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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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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2년(1430)에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모시는 극락전이 지어지고 성종 7년(1476)에 극락전 안에 아미타삼존도, 아미타여래내영도를 비롯한 벽화가 그려졌다. 이는 당시 무위사가 수륙사(水陸寺)로 지정되었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수륙사로 지정된 무위사에서는 죽어서 제 갈 길로 가지 못하고 떠도는 망령들을 불력으로 거두는 수륙재1)를 자주 지냈을 것이고, 아미타불은 서방정토를 주관하는 부처이기 때문이다. 극락보전 앞 좌우에 벌여 선 괘불 걸이는 수륙재 야단법석(野壇法席)을 펼 때 괘불을 걸었던 자취이리라.<ref>'''무위사, 답사여행의 길잡이 5 - 전남, 네이버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8161&cid=42840&categoryId=42849, 2016년 12월 26일 확인.''' 이 서비스는 (무답사여행의 길잡이 5 - 전남, 돌베개, 초판 1995, 23쇄 2010.)를 원본으로 한다.</ref>
 
세종 12년(1430)에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모시는 극락전이 지어지고 성종 7년(1476)에 극락전 안에 아미타삼존도, 아미타여래내영도를 비롯한 벽화가 그려졌다. 이는 당시 무위사가 수륙사(水陸寺)로 지정되었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수륙사로 지정된 무위사에서는 죽어서 제 갈 길로 가지 못하고 떠도는 망령들을 불력으로 거두는 수륙재1)를 자주 지냈을 것이고, 아미타불은 서방정토를 주관하는 부처이기 때문이다. 극락보전 앞 좌우에 벌여 선 괘불 걸이는 수륙재 야단법석(野壇法席)을 펼 때 괘불을 걸었던 자취이리라.<ref>'''무위사, 답사여행의 길잡이 5 - 전남, 네이버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8161&cid=42840&categoryId=42849, 2016년 12월 26일 확인.''' 이 서비스는 (무답사여행의 길잡이 5 - 전남, 돌베개, 초판 1995, 23쇄 2010.)를 원본으로 한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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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의 특징===
 
강진 무위사는 수륙재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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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사가 수륙사로 지정된 것과 극락보전의 건립, 아미타삼존도 · 아미타여래도등의 벽화 조성은 그 조성 시기 및 신앙 배경 등에 있어서 상호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 왜냐하면 수륙사로 지정된 무위사는 수륙재(水陸齎)를 빈번하게 행하였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수륙재는 지상에 떠도는 망령을 부처님에 의하여 환생케 하는 재생 의식으로서 적을 포함한 전사자를 위로하는 불교 의식이다. 죽은 영혼을 달래려는 수륙재는 곧 살아 있는 자들의 애도와 복수심가지 포용하려는 차원에서 거행된 불교 의식인 것이다. 수륙사로 지정된 무위사에 극락보전이 건립되고 아미타불의 벽화가 조성되는 것은 이와 같은 신앙 구조 속에서 가능한 것이라 여겨진다. <ref>무위사 소개, 대한불교조계종 월출산 무위사, http://www.muwisa.com/maha/introduce/introduce_02.html, 2016년 12월 27일 확인</ref>
 
무위사가 수륙사로 지정된 것과 극락보전의 건립, 아미타삼존도 · 아미타여래도등의 벽화 조성은 그 조성 시기 및 신앙 배경 등에 있어서 상호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 왜냐하면 수륙사로 지정된 무위사는 수륙재(水陸齎)를 빈번하게 행하였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수륙재는 지상에 떠도는 망령을 부처님에 의하여 환생케 하는 재생 의식으로서 적을 포함한 전사자를 위로하는 불교 의식이다. 죽은 영혼을 달래려는 수륙재는 곧 살아 있는 자들의 애도와 복수심가지 포용하려는 차원에서 거행된 불교 의식인 것이다. 수륙사로 지정된 무위사에 극락보전이 건립되고 아미타불의 벽화가 조성되는 것은 이와 같은 신앙 구조 속에서 가능한 것이라 여겨진다. <ref>무위사 소개, 대한불교조계종 월출산 무위사, http://www.muwisa.com/maha/introduce/introduce_02.html, 2016년 12월 27일 확인</ref>
 
  
 
==관련 지식정보 노드==
 
==관련 지식정보 노드==

2016년 12월 27일 (화) 14:01 판

틀:문화유산정보

소개

전남 강진군 성전면(城田面) 월출산(月出山) 남동쪽에 있는 고찰이다. 617년(신라 진평왕 39)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

경내에는 극락보전(국보 제13호), 선각대사 부도비(보물 제507호), 미륵전과 산신각, 천불전, 삼층석탑 등의 불교문화재가 있다.[1]

역사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절 이름을 관음사라고 했고 그후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국사가 중창하고 갈옥사(葛屋寺)로 바꿨으며 고려 정종 원년(946)에 선각(先覺)대사가 3창하고 모옥사(茅屋寺)로 개명, 조선 명종 10년(1555)에 태감(太甘)선사가 4창하고 비로소 절 이름을 무위사로 고쳤다는 내용이 『무위사 사적기』에 나온다. 이 사적기는 영조 15년(1739)에 당시 주지였던 극잠이 절을 보수하면서 쓴 것인데, 당시까지 전해 오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적은 듯, 믿기 어려운 점이 많다.

우선 진평왕 39년에는 이 부근이 백제의 영토였고 또 원효는 바로 그해에 겨우 태어났을 뿐이었다. 도선국사가 중창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효공왕 9년(905)부터 선각대사가 주석했다는 것으로 보아 도선의 중창설도 의문시되고 있다. 도선국사는 동리산문에 속하며 선각대사는 가지산문에 속하는데, 사찰의 소속이 그렇게 짧은 기간에 바뀌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또 정종 원년은 선각대사 부도비가 세워진 해이고 선각대사가 죽은 지 이미 28년이 지난 때이므로 그 해에 그가 절을 중창했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절 이름에 대해서도, 지금 절 안에 있는 선각대사 부도비의 제목에 ‘무위갑사’(無爲岬寺)라고 적혀 있고 비문 속에도 신라 효공왕 9년(905)에 왕건이 선각대사를 무위갑사에 머물도록 청했다는 내용이 있으므로, 그 이전부터 계속 무위사로 불려 왔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무위사는 무위갑사라는 이름으로 10세기 초 이전에 창건되었고 신라 말에 왕건과 가까웠던 선각대사가 머물던 기간에 사세를 키웠다. 조선 시대 들어와 태종 7년(1407)에는 각지의 명찰을 골라 여러 고을의 자복(資福) 사찰로 지정하는 가운데 천태종 자복사의 하나로 꼽혔다. 이전에 선종 사찰이었던 무위사가 어느 때부터인가 천태종 절이 된 데는 고려 후기에 백련사에서 천태종 백련결사가 활발히 활동했던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한다.

세종 12년(1430)에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모시는 극락전이 지어지고 성종 7년(1476)에 극락전 안에 아미타삼존도, 아미타여래내영도를 비롯한 벽화가 그려졌다. 이는 당시 무위사가 수륙사(水陸寺)로 지정되었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수륙사로 지정된 무위사에서는 죽어서 제 갈 길로 가지 못하고 떠도는 망령들을 불력으로 거두는 수륙재1)를 자주 지냈을 것이고, 아미타불은 서방정토를 주관하는 부처이기 때문이다. 극락보전 앞 좌우에 벌여 선 괘불 걸이는 수륙재 야단법석(野壇法席)을 펼 때 괘불을 걸었던 자취이리라.[2]

절의 특징

강진 무위사는 수륙재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37 <강진현 불우조>에는 '세월이 오래되어 퇴락했던 무위사를 이제 중수하고 이로 인해 수륙사(水陸社)로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무위사가 수륙사로 지정된 것과 극락보전의 건립, 아미타삼존도 · 아미타여래도등의 벽화 조성은 그 조성 시기 및 신앙 배경 등에 있어서 상호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 왜냐하면 수륙사로 지정된 무위사는 수륙재(水陸齎)를 빈번하게 행하였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수륙재는 지상에 떠도는 망령을 부처님에 의하여 환생케 하는 재생 의식으로서 적을 포함한 전사자를 위로하는 불교 의식이다. 죽은 영혼을 달래려는 수륙재는 곧 살아 있는 자들의 애도와 복수심가지 포용하려는 차원에서 거행된 불교 의식인 것이다. 수륙사로 지정된 무위사에 극락보전이 건립되고 아미타불의 벽화가 조성되는 것은 이와 같은 신앙 구조 속에서 가능한 것이라 여겨진다. [3]

관련 지식정보 노드

노드 관계 노드 설명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 ~에 있다 강진 무위사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는 강진 무위사에 있다.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 ~가 그려져 있다 아미타불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는 아미타불이 그려져 있다.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 ~가 그려져 있다 관음보살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는 관음보살이 그려져 있다.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 ~가 그려져 있다 지장보살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는 지장보살이 그려져 있다.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 ~가 그렸다 대선사 해련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는 대선사 해련이 그렸다.

각주

  1. 무위사,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95000&cid=40942&categoryId=39201, 2016년 12월 26일 확인
  2. 무위사, 답사여행의 길잡이 5 - 전남, 네이버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8161&cid=42840&categoryId=42849, 2016년 12월 26일 확인. 이 서비스는 (무답사여행의 길잡이 5 - 전남, 돌베개, 초판 1995, 23쇄 2010.)를 원본으로 한다.
  3. 무위사 소개, 대한불교조계종 월출산 무위사, http://www.muwisa.com/maha/introduce/introduce_02.html, 2016년 12월 27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