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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기록화와의 연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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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9126 왕오천축국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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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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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신라시대 승려 [[혜초|혜초(慧超)]]가 지은 인도 여행기. 완질이 남아 있지 않고, 일부분만이 현존한다. 1908년 3월 프랑스의 탐험가였던 [[폴 펠리오|펠리오(Pelliot,P.)]]가 중국 [[돈황석굴|돈황(敦煌)의 천불동(千佛洞)]]에서 발견하였다. 원래는 3권이었던 듯하나 현존본은 그 약본(略本)이며, 앞뒤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카슈미르(Kashmir)·아프가니스탄·중앙아시아 일대까지 여행한 [[혜초]]의 경험과 지역의 신기한 풍속 등이 서술되어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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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승려 [[혜초|혜초(慧超)]]가 지은 인도 여행기. 현재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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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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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승려 [[혜초|혜초(慧超)]]가 지은 인도 여행기. 완질이 남아 있지 않고, 일부분만이 현존한다. 1908년 3월 프랑스의 탐험가였던 [[폴 펠리오|펠리오(Pelliot,P.)]]가 중국 [[돈황석굴|돈황(敦煌)의 천불동(千佛洞)]]에서 발견하였다. 원래는 3권이었던 듯하나 현존본은 그 약본(略本)이며, 앞뒤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카슈미르(Kashmir)·아프가니스탄·중앙아시아 일대까지 여행한 [[혜초]]의 경험을 토대로 당시 인도 및 서역(西域) 각국의 종교와 풍속·문화 등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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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적 가치===
 
현장(玄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나 법현(法顯) 불국기(佛國記) 등의 인도 여행기들은 육로기행과 해로기행(海路紀行)인 데 비하여 이 책은 육로와 해로가 같이 언급되고 있다는 점,<br/>
 
현장(玄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나 법현(法顯) 불국기(佛國記) 등의 인도 여행기들은 육로기행과 해로기행(海路紀行)인 데 비하여 이 책은 육로와 해로가 같이 언급되고 있다는 점,<br/>
 
전술한 여행기는 6세기와 7세기의 인도 정세를 말해 주는 자료이지만 이 책은 8세기의 사료라는 점,<br/>
 
전술한 여행기는 6세기와 7세기의 인도 정세를 말해 주는 자료이지만 이 책은 8세기의 사료라는 점,<br/>
 
일반적인 정치 정세 이외에 사회상태에 대한 사료적 가치가 돋보인다는 점 등이 이 책의 사료적 가치를 말해준다.
 
일반적인 정치 정세 이외에 사회상태에 대한 사료적 가치가 돋보인다는 점 등이 이 책의 사료적 가치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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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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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오천축국전은 노정, 자연지리 및 인문지리와 풍습, 불교의 성황 정도를 한문의 산문으로 적었다. 직접 경유한 곳은 '종(從)-지명', '방향-행(行)', '경(經)-숫자-일(日)[월月]', '지(至)-지명'의 형식으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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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왕오천축국전에는 다섯 수의 한시가 들어 있는데 형식이 완정할 뿐 아니라 서정적인 것들이 많다. 주제는 원만한 여행의 기쁨과 희망, 고국에 대한 그리움, 구도에의 불안감과 험난함 등 다양하다.
  
==민족기록화와의 연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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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관계망'''==
[[김충선]] 화백의 민족기록화 작품 [[김충선-혜초의 천축구법 활동|혜초의 천축구법 활동]]의 소재인 [[혜초]]가 저술한 기록물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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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보===
표해록(漂海錄)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역사적으로 가장 의미있는 기행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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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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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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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및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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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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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9126 왕오천축국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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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29501&cid=40942&categoryId=32966 왕오천축국전]", 두산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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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92033&cid=41708&categoryId=41736 왕오천축국전]",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분류:민족기록화]][[분류:기록물]][[분류:조선]][[분류:역사서]]
+
[[분류:민족기록화]][[분류:문헌]][[분류:민족기록화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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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신라]]

2017년 7월 25일 (화) 19:32 판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왕오천축국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표명칭 왕오천축국전
한자표기 往五天竺國傳
유형 기행록
저자 혜초(慧超)
저술시기 727년
시대 신라
수량 1권 1책



정의

신라시대 승려 혜초(慧超)가 지은 인도 여행기. 현재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설명

신라시대 승려 혜초(慧超)가 지은 인도 여행기. 완질이 남아 있지 않고, 일부분만이 현존한다. 1908년 3월 프랑스의 탐험가였던 펠리오(Pelliot,P.)가 중국 돈황(敦煌)의 천불동(千佛洞)에서 발견하였다. 원래는 3권이었던 듯하나 현존본은 그 약본(略本)이며, 앞뒤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카슈미르(Kashmir)·아프가니스탄·중앙아시아 일대까지 여행한 혜초의 경험을 토대로 당시 인도 및 서역(西域) 각국의 종교와 풍속·문화 등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다.

사료적 가치

현장(玄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나 법현(法顯) 불국기(佛國記) 등의 인도 여행기들은 육로기행과 해로기행(海路紀行)인 데 비하여 이 책은 육로와 해로가 같이 언급되고 있다는 점,
전술한 여행기는 6세기와 7세기의 인도 정세를 말해 주는 자료이지만 이 책은 8세기의 사료라는 점,
일반적인 정치 정세 이외에 사회상태에 대한 사료적 가치가 돋보인다는 점 등이 이 책의 사료적 가치를 말해준다.

내용적 특징

왕오천축국전은 노정, 자연지리 및 인문지리와 풍습, 불교의 성황 정도를 한문의 산문으로 적었다. 직접 경유한 곳은 '종(從)-지명', '방향-행(行)', '경(經)-숫자-일(日)[월月]', '지(至)-지명'의 형식으로 적었다.

Quote-left.png 우종차도란달라국(又從此闍蘭達羅國), 서행(西行), 경일월(經一月), 지일사탁국(至一社吒國).

(다시 사란달라국에서 서쪽으로 한 달을 가서 탁사국[원문의 사탁국은 탁사국의 오기로 본다]에 이르렀다.)

Quote-right.png
출처: "왕오천축국전",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또한 왕오천축국전에는 다섯 수의 한시가 들어 있는데 형식이 완정할 뿐 아니라 서정적인 것들이 많다. 주제는 원만한 여행의 기쁨과 희망, 고국에 대한 그리움, 구도에의 불안감과 험난함 등 다양하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혜초 왕오천축국전 A는 B를 저술하였다 727년
폴 펠리오 왕오천축국전 A는 B를 발견하였다 1908년
왕오천축국전 돈황석굴 A는 B에서 발견되었다 1908년
왕오천축국전 파리국립도서관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727년 혜초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하였다.
1908년 폴 펠리오돈황석굴에서 왕오천축국전을 발견하였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48.833549 2.375798 왕오천축국전은 다산초당에 위치한다

주석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웹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