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혜(당나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徐惠 (서혜)** **생몰년** : 미상 (주로 중국 당나라 시대 인물로 알려짐) **출생지** : 중국 당나라 **직업** : 시인, 학자, 궁중 여관(...)
 
34번째 줄: 34번째 줄:
  
 
중국 고전 문학 연구 자료
 
중국 고전 문학 연구 자료
 +
 +
현비 서씨(賢妃 徐氏, 627년~650년)는 당나라 태종의 후궁이며,이름은 서혜(徐慧)이다.
 +
 +
문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의 별명이 '신동'이었다. 5개월 때 말을 하고 4살에 《모시》,《논어》를 읽었으며 8살에 글을 썼다. 서혜는 측천무후와 같은 날에 입궁을 하여 재인이 되었다. 서재인은 입궁 후에 글을 알았고 국가대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당태종이 공을 들여 나라를 다스리며 국운을 흥하게 느끼고 만족감을 느끼는 것을 알고는, "교만함과 조급함을 멀리하시며 나라를 세우기는 쉽지만 지키기는 어려우니 처음과 끝이 같아야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것을 본 태종은 마치 문덕황후를 보는 거 같다며 그녀를 총애했다. 이후 서씨는 5품 재인에서 3품 첩여를 거쳐 2품 9빈중의 하나인 충용의 봉작을 받았다. 정관 23년 당태종이 서거한 후 슬퍼하다가 병이 들어 사망했다. 사망을 한 뒤 현비(賢妃)로 추존되었다.

2025년 7월 3일 (목) 09:03 판

    • 徐惠 (서혜)**
    • 생몰년** : 미상 (주로 중국 당나라 시대 인물로 알려짐)
    • 출생지** : 중국 당나라
    • 직업** : 시인, 학자, 궁중 여관(女官)
    • 대표작** : 《谏太宗息兵罢役疏》 (태종에게 전쟁과 역역을 중지할 것을 간하는 상소문)

徐惠은 중국 당나라 태종(李世民) 시대의 저명한 여성 시인이자 학자로, 어린 시절부터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 "신동"으로 불렸다. 그녀는 특히 시와 논설에 능했으며, 당 태종의 총애를 받아 궁중에서 활동했다.

    • 문학적 재능** : 어려서부터 《논어》·《시경》 등 고전에 통달했고, 8세에 시를 지을 정도로 뛰어났다.
    • 궁중 생활** : 당 태종의 부름을 받아 궁녀로 들어갔고, 후에 "현비(賢妃)"로 봉해졌다.
    • 간언(諫言)** : 태종이 말년에 전쟁과 토목 공사를 확대하자, 이를 비판하는 상소문을 올려 태종의 칭찬을 받았다.
    • 사후 평가** : 태종 사후, 그를 그리워하다 병으로 죽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당대와 후대 문인들에게 높이 평가받았다.
    • 대표 작품**

《谏太宗息兵罢役疏》 : 태종의 정책을 비판한 유명한 상소문.

여러 시편이 《전당시(全唐詩)》 등에 수록됨.

    • 역사적 의의** 徐惠은 당나라 시대 여성 지식인의 대표적 인물로, 정치적 견해를 당당히 피력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여성임에도 권력자에게 직언한 용기와 문학적 재능으로 중국 역사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 참고 문헌**

《구당서(舊唐書)》

《전당시(全唐詩)》

중국 고전 문학 연구 자료

현비 서씨(賢妃 徐氏, 627년~650년)는 당나라 태종의 후궁이며,이름은 서혜(徐慧)이다.

문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의 별명이 '신동'이었다. 5개월 때 말을 하고 4살에 《모시》,《논어》를 읽었으며 8살에 글을 썼다. 서혜는 측천무후와 같은 날에 입궁을 하여 재인이 되었다. 서재인은 입궁 후에 글을 알았고 국가대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당태종이 공을 들여 나라를 다스리며 국운을 흥하게 느끼고 만족감을 느끼는 것을 알고는, "교만함과 조급함을 멀리하시며 나라를 세우기는 쉽지만 지키기는 어려우니 처음과 끝이 같아야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것을 본 태종은 마치 문덕황후를 보는 거 같다며 그녀를 총애했다. 이후 서씨는 5품 재인에서 3품 첩여를 거쳐 2품 9빈중의 하나인 충용의 봉작을 받았다. 정관 23년 당태종이 서거한 후 슬퍼하다가 병이 들어 사망했다. 사망을 한 뒤 현비(賢妃)로 추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