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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 기서(奇書)가 조선에서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무목왕정충록(武穆王貞忠錄)』과 같은 명·청 대 소설이 다수 수입되었다. 중국 4대 기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국내로 대량 유입되게 된다. 이전까지 조선의 문학은 문인들의 전유물로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시와 문장 등이 주류를 차지했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상황 때문에 그와 관련된 전쟁소설들이 인기를 끌었고 다른 소설들에까지 미친 것으로 보인다.<ref>김흥철 외, 「4대기서(四大奇書)가 한국에 미친 영향」, 『淸大學術論集』, vol.3, 청주대학교 학술연구소, 2004.</ref>
 
중국 4대 기서(奇書)가 조선에서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무목왕정충록(武穆王貞忠錄)』과 같은 명·청 대 소설이 다수 수입되었다. 중국 4대 기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국내로 대량 유입되게 된다. 이전까지 조선의 문학은 문인들의 전유물로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시와 문장 등이 주류를 차지했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상황 때문에 그와 관련된 전쟁소설들이 인기를 끌었고 다른 소설들에까지 미친 것으로 보인다.<ref>김흥철 외, 「4대기서(四大奇書)가 한국에 미친 영향」, 『淸大學術論集』, vol.3, 청주대학교 학술연구소, 2004.</ref>
  
『무목왕정충록(武穆王貞忠錄)』은 송나라의 명장 악비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로서 청나라, 즉 오랑캐에 대한 적대적 인식과 전쟁소설의 요소가 잘 어우러진 글이다. 원래 제목은 웅대목의 『대송중흥통속연의』인데 번역 과정에서 『무목왕정충록』으로 바뀌었으며 낙선재에만 있는 유일본이다. 낙선재본 『손용연의』와 함께 낙선재 문고에 소장되어 있는 번역 소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낙선재본 중 유일하게 영빈(英嬪)이라는 소장자의 장서인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18세기 중엽에 궁중에서 필사된 것을 알 수 있다. 책의 권말에는 영조의 친필 제문이 실려 있는데 『국조실록』을 보면 숙종과 선조의 유지를 이어 제문을 지었음을 알 수 있다.<ref>박재연, 「낙선재본 「唐晋演義」·「武穆王貞忠錄」에 대하여」, 한국연구재단 연구성과물, 1992.</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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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목왕정충록(武穆王貞忠錄)』은 송나라의 명장 악비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로서 청나라, 즉 오랑캐에 대한 적대적 인식과 전쟁소설의 요소가 잘 어우러진 글이다. 원래 제목은 웅대목의 『대송중흥통속연의』인데 번역 과정에서 『무목왕정충록』으로 바뀌었으며 낙선재에만 있는 유일본이다. 낙선재본 『손용연의』와 함께 낙선재 문고에 소장되어 있는 번역 소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낙선재본 중 유일하게 영빈(英嬪)이라는 소장자의 장서인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18세기 중엽에 궁중에서 필사된 것을 알 수 있다. <ref>박재연, 「낙선재본 「唐晋演義」·「武穆王貞忠錄」에 대하여」, 한국연구재단 연구성과물, 1992.</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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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7일 (수) 17:35 기준 최신판

무목왕정충록
한글팀 무목왕정충록.png
한자명칭 武穆王精忠錄
영문명칭 A translated novel of a story '大宋中興通俗演義'
간행시기 1700년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청구기호 4-6806
유형 고서
크기(세로×가로) 29.0×23.3㎝
판본 필사본
수량 7책
표기문자 한글


정의

명나라 웅대목(熊大木)이 지은 '대송중흥통속연의(大宋中興通俗演義)'를 번역한 소설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북송 말년에 금나라의 군사를 거듭 물리친 악비진회(秦會)의 계략으로 죽지만, 그 충성스러운 영혼은 끝까지 나라에 충성하고 진회는 나중에 저승에서 천벌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장서각 소장본은 전체 12책 중 7책만 남아 있는데, 권12 끝에 필사기와 영조악비를 치제하며 지은 제문을 번역하여 수록하고 있다. 각 책에는 항아리[樽] 모양의 소장인과 함께 '영빈방인(暎嬪房印)'이라는 장서인이 찍혀 있어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이씨(暎嬪李氏)가 보았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셰ᅎᆡ샹쟝집셔턍월샹한필셔(歲在上章執徐暢月上澣筆書)'라는 필사기로 미루어 1700년(숙종26) 필사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전하는 한글소설 중 필사시기가 상당히 이른 작품이다. [1]

『무목왕정충록』의 한반도 전래

중국 4대 기서(奇書)가 조선에서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무목왕정충록(武穆王貞忠錄)』과 같은 명·청 대 소설이 다수 수입되었다. 중국 4대 기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국내로 대량 유입되게 된다. 이전까지 조선의 문학은 문인들의 전유물로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시와 문장 등이 주류를 차지했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상황 때문에 그와 관련된 전쟁소설들이 인기를 끌었고 다른 소설들에까지 미친 것으로 보인다.[2]

『무목왕정충록(武穆王貞忠錄)』은 송나라의 명장 악비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로서 청나라, 즉 오랑캐에 대한 적대적 인식과 전쟁소설의 요소가 잘 어우러진 글이다. 원래 제목은 웅대목의 『대송중흥통속연의』인데 번역 과정에서 『무목왕정충록』으로 바뀌었으며 낙선재에만 있는 유일본이다. 낙선재본 『손용연의』와 함께 낙선재 문고에 소장되어 있는 번역 소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낙선재본 중 유일하게 영빈(英嬪)이라는 소장자의 장서인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18세기 중엽에 궁중에서 필사된 것을 알 수 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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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와 한글소설


지식 관계망

  • 낙선재와 한글소설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무목왕정충록 웅대목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무목왕정충록 대송중흥통속연의 A는 B의 번역본이다 A edm:isDerivativeOf B
무목왕정충록 악비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무목왕정충록 진회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영조 악비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영빈이씨 사도세자 A는 아들 B를 두었다 A ekc:hasSon B
영조 영빈이씨 A는 B의 남편이다 A ekc:hasWife B
영조 사도세자 A는 아들 B를 두었다 A ekc:hasSon B
영빈이씨 무목왕정충록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낙선재 무목왕정충록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낙선재 손용연의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시간정보

시간 내용
1700년 웅대목무목왕정충록이 번역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39197 127.054387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무목왕정충록이 소정되어 있다.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268쪽.
  2. 김흥철 외, 「4대기서(四大奇書)가 한국에 미친 영향」, 『淸大學術論集』, vol.3, 청주대학교 학술연구소, 2004.
  3. 박재연, 「낙선재본 「唐晋演義」·「武穆王貞忠錄」에 대하여」, 한국연구재단 연구성과물,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