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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명숙 | + | * 김명숙, 「朝鮮時代 冕服의 考察」,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3. |
− | * 김명숙 | + | * 김명숙, 「朝鮮後期 冕服의 變遷」, 『服飾』, 7권, 한국복식학회, 1983. |
− | * 김명숙 | + | * 김명숙, 「朝鮮時代 王世子 冕服」, 『服飾』, 18권, 한국복식학회, 1992. |
− | * 유희경 | + | * 유희경, 「冕服에 關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72. |
− | * 안애영 | + | * 안애영, 「임오년 가례 왕세자 왕세자빈 복식 연구」, 단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
− | * 이봉이 | + | * 이봉이, 『조선시대말기 왕, 왕비 복식재현연구』, 성신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
'''단행본''' | '''단행본''' | ||
− | * 崔圭順 | + | * 崔圭順, 『中國歷代帝王冕服硏究』, 東華大學出版社, 2007. |
− | * 국립고궁박물관 | + | * 국립고궁박물관 『衣, 中單-국립고궁박물관 복원복제 제작기술서 2권』, 국립고궁박물관, 2011. |
− | * 국립고궁박물관 | +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2. |
− | * 이민주 | + | *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3) |
− | * 최규순 | + | * 최규순, 「황제와 황후의 복식 어떻게 변화했나」, 『대한제국 잊혀진 100년전의 황제국』, 민속원, 2011. |
− | * 최연우 | + |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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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2일 (수) 18:10 판
면복(冕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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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면복(冕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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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곤면복(袞冕服), 곤복(袞服) |
착용신분 | 왕실 |
착용성별 | 남성 |
목차
정의
왕의 최고 등급의 예복으로, 제사를 지낼 때 착용하는 제복(祭服).
착용신분과 착용상황[1]
- 조선의 왕, 왕세자, 왕세제, 왕세손, 대한제국 황제와 황태자가 국가 의례 및 일생 의례에 착용함.
- 국가 의례
- 책례
- 등극의례
- 일생 의례
- 관례 : 삼가례(三加禮), 조알례(朝謁禮), 알묘례(謁廟禮)
- 혼례 : 명사봉영(命使奉迎), 임헌초계(臨軒醮戒), 친영례(親迎禮), 동뢰연(同牢宴)
- 상례
- 제례 : 제천례(祭天禮), 사직제(社稷祭), 종묘제(宗廟祭), 선농제(先農祭), 문묘제(文廟祭)
복식 구성
익종(문조)어진 7장 면복[2]
기본 정보
유래[17]
- 주(周)나라 때 육면복의 체계적인 제도 완성.
- 육면복(六冕服) : 대구면(大裘冕), 곤면(袞冕), 별면(鷩冕), 취면(毳冕), 치면(希冕; 絺冕), 현면(玄冕)[18]
- 혼란기인 전국시대 이래 파괴되었다가 정치적 전통성을 보장받기 위한 목적으로 후한(後漢) →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 수(隋) → 당(唐) → 송(宋)에 이르기까지 육면복의 제도가 점차 복원됨.
- 요(遼), 금(金), 원(元) 시대에는 육면복이 점차 곤면복 하나로 단일화되어 가며, 명(明)에 이르러 태조 주원장이 곤면복 한 가지만을 제도화하도록 명령하고 신하들의 면복 착용도 금지함.
- 청(淸)나라에 이르러서는 더이상 면복을 사용하지 않게 됨.
- 우리나라의 경우 면복이 전래된 명확한 기록은 없음.
-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명칭이 보여 삼국시대에 이미 들어왔던 것으로 추측됨.
- 『고려사(高麗史)』에 송(宋), 요(遼), 금(金), 명(明) 등의 왕조에서 고려에 면복을 보낸 기록이 확인됨.
- 조선시대에는 1402년(태종 2)에 처음 면복이 전래되었으며 명(明)이 멸망하는 인조 때까지 계속됨.
- 조선후기부터 대한제국까지 명(明)에서 받은 면복을 참조하여 자체 제작하여 착용함.
관련항목
복식 → 복식
항목A | 항목B | 관계 |
---|---|---|
면관(冕冠) | 면복 | A는 B의 일습이다 |
상의(上衣) | 면복 | A는 B의 일습이다 |
하상(下裳) | 면복 | A는 B의 일습이다 |
중단(中單) | 면복 | A는 B의 일습이다 |
대대(大帶) | 면복 | A는 B의 일습이다 |
폐슬(蔽膝) | 면복 | A는 B의 일습이다 |
패옥(佩玉) | 면복 | A는 B의 일습이다 |
수(綬) | 면복 | A는 B의 일습이다 |
방심곡령(方心曲領) | 면복 | A는 B의 일습이다 |
말(襪) | 면복 | A는 B의 일습이다 |
석(舃) | 면복 | A는 B의 일습이다 |
규(圭) | 면복 | A는 B의 일습이다 |
장문(章紋) | 면복 | A는 B의 일습이다 |
기관/소장처 → 복식
항목A | 항목B | 관계 |
---|---|---|
면복각(冕服閣) | 면복 | A는 B를 소장한다 |
회화 → 복식
항목A | 항목B | 관계 |
---|---|---|
문조(익종)어진 | 면복 | A는 B를 보여준다 |
문헌 → 복식
항목A | 항목B | 관계 |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 | 왕복식도설 | A는 B를 기록한다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 | 왕세자복식도설 | A는 B를 기록한다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 | 왕세손복식도설 | A는 B를 기록한다 |
참고문헌
문헌
논문
- 김명숙, 「朝鮮時代 冕服의 考察」,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3.
- 김명숙, 「朝鮮後期 冕服의 變遷」, 『服飾』, 7권, 한국복식학회, 1983.
- 김명숙, 「朝鮮時代 王世子 冕服」, 『服飾』, 18권, 한국복식학회, 1992.
- 유희경, 「冕服에 關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72.
- 안애영, 「임오년 가례 왕세자 왕세자빈 복식 연구」, 단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 이봉이, 『조선시대말기 왕, 왕비 복식재현연구』, 성신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단행본
- 崔圭順, 『中國歷代帝王冕服硏究』, 東華大學出版社, 2007.
- 국립고궁박물관 『衣, 中單-국립고궁박물관 복원복제 제작기술서 2권』, 국립고궁박물관, 2011.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2.
-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3)
- 최규순, 「황제와 황후의 복식 어떻게 변화했나」, 『대한제국 잊혀진 100년전의 황제국』, 민속원, 2011.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사이트
주석
- ↑ 최연우(2015) 『면복』, 문학동네, p. 119~165.
-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길례(吉禮)」 제복도설, 전하면복
-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길례(吉禮)」 제복도설, 전하면복
-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길례(吉禮)」 제복도설, 전하면복
-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길례(吉禮)」 제복도설, 전하면복
-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길례(吉禮)」 제복도설, 전하면복
-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길례(吉禮)」 제복도설, 전하면복
-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길례(吉禮)」 제복도설, 전하면복
-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길례(吉禮)」 제복도설, 전하면복
-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길례(吉禮)」 제복도설, 전하면복
-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길례(吉禮)」 제복도설, 전하면복
-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길례(吉禮)」 제복도설, 전하면복
-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길례(吉禮)」 제복도설, 전하면복
-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길례(吉禮)」 제복도설, 전하면복
-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길례(吉禮)」 제복도설, 전하면복
- ↑ 최연우(2015) 『면복』, 문학동네, p. 13~16.
- ↑ 국제신문:황태현의 고전 속 성어 <484> 服周之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