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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청량리까지 9.5km의 지하구간에 총 9개의 지하역을 두고 있다. 1974년 서울시 발행 '서울'에 실린 노선도는 지하철 건설의 대역사가 추진된 과정을 보여준다.<ref>서울역사박물관, 『두더지 시장 양택식2』, 서울역사박물관, 2015년, 46쪽.</ref> | 서울역에서 청량리까지 9.5km의 지하구간에 총 9개의 지하역을 두고 있다. 1974년 서울시 발행 '서울'에 실린 노선도는 지하철 건설의 대역사가 추진된 과정을 보여준다.<ref>서울역사박물관, 『두더지 시장 양택식2』, 서울역사박물관, 2015년, 46쪽.</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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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7일 (월) 22:37 판
서울 지하철 1호선은 소양강댐과 경부고속도로와 함께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3대 국책사업으로 꼽힌다.[1]
서울역에서 청량리까지 9.5km의 지하구간에 총 9개의 지하역을 두고 있다. 1974년 서울시 발행 '서울'에 실린 노선도는 지하철 건설의 대역사가 추진된 과정을 보여준다.[2]
지하철 1호선은 1974년 8월 15일 제29주년 광복절에 맞추어 개통되었다. 서울시 청사에 붙인 축하 현수막은 지하철의 건설이 국력과 민족의 저력을 상징하는 대공사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71년 4월 11일에 서울시청에서 착공식을 한데 이어 청량리부터 시작해서 서울역에 이르는 노선을 지하로 땅을 파서 만든 작업 요즘같이 TBM으로 땅을 뚫는 방식이 아닌 이미 공사가 많이 진행되어 철골로 도로를 덮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은 1974년 8월 15일 개통되었으나 문세광의 박정희대통령 저격사건으로 육영수여사가 피격되어 운명하자 당시 서울시장이 대신 개통테잎을 끊었죠. 원래는 광복절 기념식 후 대통령 내외분이 개통식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었습니다.))))) 1971년 착공된 총 연장 9.54km에 이르는 지하철 종로선을 개통하는 것은 양택식 시장 후반기 제일의 역점 사업이었다. 1972년까지 전 공정의 47%를 완성하였고, 1973년에는 160억원을 투입하여 91%까지 완성하는 일정으로 추진되었다. 지하철 공사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한편으로 개통에 대비하여 요원을 확보하고 해외훈련을 시키면서, 정부의 수도권 전철운행과 통합시키는 준비를 해나갔다.
1973년 들어 지하철은 구간별로 완공단계에 들어섰다. 서울시는 총 330억원을 투입하여 74년 4월까지 전 공정을 완공한다는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