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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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양(챙)이 없어 [[탕건]]처럼 머리를 감싸는 형태로, 말총이나 가죽 혹은 헝겊 등으로 만든다. 『태종실록』16년(1416) 1월 12일 기록에 "향리가 보통 때 [[감투]]를 써서 평민과 다름 없음이 예가 아니기 때문에 [[방립]]에 흑칠을 하여 사용케 하자'는 내용이 있는데, 이로 보아 [[감투]]는 비교적 낮은 계층에서 평상시에 사용하는 쓰개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ref>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60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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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양(챙)이 없어 [[탕건]]처럼 머리를 감싸는 형태로, 말총이나 가죽 혹은 헝겊 등으로 만든다. 『태종실록』16년(1416) 1월 12일 기록에 "향리가 보통 때 [[감투]]를 써서 평민과 다름 없음이 예가 아니기 때문에 [[방립]]에 흑칠을 하여 사용케 하자"는 내용이 있는데, 이로 보아 [[감투]]는 비교적 낮은 계층에서 평상시에 사용하는 쓰개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ref>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60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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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6일 (토) 23:15 기준 최신판


감투
(甘頭)
대표명칭 감투
한자표기 甘頭
구분 관 및 쓰개
착용신분 평민, 귀유치(歸逰赤)
착용성별 남성



정의

낮은 계층이나 벼슬을 하지 않은 평민, 향리 및 왕실 가족을 시위(侍衛)할 때 어린 내관인 귀유치(歸逰赤) 등이 착용한다.[1]

내용

차양(챙)이 없어 탕건처럼 머리를 감싸는 형태로, 말총이나 가죽 혹은 헝겊 등으로 만든다. 『태종실록』16년(1416) 1월 12일 기록에 "향리가 보통 때 감투를 써서 평민과 다름 없음이 예가 아니기 때문에 방립에 흑칠을 하여 사용케 하자"는 내용이 있는데, 이로 보아 감투는 비교적 낮은 계층에서 평상시에 사용하는 쓰개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귀유치(歸逰赤) 감투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60쪽.
  2.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60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姜淳弟, 「우리 冠帽의 始末에 관한 硏究-男子 便服 冠帽를 中心으로-」, 서울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 姜淳弟, 「笠制의 變遷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4.
  • 姜淳弟, 「韓國 笠制의 變遷에 關한 硏究」, 『服飾』 1권, 한국복식학회, 1977.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 국립민속박물관, 『머리에서 발끝까지』, 국립민속박물관, 2011.
  • 김아람, 「복식 고증을 통한 복온공주 혼례 친영반차도 구현」,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 김은정ㆍ강순제, 「감투에 관한 연구」, 『服飾』 57권 6호, 한국복식학회, 2007.
  • 柳喜卿, 「우리나라의 冠帽」, 『대한가정학회지』 제4권, 대한가정학회, 1963.
  • 李民周, 「朝鮮時代 王族冠帽에 關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6.
  • 李銀喜, 「朝鮮朝 黑笠에 관한 硏究」,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6.
  • 이철성, 「18·19세기 朝鮮의 對淸貿易 展開過程에 관한 硏究-帽子·人蔘貿易을 둘러싼 譯·商間의 경쟁을 中心으로-」,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7.
  • 陳美喜, 「朝鮮時代 男子 便服冠帽에 관한 考察」,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5.
  • 황의숙 외3인, 『아름다운 한국복식』, 수학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