이의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퍼진 옷주름은 양팔뚝을 감싸고 흘러내린 대의(大衣)의 주름과 겹쳐져 무릎 부근에서 크게 3단의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손 모양은 오른손으로 촉지인(觸地印)을 취하고 있고, 왼손으로 선정인(禪定印)을 취하였으며, 손 위에는 조그마한 보주(寶珠)를 올려 놓았다.[6]
불상 신체의 양감이 표현되지 않은 점, 경직된 어깨, 높고 짧은 양 무릎, 옷 전체에 등간격으로 음각된 의습선 등으로 보아 양 무릎에 의습선을 표현하지 않거나 신체의 양감이 풍부하게 표현된 9세기의 불상과는 다르며, 또한 상호와 신체 등이 큼직하게 표현되기 시작한 고려의 불상과도 달라[7] 제작시기가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일 것으로 짐작된다. 불상 양식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하게 이용될 수 있다.[8]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군위 인각사 석불좌상 | 군위 인각사 | A는 B에 있다 |
주석
- ↑ 주진령, "군위인각사석불좌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군위 인각사 석불좌상(軍威 麟角寺 石佛坐像)",
『두산백과』online . - ↑ "군위 인각사 석불좌상(軍威 麟角寺 石佛坐像)",
『두산백과』online . - ↑ 주진령, "군위인각사석불좌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군위 인각사 석불좌상(軍威 麟角寺 石佛坐像)",
『두산백과』online . - ↑ "군위인각사석불좌상",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 ↑ 주진령, "군위인각사석불좌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군위 인각사 석불좌상(軍威 麟角寺 石佛坐像)",
『두산백과』online .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