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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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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승려로, 자는 중부(仲孚), 호는 초의(草衣), 당호는 일지암(一枝庵), 법명은 의순(意恂)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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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승려로, 자는 중부(仲孚), 호는 초의(草衣), 당호는 일지암(一枝庵), 법명은 의순(意恂)이다. 보통 초의선사라고 불린다.<br/>
전라남도 무안 출신으로, [[대흥사]] 제13대 종사이며 [[다도(茶道)]]의 정립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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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무안 출신으로, [[대흥사|대흥사(大興寺)]] 제13대 종사이며 [[다도(茶道)]]의 정립자이다. 그래서 초의를 다성(茶聖)이라 부른다.  
  
 
==내용==
 
==내용==
16세 전라남도 남평운흥사(雲興寺)에서 민성(敏聖)을 은사로 삼아 출가하고, 대흥사(大興寺)에서 민호(玟虎)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22세 때부터 전국의 선지식(善知識)들을 찾아가 삼장(三藏)을 배우고 유학·도교 등 여러 교학에 통달하였으며, 범서(梵書)에도 능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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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 전라남도 무안에서 출생하였으며 5세 때에 강변에서 놀다가 급류에 떨어져 죽을 고비에 다다랐을 부근을 지나는 승려가 건져주어 살게 되었다. 그 승려가 출가할 것을 권하여 16세에 [[나주 운흥사|나주 운흥사(雲興寺)]]에서 [[민성|민성(敏聖)]]의 제자가 되었으며 승려가 되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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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 때부터 전국의 선지식(善知識)들을 찾아가 삼장(三藏)을 배우고 유학·도교 등 여러 교학에 통달하였으며, 범서(梵書)에도 능통하였다.<br/>
정약용(丁若鏞), 홍현주(洪顯周), 김정희(金正喜) 등과 교유하였는데, 정약용에게서는 유서(儒書)를 받고 시부(詩賦)를 익히기도 하였다. 명성이 널리 알려지자 대흥사의 동쪽 계곡으로 들어가 일지암을 짓고 40여 년 동안 홀로 지관(止觀)을 닦고, 다선삼매(茶禪三昧)에 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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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약용|정약용(丁若鏞)]], [[홍현주|홍현주(洪顯周)]], [[김정희|김정희(金正喜)]], [[신위|신위(申緯)]]등과 교유하였는데, 정약용에게서는 유학(儒學)과 시문(詩文)뿐 아니라, 제다법을 가르쳐 보급에 앞장섰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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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는 [[동다송|『동다송(東茶頌)』]]을 지어 차를 재배, 법제하는 방법 등 다도의 이론적인 면이나 실제적인 면에서 크게 정리하고 발전시켰다. 초의는 [[다도]]에 대하여
또한, 모든 것을 구비한 인간이 될 것을 주장하면서 「동다송(東茶頌)」을 지어 다생활의 멋을 설명하였고, 범패와 원예 및 서예에도 능하였으며, 장 담그는 법, 화초 기르는 법, 단방약(單方藥) 등에도 능하였다. 평범한 일생을 통하여 선(禪)과 교(敎)를 겸하여 수도하고 중생을 제도하였으며, 이상적 불교인으로 존경한 인물은 진묵(震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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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는 데 그 묘(妙)를 다하고 만드는 데 그 정(精)을 다하고 물은 진수(眞水)를 얻고 끓임에 있어서 중정(中正)을 얻으면 체(體)와 신()이 서로 어울려 건실함과 신령함이 어우러진다. 이에 이르면 [[다도]]는 다하였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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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즉 그에 의하면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진 차로 좋은 물을 얻어 알맞게 잘 우러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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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는 1828년 [[지리산]] [[칠불암]]에 머물면서 [[다신전|『다신전(茶神傳)』을 저술하였는데, [[다신전]]은 찻잎따기, 차만들기, 차의 식별법, 차의 보관, 물을 끓이는 법, 차를 끓이는 법, 차를 마시는 법, 차의 향기, 차의 색 등 20여 가지 목차로 상세하게 다룬 책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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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생을 통하여 선(禪)과 교(敎)를 겸하여 수도하고 중생을 제도하였으며, 명성이 널리 알려지자 [[대흥사]]의 동쪽 계곡으로 들어가 [[일지암(一枝庵)]]을 짓고 40여 년 동안 홀로 지관(止觀)을 닦고, [[다선삼매|다선삼매(茶禪三昧)]]에 들기도 하였다.<br/>
 
1866년 나이 80세, 법랍 65세로 입적하였다.
 
1866년 나이 80세, 법랍 65세로 입적하였다.
 
특히 초의(草衣)는 『동다송(東茶頌)』을 지었고 차를 재배, 법제하는 방법 등 다도의 이론적인 면이나 실제적인 면에서 크게 정리하고 발전시켰다. 초의는 그의 『동다송』에서 다도에 대하여 “따는 데 그 묘(妙)를 다하고 만드는 데 그 정(精)을 다하고 물은 진수(眞水)를 얻고 끓임에 있어서 중정(中正)을 얻으면 체(體)와 신(神)이 서로 어울려 건실함과 신령함이 어우러진다. 이에 이르면 다도는 다하였다고 할 것이다.”고 하였다. 즉 그에 의하면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진 차로 좋은 물을 얻어 알맞게 잘 우러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다도 [茶道] (차생활문화대전, 2012. 7. 10., 홍익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34273&cid=42752&categoryId=42754
 
 
 
1786년 전라남도 무안에서 출생하였으며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다 익사할 뻔하였으나 지나던 스님이 구해주었다. 16세에 남평(南平) 운흥사(雲興寺)에 들어가 민승(敏聖)의 제자가 되었으며 승려가 되었다. 그는 수행생활과 함께 차(茶)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정약용(丁若鏞)에게서 유학(儒學)과 시문(詩文)을 배우고, 신위(申緯) ·김정희(金正喜)와 친교가 깊었다.
 
 
그후 해남(海南) 두륜산(頭輪山)의 일지암(一枝庵)에서 40년 동안 지관(止觀)을 닦고, 서울 봉은사(奉恩寺)에서 《화엄경(華嚴經)》을 새길 때 증사(證師)가 되었다. 1866년 80세에 입적하였다. 저서에 《초의집(草衣集)》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 《이선내의(二禪來義)》가 있으며 1828년 지리산 칠불암에 머물면서 지은 차서(茶書)인 《다신전(茶神傳)》이 있다. 다신전의 내용은 찻잎따기, 차만들기, 차의 식별법, 차의 보관, 물을 끓이는 법, 차를 끓이는 법, 차를 마시는 법, 차의 향기, 차의 색 등 20여 가지 목차로 상세하게 다룬 책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의순 [意恂]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33948&cid=40942&categoryId=33383
 
 
 
[학문세계와 사상]
 
그의 사상은 선(禪)사상과 다선일미(茶禪一味)사상으로 집약된다. 그의 저서인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는, 대선사 백파(白坡)가 쓴 『선문수경(禪門手鏡)』의 잘못을 변증하기 위하여 저술한 것이다.
 
백파는 선을 조사선(祖師禪), 여래선(如來禪), 의리선(義理禪)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는데, 그는 이런 구별의 기준은 근기가 아니라, 인명(人名)이냐 법명(法名)이냐의 문제라고 보았다. 이와 같은 논쟁은 김정희·우담(優曇)·축원(竺源) 등에게까지 파급됨으로써 조선 후기의 선사상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선(禪)만을 강조하지 않고, 지관(止觀)을 수행하였다. 또, 모든 법이 다르지 않다고 강조하면서 차와 선(禪)도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고, 차를 통하여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차의 성품을 때 묻지 않은 본래의 원천과도 같은 것이라고 하여 무착바라밀(無着波羅蜜)이라고도 하였다.
 
 
그의 법을 이은 제자로는 각안(覺岸)이 있다. 저서로는 『선문사변만어』 1권, 『이선래의(二禪來儀)』 1권, 『초의시고(草衣詩藁)』 2권, 『진묵조사유적고(震默祖師遺蹟考)』 1권, 『동다송』 1권, 『다신전(茶神傳)』 1권 등이 있다.
 
 
 
 
 
<ref>이완재,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9485 김성일]",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21일.</ref>
 
  
 
==시각자료==
 
==시각자료==

2017년 4월 23일 (일) 02:51 판

틀:인물정보2

정의

조선 후기의 승려로, 자는 중부(仲孚), 호는 초의(草衣), 당호는 일지암(一枝庵), 법명은 의순(意恂)이다. 보통 초의선사라고 불린다.
전라남도 무안 출신으로, 대흥사(大興寺) 제13대 종사이며 다도(茶道)의 정립자이다. 그래서 초의를 다성(茶聖)이라 부른다.

내용

1786년 전라남도 무안에서 출생하였으며 5세 때에 강변에서 놀다가 급류에 떨어져 죽을 고비에 다다랐을 때 부근을 지나는 승려가 건져주어 살게 되었다. 그 승려가 출가할 것을 권하여 16세에 나주 운흥사(雲興寺)에서 민성(敏聖)의 제자가 되었으며 승려가 되었다.
22세 때부터 전국의 선지식(善知識)들을 찾아가 삼장(三藏)을 배우고 유학·도교 등 여러 교학에 통달하였으며, 범서(梵書)에도 능통하였다.
그는 정약용(丁若鏞), 홍현주(洪顯周), 김정희(金正喜), 신위(申緯)등과 교유하였는데, 정약용에게서는 유학(儒學)과 시문(詩文)뿐 아니라, 제다법을 가르쳐 보급에 앞장섰다.
초의는 『동다송(東茶頌)』을 지어 차를 재배, 법제하는 방법 등 다도의 이론적인 면이나 실제적인 면에서 크게 정리하고 발전시켰다. 초의는 다도에 대하여

"따는 데 그 묘(妙)를 다하고 만드는 데 그 정(精)을 다하고 물은 진수(眞水)를 얻고 끓임에 있어서 중정(中正)을 얻으면 체(體)와 신(神)이 서로 어울려 건실함과 신령함이 어우러진다. 이에 이르면 다도는 다하였다고 할 것이다."

고 하였다. 즉 그에 의하면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진 차로 좋은 물을 얻어 알맞게 잘 우러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1828년 지리산 칠불암에 머물면서 [[다신전|『다신전(茶神傳)』을 저술하였는데, 다신전은 찻잎따기, 차만들기, 차의 식별법, 차의 보관, 물을 끓이는 법, 차를 끓이는 법, 차를 마시는 법, 차의 향기, 차의 색 등 20여 가지 목차로 상세하게 다룬 책이다.
평범한 일생을 통하여 선(禪)과 교(敎)를 겸하여 수도하고 중생을 제도하였으며, 명성이 널리 알려지자 대흥사의 동쪽 계곡으로 들어가 일지암(一枝庵)을 짓고 40여 년 동안 홀로 지관(止觀)을 닦고, 다선삼매(茶禪三昧)에 들기도 하였다.
1866년 나이 80세, 법랍 65세로 입적하였다.

시각자료

사진

영상

  • [안동MBC뉴스] [R]'학봉' 초상화.. '400년 한지'에 부활(게시일: 2017. 2. 16.)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의순 정약용 A는 B의 제자이다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 체징 A는 B를 위한 승탑이다
염거(廉居) 체징 A는 B의 스승이다
체징 형미(逈微) A는 B의 스승이다
체징 장흥 보림사 A는 B를 창건하였다 861년
장흥 보림사 가지산문 A는 B에 포함된다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비 김영(金穎) A는 B가 비문을 지었다 883년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비 김원(金薳), 김언경(金彦卿) A는 B가 비문을 썼다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비 현창(賢暢) A는 B가 비문을 새겼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538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1568 증광문과 병과로 급제했다
1592 진중성 전투에서 활약하다 사망하였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5.189787 128.077976 의순은 경상남도 진주성에서 싸우다가 죽었다

참고문헌

  • 사료
    1. 『선조실록(宣祖實錄)』
    2. 『국조방목(國朝榜目)』
    3. 『학봉집(鶴峰集)』
    4. 『징비록(懲毖錄)』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