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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천성이 강직하며, 학술이 정밀하고 깊었다고 하였음. 공은 특히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와 함께 교분을 맺고 공부도 같이 하였는데, 향산은 공에게 ‘급재(岌齋)’라는 호를 양보하여 주고, 아울러 「급재기(岌齋記)」를 지어 공을 권면하는 뜻을 보이기도 하였음. 향산은 「급재기」에서, 공이 과거에도 합격하였으나, 분화한 서울에서 시속(時俗)에 영합하지 아니하고 조용한 골짜기로 내려와, 자신과 함께 학문을 토론하는 공의 자세를 매우 높이 평가하였음. | 공은 천성이 강직하며, 학술이 정밀하고 깊었다고 하였음. 공은 특히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와 함께 교분을 맺고 공부도 같이 하였는데, 향산은 공에게 ‘급재(岌齋)’라는 호를 양보하여 주고, 아울러 「급재기(岌齋記)」를 지어 공을 권면하는 뜻을 보이기도 하였음. 향산은 「급재기」에서, 공이 과거에도 합격하였으나, 분화한 서울에서 시속(時俗)에 영합하지 아니하고 조용한 골짜기로 내려와, 자신과 함께 학문을 토론하는 공의 자세를 매우 높이 평가하였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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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4일 (수) 02:18 판
1840년(헌종6)~1904년(광무8).
자 여형(汝衡). 호 급재(岌齋). 괴와(槐窩) 서재응(徐在應)의 아들. 송사헌(松沙軒) 동렬(東烈)의 손자. 생원시에 입격함.
공은 천성이 강직하며, 학술이 정밀하고 깊었다고 하였음. 공은 특히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와 함께 교분을 맺고 공부도 같이 하였는데, 향산은 공에게 ‘급재(岌齋)’라는 호를 양보하여 주고, 아울러 「급재기(岌齋記)」를 지어 공을 권면하는 뜻을 보이기도 하였음. 향산은 「급재기」에서, 공이 과거에도 합격하였으나, 분화한 서울에서 시속(時俗)에 영합하지 아니하고 조용한 골짜기로 내려와, 자신과 함께 학문을 토론하는 공의 자세를 매우 높이 평가하였음.
유고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