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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 오합사는 백제 멸망과 관련된 불우한 이야기를 간직한 절이다. 『삼국사기』에는 의자왕 15년 5월에 “흰말이 북악에 있는 오합사에 들어가서 불우(佛宇)를 돌며 울다가 며칠 만에 죽었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유사』에도 의자왕 19년에 “오합사에 큰 붉은말이 있어 밤낮 여섯 시에 사원을 돌았다”고 쓰어 있다.<ref>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돌배게, 2009.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7795&cid=42840&categoryId=42852 성주사터]",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 오합사는 백제 멸망과 관련된 불우한 이야기를 간직한 절이다. 『삼국사기』에는 의자왕 15년 5월에 “흰말이 북악에 있는 오합사에 들어가서 불우(佛宇)를 돌며 울다가 며칠 만에 죽었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유사』에도 의자왕 19년에 “오합사에 큰 붉은말이 있어 밤낮 여섯 시에 사원을 돌았다”고 쓰어 있다.<ref>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돌배게, 2009.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7795&cid=42840&categoryId=42852 성주사터]",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Blockquote|현경(顯慶) 4년 기미(己未)에 백제의 오회사(烏會寺, 오합사(烏合寺)라고도 한다)에 커다란 붉은 말이 나타나 밤낮으로 여섯 시간을 절에서 거닐다가 길을 따라 가버렸고, 2월에는 많은 여우들이 의자궁(義慈宮)에 들어왔는데 그 중 흰 여우 한 마리가 좌평의 책상 위에 앉았다.
 
{{Blockquote|현경(顯慶) 4년 기미(己未)에 백제의 오회사(烏會寺, 오합사(烏合寺)라고도 한다)에 커다란 붉은 말이 나타나 밤낮으로 여섯 시간을 절에서 거닐다가 길을 따라 가버렸고, 2월에는 많은 여우들이 의자궁(義慈宮)에 들어왔는데 그 중 흰 여우 한 마리가 좌평의 책상 위에 앉았다.
|출처=『삼국유사』 권 제1, 제 1기이,「태종춘추공」.<ref>"[http://db.history.go.kr/item/level.do?setId=2&itemId=sy&synonym=off&chinessChar=on&position=1&levelId=sy_001r_0020_0360_0080 의자왕 말기 백제 멸망을 암시하는 흉조가 이어진다]",『삼국유사』 권 제1, 제 1기이, 「태종춘추공」,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사데이터베이스』<sup>online</sup></online></html>, 국사편찬위원회.</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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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1960년대에도 간간이 나오는 백제 기와조각들 때문에 오합사로 추정되어 왔으며 본격적인 발굴에서는 백제 시대 기와조각들이 더욱 많이 출토되었다.<ref>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돌배게, 2009.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7795&cid=42840&categoryId=42852 성주사터]",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이미 1960년대에도 간간이 나오는 백제 기와조각들 때문에 오합사로 추정되어 왔으며 본격적인 발굴에서는 백제 시대 기와조각들이 더욱 많이 출토되었다.<ref>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돌배게, 2009.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7795&cid=42840&categoryId=42852 성주사터]",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2017년 5월 19일 (금) 15:47 판

보령 성주사지
(保寧 聖住寺址)
대표명칭 보령 성주사지
한자 保寧 聖住寺址
주소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2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제307호
문화재 지정일 1984년 8월 13일
관리자 보령시
건립시기 백제시대
창건자 무염
경내문화재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 보령 성주사지 중앙삼층석탑,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 보령 성주사지 석등, 보령 성주사지 석계단, 보령 성주사지 석불입상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절터.[1]

내용

성주사(聖住寺)는 신라 말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로, 한때는 2,000여 명의 승려가 머물며 수도하던 전국 최고의 절로 손꼽히던 곳이다.[2]

통일신라 말기에 유행한 선종은 어려운 불경을 모르더라도 수양을 잘하기만 하면 마음속에 있는 불성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불교 종파이다. 그리하여 많은 백성의 지지를 받아 크게 유행하였고, 선종 불교의 큰 중심지 절이 전국에 9개가 세워졌는데, 이를 구산선문이라고 한다. 이 전국 구산선문 중의 하나가 성주산문(聖住山門)이며 그 중심지가 성주사이다. 특히 성주산문은 구산선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컸고 많은 승려를 배출한 최대의 산문이었으며, 낭혜(무염)는 당시 최고의 선종 승려였다. 성주사는 조선 시대에 임진왜란을 겪으며 쇠퇴하다가 17세기말 폐사되었고, 지금은 그 터와 많은 유물이 남아 있어 옛 성주사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3]

역사

성주사(聖住寺)는 백제 때 오합사(烏合寺)로 불리다가 승려 낭혜이 오합사로 오면서 절이 크게 중창되었고 그에 따라 통일신라 문선왕 때에 성주사로 개칭된 것이다. 『숭암산 성주사 사적』(崇巖山 聖住寺 事蹟)에 따르면 오합사는 성주사의 전신인데 백제 법왕이 599년에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의 원혼을 위무하려는 뜻에서 세운 절이라고 한다. 따라서 오합사는 백제왕실에서 매우 중히 여긴 절이었던 듯하다.[4]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 오합사는 백제 멸망과 관련된 불우한 이야기를 간직한 절이다. 『삼국사기』에는 의자왕 15년 5월에 “흰말이 북악에 있는 오합사에 들어가서 불우(佛宇)를 돌며 울다가 며칠 만에 죽었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유사』에도 의자왕 19년에 “오합사에 큰 붉은말이 있어 밤낮 여섯 시에 사원을 돌았다”고 쓰어 있다.[5] {{Blockquote|현경(顯慶) 4년 기미(己未)에 백제의 오회사(烏會寺, 오합사(烏合寺)라고도 한다)에 커다란 붉은 말이 나타나 밤낮으로 여섯 시간을 절에서 거닐다가 길을 따라 가버렸고, 2월에는 많은 여우들이 의자궁(義慈宮)에 들어왔는데 그 중 흰 여우 한 마리가 좌평의 책상 위에 앉았다.

|출처=『삼국유사』 권 제1, 제 1기이,「태종춘추공」.[6]

이미 1960년대에도 간간이 나오는 백제 기와조각들 때문에 오합사로 추정되어 왔으며 본격적인 발굴에서는 백제 시대 기와조각들이 더욱 많이 출토되었다.[7]

신라 말의 학자인 최치원(崔致遠)낭혜를 기념하며 쓴 비가 바로 낭혜화상부도비(郞慧和尙浮屠碑)이다. 신라시대 부도비 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이 부도비에는 최치원이 지은 5,000여 자의 글씨가 몸체에 새겨져 있다.[8]

명칭유래

무염국사(無染國師)가 이 절에 있었기에 그를 성인(聖人)으로 보고, 성인이 주석한 절이니 ‘성주사(聖住寺)’라 이름을 붙였으며 산도 마을도 그에 따라 이름이 바꼈다.[9]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보령 성주사지 A는 B에 있다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 보령 성주사지 A는 B에 있다
보령 성주사지 중앙삼층석탑 보령 성주사지 A는 B에 있다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 보령 성주사지 A는 B에 있다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 보령 성주사지 A는 B에 있다
보령 성주사지 석등 보령 성주사지 A는 B에 있다
보령 성주사지 석계단 보령 성주사지 A는 B에 있다
보령 성주사지 석불입상 보령 성주사지 A는 B에 있다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무염 A는 B를 위한 비이다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최치원 A는 B가 비문을 지었다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최인연 A는 B가 비문을 썼다
무염 보령 성주사지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보령 성주사지 성주산문 A는 B에 포함된다
성주산문 구산선문 A는 B에 포함된다
구산선문 선종 A는 B에 포함된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599년 백제 법왕에 의해 오합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845년 무염오합사의 주지가 되어 크게 중창하였다.
신라 문성왕오합사에서 성주사로 개명되었다.
888년 무염성주사에서 입적하였다.
임진왜란기 성주사 건물이 크게 소실되었다.
1984년 사적 제 307호로 지정되었다.

시각자료

영상

  • 박오덕, "[우리동네 TV 보령 성주사지]", YouTube, 게시일: 2016년 10월 5일.

주석

  1. 조유전, "보령성주사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최정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마로니에북스, 2010. 온라인 참조: "성주사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3. "성주사지", 『위키백과』online, wiklpedia.
  4.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돌배게, 2009. 온라인 참조: "성주사터",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5.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돌배게, 2009. 온라인 참조: "성주사터",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6. "의자왕 말기 백제 멸망을 암시하는 흉조가 이어진다", 『삼국유사』 권 제1, 제 1기이, 「태종춘추공」, 『한국사데이터베이스』online, 국사편찬위원회.
  7.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돌배게, 2009. 온라인 참조: "성주사터",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8. 최정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마로니에북스, 2010. 온라인 참조: "성주사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9.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돌배게, 2009. 온라인 참조: "성주사터",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참고문헌

  • 조유전, "보령성주사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최정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마로니에북스, 2010. 온라인 참조: "성주사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돌배게, 2009. 온라인 참조: "성주사터",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성주사지", 『위키백과』online, wikl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