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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디미방』에는 국수·떡·만두·김치·찜·국·약과 등 25종류의 음식 만드는 법과 술·초 만드는 법, 고기·과일·채소·해산물 저장하는 법 등이 적혀 있다. 고려 말에 등장한 발효떡인 상화(霜花)의 구체적인 조리법이 문헌상 처음으로 설명되어 있으며, 녹말·녹두가루·메밀 등을 이용한 여러 종류의 국수, 훈연법에 의한 고기저장법이 적혀 있는 점 등이 주목된다 <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40쪽.</REF> | 『음식디미방』에는 국수·떡·만두·김치·찜·국·약과 등 25종류의 음식 만드는 법과 술·초 만드는 법, 고기·과일·채소·해산물 저장하는 법 등이 적혀 있다. 고려 말에 등장한 발효떡인 상화(霜花)의 구체적인 조리법이 문헌상 처음으로 설명되어 있으며, 녹말·녹두가루·메밀 등을 이용한 여러 종류의 국수, 훈연법에 의한 고기저장법이 적혀 있는 점 등이 주목된다 <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40쪽.</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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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장자를 중심으로 가계를 계승하고, 제사권과 재산상속권을 적장자에게 부여하는 종법이 17세기에 양반가 사이에서 정착되어 갔다. 이렇게 종가가 설립되고 종가를 중심으로 혈연집단인 문중이 형성되었다. 문중에서 행하는 각종 행사(제사)와 다른 문중과의 교류에 따라 다양한 손님을 종가에서 맞게 되면서 여기에 쓰이는 음식과 술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의 음식과 술에 대한 관심도 증대되었다. 안동장씨는 "이 책을 이리 눈이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 잘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 자식들은 각각 뱃겨 가되 이 책 가져갈 생각을 하지 말며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하여 쉬이 떨어버리지 말라" 라고 『{{PAGENAME}}』의 저술의도를 밝히고 있다. 노년에 힘겹게 저술했다는 점, 자손들에게 내용을 잘 실천하고 소중히 관리하라 한점, 특히 복사해서 사용하라고 한 점 등은 음식을 통해 가풍을 전승하고 가문의 위상을 유지하려 했던 저자의 의도가 돋보인다. <ref> 배영동,「16~17세기 안동문화권 음식조리서의 | 적장자를 중심으로 가계를 계승하고, 제사권과 재산상속권을 적장자에게 부여하는 종법이 17세기에 양반가 사이에서 정착되어 갔다. 이렇게 종가가 설립되고 종가를 중심으로 혈연집단인 문중이 형성되었다. 문중에서 행하는 각종 행사(제사)와 다른 문중과의 교류에 따라 다양한 손님을 종가에서 맞게 되면서 여기에 쓰이는 음식과 술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의 음식과 술에 대한 관심도 증대되었다. 안동장씨는 "이 책을 이리 눈이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 잘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 자식들은 각각 뱃겨 가되 이 책 가져갈 생각을 하지 말며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하여 쉬이 떨어버리지 말라" 라고 『{{PAGENAME}}』의 저술의도를 밝히고 있다. 노년에 힘겹게 저술했다는 점, 자손들에게 내용을 잘 실천하고 소중히 관리하라 한점, 특히 복사해서 사용하라고 한 점 등은 음식을 통해 가풍을 전승하고 가문의 위상을 유지하려 했던 저자의 의도가 돋보인다. <ref> 배영동,「16~17세기 안동문화권 음식조리서의 |
2017년 5월 10일 (수) 02:59 판
음식디미방 | |
영문명칭 | A cookbook written by Jang of Andong |
---|---|
작자 | 안동장씨 |
간행시기 | 1670년 |
소장처 | 경북대학교도서관 |
청구기호 | 641.5 규15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25.5×18.8㎝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책 |
표기문자 | 한글,한자 |
목차
정의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의 어머니인 안동장씨가 쓴 조리서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의 어머니인 안동장씨가 쓴 조리서이다. 표지에는 한문으로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이라 쓰여 있다. 책의 첫머리에 한글로 ‘음식디미방’이라 쓰여 있다. ‘음식디미방’은 ‘좋은 음식 맛을 내는 방법(飮食知味方)’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책은 딸과 며느리를 위하여 쓴 것이다. 앞표지 뒷면에 “새색시가 삼 일 만에 부엌에 내려가 손을 씻고 국을 끓이니, 아직 시어머니의 식성을 몰라서 시누이에게 먼저 맛보게 하였다(三日入廚下 洗手作羹湯 未諳姑食性 先遣少婦嘗).”라는 한시가 있다. 뒤표지 안에는 “이 책을 눈이 어두운데도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잘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가되, 이 책을 가져갈 생각은 하지 말고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하여 쉽게 더럽히지 말라.”는 저술 동기와 당부를 적고 있다. 『음식디미방』에는 국수·떡·만두·김치·찜·국·약과 등 25종류의 음식 만드는 법과 술·초 만드는 법, 고기·과일·채소·해산물 저장하는 법 등이 적혀 있다. 고려 말에 등장한 발효떡인 상화(霜花)의 구체적인 조리법이 문헌상 처음으로 설명되어 있으며, 녹말·녹두가루·메밀 등을 이용한 여러 종류의 국수, 훈연법에 의한 고기저장법이 적혀 있는 점 등이 주목된다 [1]
장계향과 음식디미방의 저술배경
장계향은 1598년 장흥효와 어머니 안동권씨 사이의 외동딸로 지금의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장흥효는 학봉 김성일의 문인으로 당시 학자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었다. 이런 집안 분위기로 인해 장계향도 『소학』을 배우고 여러 시들을 지었다. 특히 글씨를 잘써 정윤목이 그녀의 초서체를 크게 칭찬하였다. 19살에 이시명의 둘째 부인이 된다. 이시명 역시 그녀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김성일의 문인이었다. 그녀의 아들 이휘일, 이현일, 이승일 모두 김성일의 문인으로 명성이 높았고 그녀의 손자 이온, 이재, 외손자 이상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2]
적장자를 중심으로 가계를 계승하고, 제사권과 재산상속권을 적장자에게 부여하는 종법이 17세기에 양반가 사이에서 정착되어 갔다. 이렇게 종가가 설립되고 종가를 중심으로 혈연집단인 문중이 형성되었다. 문중에서 행하는 각종 행사(제사)와 다른 문중과의 교류에 따라 다양한 손님을 종가에서 맞게 되면서 여기에 쓰이는 음식과 술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의 음식과 술에 대한 관심도 증대되었다. 안동장씨는 "이 책을 이리 눈이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 잘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 자식들은 각각 뱃겨 가되 이 책 가져갈 생각을 하지 말며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하여 쉬이 떨어버리지 말라" 라고 『음식디미방』의 저술의도를 밝히고 있다. 노년에 힘겹게 저술했다는 점, 자손들에게 내용을 잘 실천하고 소중히 관리하라 한점, 특히 복사해서 사용하라고 한 점 등은 음식을 통해 가풍을 전승하고 가문의 위상을 유지하려 했던 저자의 의도가 돋보인다. [3]
음식디미방의 내용과 특징
『음식디미방』은 안동에서 태어나 경북 영양에 살았던 재령이씨 이시명(李時明, 1590-1674)의 부인 안동장씨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이 약 1670년경 73세에 저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이 쓴 한글 음식 조리서이다. 당시 남성들이 쓴 요리책이 중국의 여러 조리서를 그대로 옮겨놓은데 비해 『음식디미방』은 중국과 관계없이 전해져오거나 본인이 직접 개발한 조리법을 기록하고 있다. 책의 표지에는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이라 적혀있는데 이는 후대 사람들이 책을 보존하여 책의 격식을 갖추기 위해 쓰여진 것이라 추측되고 있다. '규곤'이란 여성이 거처하는 안방과 안뜰을 말하고, '시의방'은 올바르게 풀이한 처방문이라는 의미이다. 즉 '여성에게 필요한 것을 올바르게 풀이한 처방문'이란 의미로 당시의 윤리의식이 반영된, 한문투로 격식을 차린 표현이다. [4]
『음식디미방』은 모두 146가지의 조리법 담고 있다. 면병류(면과 떡) 18가지, 어육류(생선과 고기) 74가지, 주류(술), 51가지, 초류(식초) 3가지를 담고 있다.[5] 주식류와 부식류가 먼저 서술된다는 점에서 가족이 함께 먹는 밥상을 제일 중요하게 여긴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술도 그 종류가 많은데 이는 종가의 행사에 '술'이 중요하게 여겨졌고 또한 당시 경상북도 북부 안동지역에서 농업기술이 발달해 술의 기본재료인 쌀의 공급이 향상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6]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안동장씨 | 음식디미방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670년 |
안동장씨 | 이시명 | A는 B의 아내이다 | |
이시명 | 이한일 | A는 B의 어버이다 | |
경북대학교 도서관 | 음식디미방 | A는 B를 소장하였다 | 현재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670년 | 안동장씨가 음식디미방을 저술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5.891792 | 128.612056 | 경북대학교도서관은 음식디미방을 소장하였다 |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40쪽.
- ↑ "장계향의 생애",
『장계향, 깨달은 조선여인』online , 장계향재단, 최종확인: 2017년 5월 10일. - ↑ 배영동,「16~17세기 안동문화권 음식조리서의 등장 배경과 역사적 의의-《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의 사례-」, 『남도민속연구』29, 남도민속학회, 2014, 144-153쪽.
- ↑ 배민식, 「고문헌 속 한국 전통음식 레시피의 시각화 방안 제안 음식디미방을 중심으로」, 『기초조형학연구』16, 한국기초조형학회, 2015, 256-257쪽.
- ↑ 배민식, 「고문헌 속 한국 전통음식 레시피의 시각화 방안 제안 음식디미방을 중심으로」, 『기초조형학연구』16, 한국기초조형학회, 2015, 258쪽.
- ↑ 배영동,「16~17세기 안동문화권 음식조리서의 등장 배경과 역사적 의의-《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의 사례-」, 『남도민속연구』29, 남도민속학회, 2014, 142-171쪽.
참고문헌
더 읽을거리
- 단행본
- 정부인 안동장씨, 『다시보고 배우는 음식디미방』, 궁중음식연구원, 1999.
- 황혜성, 『규곤시의방 해설본』, 한국인서출판, 1980.
- 정혜경, 『천년한식견문록』, 생각의나무, 2009.
- 이성우, 『조선시대 조리서의 분석적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5.
- 한복진·이소영·한복려, 『음식 고전 : 옛 책에서 한국 음식의 뿌리를 찾다』, 현암사, 2016.
- 논문
- 김업식, 「조선시대 부식류의 조리법에 관한 문헌적 고찰-《음식디미방》, 《규합총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을 중심으로 」, 경희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8.
- 이광호, 「음식디미방의 분류 체계와 어휘 특성」, 『문학과 언어』22, 문학과언어학회, 2000.
- 백두현, 「《음식디미방》의 표기법과 자음변화 고찰」, 『국어사연구』4, 국어사학회,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