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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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여성 [[예관]].
 
조선후기의 여성 [[예관]].
  
==착용신분과 착용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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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구성==
* 왕실과 궁중의 여인들의 [[예복]]과 [[상복]]에 착용.
 
* 반가와 서민들의 [[예복]]에 착용.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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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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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용신분===
* 국문학계: 알타이어 계통의 순수 우리말인 족+두리의 합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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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왕실 및 반가 부녀자.
{{Blockquote|족두리는 ‘족’과 ‘두리’로 나눌 수 있다. 족두리는 머리에 쓰는 것이다. 따라서 머리에서 기원한 말일 것이다 ‘두리’는 머리의 본뜻을 지닌다고 하겠다. 어린이를 어를 때 ‘도리도리’ 하는데, 어근 ‘돌’이 머리(頭)의 뜻을 지닌다. tologai(頭), 어근 ‘tol’이 ‘돌(頭)’과 동원어가 된다고 하겠다. ‘족’은 졷>졸>즑>족 변화로서 ‘돋’에서 소급된다. “쪽을 지다, 쪽을 틀다”의 ‘쪽’도 동원어일 것이다.
 
|출처= 서정범, 『국어어원사전』, 보고사, 2000.}}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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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용상황===
* 조선시대 학자 [[이규경|이규경(李圭景, 1788~1856)]]: 원나라에서 왕비에게 하사한 ‘고고리’가 와전되어 ‘족두리’가 변했다고 보는 견해.<ref>李圭景, 『五洲衍文長箋散稿』, 「人事篇, 服食類」, ‘東國婦女首飾辨證說’, “『高麗史』元賜王妃古古里, 卽冠名傳於世, 則今簇頭里, 無乃古古里之音近而訛者歟.”</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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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실과 궁중: [[예복]]과 [[상복]]에 착용.
* 조선시대 학자 박규수(朴珪壽, 1807~1876): 원나라 사람들이 말이 죽으면 불쌍하게 여겨 그 말굽 모양을 취해 머리에 쓰는 족두(足兜)의 남겨진 형상에서 유래했다는 보는 견해.<ref>朴珪壽, 『居家雜服攷』, 「內服」, “按, 所謂娘子頭者, 旣在腦後, 則頂上空處, 乃有小戴, 非冠非帽, 正如脫取馬蹄而仰置之形, 俗名足兜, 未知創自何時, 或云, 亦是元俗也. 胡人本以鞍馬爲家馳逐爲生, 故馬死則憐之, 取其制而戴之, 足兜之形, 卽其遺象, 故因名足兜也.”</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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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가와 서민: [[예복]]에 착용.
  
===시대별 형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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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 '''조선 전기(14~16세기)'''<ref>金知娟, 「朝鮮時代 女性 禮冠에 관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102~104쪽.</ref>
 
* '''조선 전기(14~16세기)'''<ref>金知娟, 「朝鮮時代 女性 禮冠에 관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102~104쪽.</ref>
 
**  앞이 낮고 뒤가 높으며, 옆면이 6~7쪽으로 나뉘고 정수리는 원형의 천 조각을 넓게 대어 편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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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족두리2.jpg|족두리(19세기) <ref>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ref>
 
파일:족두리2.jpg|족두리(19세기) <ref>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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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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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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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학계: 알타이어 계통의 순수 우리말인 족+두리의 합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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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족두리는 ‘족’과 ‘두리’로 나눌 수 있다. 족두리는 머리에 쓰는 것이다. 따라서 머리에서 기원한 말일 것이다 ‘두리’는 머리의 본뜻을 지닌다고 하겠다. 어린이를 어를 때 ‘도리도리’ 하는데, 어근 ‘돌’이 머리(頭)의 뜻을 지닌다. tologai(頭), 어근 ‘tol’이 ‘돌(頭)’과 동원어가 된다고 하겠다. ‘족’은 졷>졸>즑>족 변화로서 ‘돋’에서 소급된다. “쪽을 지다, 쪽을 틀다”의 ‘쪽’도 동원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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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정범, 『국어어원사전』, 보고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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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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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학자 [[이규경|이규경(李圭景]], 1788~1856): 원나라에서 왕비에게 하사한 ‘고고리’가 와전되어 ‘족두리’가 변했다고 보는 견해.<ref>李圭景, 『五洲衍文長箋散稿』, 「人事篇, 服食類」, ‘東國婦女首飾辨證說’, “『高麗史』元賜王妃古古里, 卽冠名傳於世, 則今簇頭里, 無乃古古里之音近而訛者歟.”</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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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학자 박규수(朴珪壽, 1807~1876): 원나라 사람들이 말이 죽으면 불쌍하게 여겨 그 말굽 모양을 취해 머리에 쓰는 족두(足兜)의 남겨진 형상에서 유래했다는 보는 견해.<ref>朴珪壽, 『居家雜服攷』, 「內服」, “按, 所謂娘子頭者, 旣在腦後, 則頂上空處, 乃有小戴, 非冠非帽, 正如脫取馬蹄而仰置之形, 俗名足兜, 未知創自何時, 或云, 亦是元俗也. 胡人本以鞍馬爲家馳逐爲生, 故馬死則憐之, 取其制而戴之, 足兜之形, 卽其遺象, 故因名足兜也.”</ref>
  
 
==관련항목==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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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연화, 「족두리(簇頭里)의 형태 및 제작과정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세종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 이연화, 「족두리(簇頭里)의 형태 및 제작과정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세종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 정영숙, 「조선시대 부인용 머리장신구 문양에 관한 고찰」, 석사학위논문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7.
 
* 정영숙, 「조선시대 부인용 머리장신구 문양에 관한 고찰」, 석사학위논문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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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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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3일 (목) 17:39 판


족두리
()
[[file:|360px|thumb|center|]]
대표명칭 족두리
이칭별칭 簇頭伊, 簇頭里, 족두(足頭), 족관(簇冠), 죡도리
착용신분 왕실, 궁중, 반가
착용성별 여성



정의

조선후기의 여성 예관.

복식구성

기본정보

착용신분

  • 조선시대 왕실 및 반가 부녀자.

착용상황

형태

  • 조선 전기(14~16세기)[1]
    • 앞이 낮고 뒤가 높으며, 옆면이 6~7쪽으로 나뉘고 정수리는 원형의 천 조각을 넓게 대어 편평함.
  • 17세기 [3]
    • 문헌에 ‘족두리’ 명칭 처음 등장.
    • 옆면이 7개의 조각으로 구성, 둥근 정수리가 앞으로 기울어짐.
    • 윗면이 85~95cm, 밑면이 61~69.5cm로 위에서 아래로 좁아지는 모양.
    • 조선 전기처럼 머리 위에 완전히 쓸 수 있는 형태로 역대 시기별 가장 큼.
  • 18세기 이후[4]
    • 17세기에 비해 둘레가 확실이 줄어들었지만, 가장 우뚝 솟은 형태.
    • 17세기는 중심이 앞으로 기울어졌다면 18세기는 중심이 뒤쪽으로 이동.
    • 크기가 전체적으로 이전 시기에 비해 줄어들면서 정수리의 원도 줄어들어 복숭아 씨 모양의 형태.
    • 조선시대에 가체금지령으로 인해 족두리가 권장된 이후, 현재까지도 혼례시에 사용.


기타

  • 어원
    • 국문학계: 알타이어 계통의 순수 우리말인 족+두리의 합성어.
Quote-left.png 족두리는 ‘족’과 ‘두리’로 나눌 수 있다. 족두리는 머리에 쓰는 것이다. 따라서 머리에서 기원한 말일 것이다 ‘두리’는 머리의 본뜻을 지닌다고 하겠다. 어린이를 어를 때 ‘도리도리’ 하는데, 어근 ‘돌’이 머리(頭)의 뜻을 지닌다. tologai(頭), 어근 ‘tol’이 ‘돌(頭)’과 동원어가 된다고 하겠다. ‘족’은 졷>졸>즑>족 변화로서 ‘돋’에서 소급된다. “쪽을 지다, 쪽을 틀다”의 ‘쪽’도 동원어일 것이다. Quote-right.png
출처: 서정범, 『국어어원사전』, 보고사, 2000.


  • 유래
    • 조선시대 학자 이규경(李圭景, 1788~1856): 원나라에서 왕비에게 하사한 ‘고고리’가 와전되어 ‘족두리’가 변했다고 보는 견해.[7]
    • 조선시대 학자 박규수(朴珪壽, 1807~1876): 원나라 사람들이 말이 죽으면 불쌍하게 여겨 그 말굽 모양을 취해 머리에 쓰는 족두(足兜)의 남겨진 형상에서 유래했다는 보는 견해.[8]

관련항목

참고문헌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거가잡복고(居家雜服攷)』
  • 고미연, 「한국여성의 두식에 관한 연구-조선시대를 중심으로」,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3.
  • 金知娟,「족두리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8.
  • 이연화, 「족두리(簇頭里)의 형태 및 제작과정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세종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 정영숙, 「조선시대 부인용 머리장신구 문양에 관한 고찰」, 석사학위논문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7.


주석

  1. 金知娟, 「朝鮮時代 女性 禮冠에 관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102~104쪽.
  2.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3. 金知娟, 「朝鮮時代 女性 禮冠에 관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104~106쪽.
  4. 金知娟, 「朝鮮時代 女性 禮冠에 관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107~111쪽.
  5.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6.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7. 李圭景, 『五洲衍文長箋散稿』, 「人事篇, 服食類」, ‘東國婦女首飾辨證說’, “『高麗史』元賜王妃古古里, 卽冠名傳於世, 則今簇頭里, 無乃古古里之音近而訛者歟.”
  8. 朴珪壽, 『居家雜服攷』, 「內服」, “按, 所謂娘子頭者, 旣在腦後, 則頂上空處, 乃有小戴, 非冠非帽, 正如脫取馬蹄而仰置之形, 俗名足兜, 未知創自何時, 或云, 亦是元俗也. 胡人本以鞍馬爲家馳逐爲生, 故馬死則憐之, 取其制而戴之, 足兜之形, 卽其遺象, 故因名足兜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