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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에 있는 현대에 [[서릉]](徐稜)·[[서식]](徐湜)·[[서숭로]](徐崇老)·[[서영우]](徐永佑)를 모시기 위해 세운 사우.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에 있는 현대에 [[서릉]](徐稜)·[[서식]](徐湜)·[[서숭로]](徐崇老)·[[서영우]](徐永佑)를 모시기 위해 세운 사우. | ||
− | [[서릉]](徐稜)은 『고려사(高麗史)』 효우전(孝友傳)에 입전되어 있는 고려를 대표하는 효자이다.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평생 벼슬하지 않았으며, 엄동설한에 개구리를 구해 어머니의 병을 고쳤다고 한다. 서식(徐湜)은 서릉의 9세손으로 부모가 돌아가시자 모두 6년 동안 시묘를 한 효자이다. 서숭로(徐崇老)[1532~1597]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휘하에서 전투를 하다 한산도 해전에서 순절하였다. 서영우(徐永佑)[1605~?]는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가 화의(和議)가 결정되었다는 말을 듣고 통곡하며 향리로 돌아와 후학을 가르쳤다.화남사(華南祠)는 순창군청에서 대강·유등 방면 지방도 730호선으로 가다 유등면사무소와 유등 초등학교를 지나 유천 대교에서 약 500m 가면 나오는 유천 마을 뒤편에 있다.1949년 이천 서씨(利川徐氏) 문중과 유림의 공의(公議)로 서릉, 서식, 서숭로, | + | [[서릉]](徐稜)은 『고려사(高麗史)』 효우전(孝友傳)에 입전되어 있는 고려를 대표하는 효자이다.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평생 벼슬하지 않았으며, 엄동설한에 개구리를 구해 어머니의 병을 고쳤다고 한다. [[서식]](徐湜)은 서릉의 9세손으로 부모가 돌아가시자 모두 6년 동안 시묘를 한 효자이다. [[서숭로]](徐崇老)[1532~1597]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휘하에서 전투를 하다 한산도 해전에서 순절하였다. [[서영우]](徐永佑)[1605~?]는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가 화의(和議)가 결정되었다는 말을 듣고 통곡하며 향리로 돌아와 후학을 가르쳤다.[[화남사]](華南祠)는 순창군청에서 대강·유등 방면 지방도 730호선으로 가다 유등면사무소와 유등 초등학교를 지나 유천 대교에서 약 500m 가면 나오는 유천 마을 뒤편에 있다.1949년 이천 서씨(利川徐氏) 문중과 유림의 공의(公議)로 [[서릉]], [[서식]], [[서숭로]], [[서영우]]의 효행과 충의를 기리기 위해 화남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일찍이 [[이천 서씨]] 문중에서는 [[서릉]]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587년(선조 20) 전라남도 장성군에 [[모암사]](慕巖祠)를 창건하고 6현을 추가 배향하였다. 또 1752년(영조 28) 무안군 석진면[몽탄(夢灘)] 반월산(半月山) 기슭에 [[월산사]](月山祠)를 중건하여 주벽으로 2현을 병향하였다. [[이천 서씨]] 후손에 의하면, 1922년 5월 18일 사당을 현 위치에 건립하여 매년 제를 올렸다고 한다. |
− | + | [[화남사]]는 [[서릉]]을 주벽으로 3현을 배향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부속 건물로 모효재(慕孝齋)가 있다. 1984년 88 올림픽 고속 도로[현 광주 대구 고속 도로]를 건설할 당시 사우가 있던 산자락을 깎아 도로를 만들면서 기둥이 기울고 벽이 훼손되며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2013년 4월부터 중수하기 시작하여 2014년 8월 현재 완공 단계에 있다.2013년 12월 중수하기 전 본당은 전면 3칸·측면 2칸 맞배지붕, 내·외삼문은 각 3칸이다. 모효재는 전면 4칸·측면 2칸 목조기와 맞배지붕이며 규모는 약 46.28㎡[14평]이다. 모효재 중문은 목조 기와지붕으로 규모는 약 9.92㎡[3평]이고, 고직사는 목조 슬레이트로 규모는 약 49.59㎡[15평]이다.매년 음력 9월 25일 향사하고 있다.[[화남사]]는 고려 고종 때 효자로 이름난 [[이천 서씨]] [[서릉]]을 비롯하여 그 후손 중 효와 절행이 뛰어난 [[서식]], [[서숭로]], [[서영우]]를 모신 사우이다. [[이천 서씨]] 집안에서 선조들의 효행을 계승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 |
2022년 10월 13일 (목) 14:01 판
화남사(華南祠)- 이천서씨(利川徐氏) 절효공파(節孝公派) 사당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에 있는 현대에 서릉(徐稜)·서식(徐湜)·서숭로(徐崇老)·서영우(徐永佑)를 모시기 위해 세운 사우.
서릉(徐稜)은 『고려사(高麗史)』 효우전(孝友傳)에 입전되어 있는 고려를 대표하는 효자이다.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평생 벼슬하지 않았으며, 엄동설한에 개구리를 구해 어머니의 병을 고쳤다고 한다. 서식(徐湜)은 서릉의 9세손으로 부모가 돌아가시자 모두 6년 동안 시묘를 한 효자이다. 서숭로(徐崇老)[1532~1597]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휘하에서 전투를 하다 한산도 해전에서 순절하였다. 서영우(徐永佑)[1605~?]는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가 화의(和議)가 결정되었다는 말을 듣고 통곡하며 향리로 돌아와 후학을 가르쳤다.화남사(華南祠)는 순창군청에서 대강·유등 방면 지방도 730호선으로 가다 유등면사무소와 유등 초등학교를 지나 유천 대교에서 약 500m 가면 나오는 유천 마을 뒤편에 있다.1949년 이천 서씨(利川徐氏) 문중과 유림의 공의(公議)로 서릉, 서식, 서숭로, 서영우의 효행과 충의를 기리기 위해 화남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일찍이 이천 서씨 문중에서는 서릉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587년(선조 20) 전라남도 장성군에 모암사(慕巖祠)를 창건하고 6현을 추가 배향하였다. 또 1752년(영조 28) 무안군 석진면[몽탄(夢灘)] 반월산(半月山) 기슭에 월산사(月山祠)를 중건하여 주벽으로 2현을 병향하였다. 이천 서씨 후손에 의하면, 1922년 5월 18일 사당을 현 위치에 건립하여 매년 제를 올렸다고 한다.
화남사는 서릉을 주벽으로 3현을 배향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부속 건물로 모효재(慕孝齋)가 있다. 1984년 88 올림픽 고속 도로[현 광주 대구 고속 도로]를 건설할 당시 사우가 있던 산자락을 깎아 도로를 만들면서 기둥이 기울고 벽이 훼손되며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2013년 4월부터 중수하기 시작하여 2014년 8월 현재 완공 단계에 있다.2013년 12월 중수하기 전 본당은 전면 3칸·측면 2칸 맞배지붕, 내·외삼문은 각 3칸이다. 모효재는 전면 4칸·측면 2칸 목조기와 맞배지붕이며 규모는 약 46.28㎡[14평]이다. 모효재 중문은 목조 기와지붕으로 규모는 약 9.92㎡[3평]이고, 고직사는 목조 슬레이트로 규모는 약 49.59㎡[15평]이다.매년 음력 9월 25일 향사하고 있다.화남사는 고려 고종 때 효자로 이름난 이천 서씨 서릉을 비롯하여 그 후손 중 효와 절행이 뛰어난 서식, 서숭로, 서영우를 모신 사우이다. 이천 서씨 집안에서 선조들의 효행을 계승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