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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4일 (금) 22:19 판
후수(後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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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후수(後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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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수(綬) |
착용신분 | 궁중 |
착용성별 | 남성 |
정의
복식구성
기본정보
착용신분
착용상황
형태[2]
- 조선시대의 후수는 직사각형.
- 여러 색이 섞인 직물로 몸체를 만드는데 이를 대수(大綬)라고 함.
- 대수 위에 두 가닥씩 세 번 여섯 가닥의 소수(小綬)라는 끈을 드리우고, 그 사이에 왕과 왕세자는 금환(金環)을 두며, 아래쪽에는 편물로 짠 망수를 드리움.
기타
- 유래
- 수의 역할은 옥을 연결하던 것이었는데, 끈의 명칭으로 수 이외에 선진시기에는 수(璲)와 수(繸)가, 한 이후에는 역(縌) 등이 있었음.
- 수(璲)·수(繸)·역(縌)의 명칭은 모두 옥을 연결하던 역할에서 기인하여 역(縌)은 수(綬)를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강해 수(遂)와 역(逆)의 ‘연결하다, 영접하다’ 등의 뜻을 취한 것.
- 수(綬)는 승수(承綬)의 의미를 취한 것으로, 한대(漢代)는 수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어 황제 이하 관원에 이르기까지 각 신분에 맞게 구성요소·색채·길이·밀도 등에 엄격한 제도가 있었고, 이 때 확립된 수의 제도는 이후 제도의 기본 틀이 되었음.
- 한대의 수는 역(縌)·수(綬)·옥환(玉環)을 신분에 따라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출 수 있거나 옥환이 없이 역(縌)·수(綬)만 갖출 수 있거나 단지 수(綬)만 갖출 수 있었음.
- 역(縌)→옥환(玉環)→수(綬)의 순서로 배열되어 일직선의 형태를 이루어 수는 때에 따라 전체 수대(綬帶)를 의미하기도 하고 수대(綬帶)의 일부분을 의미하기도 함.
- 역(縌)은 수대(綬帶)의 가장 윗부분으로 혁대에 수대(綬帶)를 매는 역할을 하였고, 그 아래에는 수가 이어졌으며, 역(縌)과 수(綬) 사이에는 옥환(玉環)이 있음.
- 수대(綬帶)의 길이는 가장 긴 황제의 2장 9척 9촌(609.7cm)부터 가장 짧은 1장 2척(277.2cm)까지 차이를 보여 신분이 높아 수대가 길 경우 고리 모양으로 감아 늘어뜨려 고리가 많을수록 신분이 높음을 상징함.
관련항목
참고문헌
-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2011.
- 권현주, 「접섭대(䪓韘帶)에 관한 연구」, 『中央아시아硏究』, V.11, 중앙아시아학회, 2005.
-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 『名選-下』, 단국대학교출판부, 2004.
- 류희경, 『우리옷 이천년』, 미술문화, 2001.
- 문화재청, 『한국의 초상화-역사속의 인물과 조우하다』, 문화재청, 2007.
- 석주선, 『한국복식사』, 보진재, 1971.
- 이강칠 외, 『역사인물초상화대사전』, 현암사, 2003.
- 장정윤, 「朝鮮時代 文武百官 朝服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周錫保, 『中國古代服飾史』, 中國戱劇出版社, 1983.
- 최규순, 「綬에 관한 연구」, 『韓國의 服飾文化史』, 단국대학교 출판부, 2006.
- 최규순, 『中國歷代帝王冕服硏究』, 동화대학출판부, 2007.
- 최규순, 「이 시대의 진정한 ‘紳士’를 위하여」, 『전통 의생활 연구』, 제 2집, 단국대학교 전통복식연구소, 2008.
- 최영선, 「朝鮮時代 文武百官 祭服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