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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소옹의 역학(易學)을 바탕으로 훈민정음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시도한 점에서 주목받는다.훈민정음 해례에서는 설정하지 않았던 [[설두음]](舌頭音)과 [[설상음]](舌上音)을 나누고, 초성의 기본 문자를 다시 설정하거나, 새로운 모음자를 상정하기도 하였다. 이 책은 훈민정음에 대한 당시 유학자들의 인식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41쪽. 해설문 속의 각종 링크 정보는 기록유산스토리사업팀에서 추가.</REF> | 이 자료는 소옹의 역학(易學)을 바탕으로 훈민정음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시도한 점에서 주목받는다.훈민정음 해례에서는 설정하지 않았던 [[설두음]](舌頭音)과 [[설상음]](舌上音)을 나누고, 초성의 기본 문자를 다시 설정하거나, 새로운 모음자를 상정하기도 하였다. 이 책은 훈민정음에 대한 당시 유학자들의 인식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41쪽. 해설문 속의 각종 링크 정보는 기록유산스토리사업팀에서 추가.</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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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도해』는 『운해훈민정음』, 『운해』, 『훈민정음운해』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자료는 「경세정음도」, 「훈민정음도해」, 음도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초 훈민정음 창제 이후 영, 정조 시기에 이르기까지의 조선 음운학 연구는 중국 운학, 특히 [[소웅]] 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소웅은 우주의 모든 현상을 역학(易學)으로 해석하고 이에 의해 사물의 소리 원리도 음양의 이원론적 대립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운학자인 신경준 또한 한글의 음운 체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주역이나 오행 등의 설을 인용하는 비율이 높았으며 이는 『훈민정음도해』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신경준이 『훈민정음도해』를 저술한 의도는 [[음도]]를 작성하여 자기가 바로 잡은 한자음을 표시하고자 함이었다. 때문에 소웅의 『[[황극경세성음도]]』를 토대로 「경세정음도」를 쓰고 다음 장에 「훈민정음도해」를 작성하여 바로잡은 한자음을 표기하였다. 그러므로 『훈민정음도해』는 훈민정음 연구의 전문저술서라기보다는 저자의 음운학 연구와 훈민정음 연구의 성과를 집대성한 연구일지로 봐야 한다. <ref>김일, 「신경준의《훈민정음운해》와 그의 역학적 언어관」, 『중국조선어문』, 길림성민족사무위원회, 2001</ref> | 『훈민정음도해』는 『운해훈민정음』, 『운해』, 『훈민정음운해』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자료는 「경세정음도」, 「훈민정음도해」, 음도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초 훈민정음 창제 이후 영, 정조 시기에 이르기까지의 조선 음운학 연구는 중국 운학, 특히 [[소웅]] 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소웅은 우주의 모든 현상을 역학(易學)으로 해석하고 이에 의해 사물의 소리 원리도 음양의 이원론적 대립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운학자인 신경준 또한 한글의 음운 체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주역이나 오행 등의 설을 인용하는 비율이 높았으며 이는 『훈민정음도해』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신경준이 『훈민정음도해』를 저술한 의도는 [[음도]]를 작성하여 자기가 바로 잡은 한자음을 표시하고자 함이었다. 때문에 소웅의 『[[황극경세성음도]]』를 토대로 「경세정음도」를 쓰고 다음 장에 「훈민정음도해」를 작성하여 바로잡은 한자음을 표기하였다. 그러므로 『훈민정음도해』는 훈민정음 연구의 전문저술서라기보다는 저자의 음운학 연구와 훈민정음 연구의 성과를 집대성한 연구일지로 봐야 한다. <ref>김일, 「신경준의《훈민정음운해》와 그의 역학적 언어관」, 『중국조선어문』, 길림성민족사무위원회, 2001</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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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1일 (목) 11:50 판
훈민정음도해 | |
한자명칭 | 訓民正音圖解 |
---|---|
영문명칭 | A phonological picture book explaining Hunminjeongeum |
작자 | 신경준 |
간행시기 | 1750년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청구기호 | C12-1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35.2×22.4㎝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책 |
표기문자 | 한자, 한글 |
정의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 훈민정음을 설명하기 위하여 송(宋)의 성운(聲韻) 이론을 빌려 작성한 일종의 운도(韻圖)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 훈민정음을 설명하기 위하여 송(宋)의 성운(聲韻) 이론을 빌려 작성한 일종의 운도(韻圖)이다. 이론의 배경은 소옹(邵雍, 1011~1077)의 「황극경세성음도(皇極經世聲音圖」를 바탕으로 하였다. 책의 앞머리에는 소옹의 이론을 참고로 「경세성음수도(經世聲音數圖)」를 싣고, 두 번째로 「훈민정음도해(訓民正音圖解)」에서 훈민정음을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이 자료는 소옹의 역학(易學)을 바탕으로 훈민정음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시도한 점에서 주목받는다.훈민정음 해례에서는 설정하지 않았던 설두음(舌頭音)과 설상음(舌上音)을 나누고, 초성의 기본 문자를 다시 설정하거나, 새로운 모음자를 상정하기도 하였다. 이 책은 훈민정음에 대한 당시 유학자들의 인식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1]
『훈민정음도해』의 저술목적
『훈민정음도해』는 『운해훈민정음』, 『운해』, 『훈민정음운해』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자료는 「경세정음도」, 「훈민정음도해」, 음도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초 훈민정음 창제 이후 영, 정조 시기에 이르기까지의 조선 음운학 연구는 중국 운학, 특히 소웅 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소웅은 우주의 모든 현상을 역학(易學)으로 해석하고 이에 의해 사물의 소리 원리도 음양의 이원론적 대립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운학자인 신경준 또한 한글의 음운 체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주역이나 오행 등의 설을 인용하는 비율이 높았으며 이는 『훈민정음도해』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신경준이 『훈민정음도해』를 저술한 의도는 음도를 작성하여 자기가 바로 잡은 한자음을 표시하고자 함이었다. 때문에 소웅의 『황극경세성음도』를 토대로 「경세정음도」를 쓰고 다음 장에 「훈민정음도해」를 작성하여 바로잡은 한자음을 표기하였다. 그러므로 『훈민정음도해』는 훈민정음 연구의 전문저술서라기보다는 저자의 음운학 연구와 훈민정음 연구의 성과를 집대성한 연구일지로 봐야 한다. [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신경준 | 훈민정음도해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750년 |
훈민정음 | 훈민정음도해 | A는 B에 언급된다 | |
훈민정음도해 | 성운 | A는 B를 언급하였다 | |
경세정음도 | 황극경세성음도 | A는 B를 본떴다 | |
훈민정음도해 | 경세정음도 | A는 B를 포함한다 | |
소웅 | 황극경세성음도 | A는 B를 저술하였다 | |
훈민정음도해 | 역학 | A는 B를 언급한다 | |
황극경세성음도 | 역학 | A는 B를 언급한다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훈민정음도해 | A는 B를 소장하였다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
1750년 | 신경준이 훈민정음도해을 저술, 간행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392258 | 127.054364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훈민정음도해가 소장되어 있다. |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41쪽. 해설문 속의 각종 링크 정보는 기록유산스토리사업팀에서 추가.
- ↑ 김일, 「신경준의《훈민정음운해》와 그의 역학적 언어관」, 『중국조선어문』, 길림성민족사무위원회, 2001
참고문헌
- 단행본
- 정경일. 『한국운서의 이해』, 아카넷, 2002
- 최현배, 『고친 한글갈』, 정음사, 1961
- 논문
- 김신항, 「훈민정음 운해와 신경준」, 『훈민정음과 국어학』, 전남대학교 어문학연구소, 1992
- 온라인
- 훈민정음운해 『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