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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는 여러 가지 사회적 변화를 거치면서, 여성 의복에 대한 가치관과 그 형태도 달라진 상황이었다. 특히 18세기 이후부터는 저고리 길이가 짧아져 속옷이 드러나게 하고, 하체를 풍만하게 하여 여성 곡선을 살리는 형태로 의복이 변화하였다. 그 이유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사회적 기반이 많이 흔들리게 되었으며, 그 여파로 이전 제도를 다시 정립하기 위해 명분과 유교를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사회 풍토가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남성과 여성의 차별성, 그리고 몸가짐에 대한 의복규제가 여성에게 더 엄격해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기녀]]나 일반 백성 여성에 대해서는 의복에 대한 규제가 심각하지 않아 먼저 [[기녀]]들부터 [[사대부]] 여성과는 차별화된 의복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당시 유교주의에 억눌린 여성성이 [[기녀]]들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유행을 타고 일반 백성을 거쳐 사대부 여성들까지도 점차 따라하게 된 것이다.<ref>김혜영, 「기녀복식을 중심으로 본 조선후기 여성 복식의 연구」, 『培材論叢』, Vol 2, 1997, 427-455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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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는 여러 가지 사회적 변화를 거치면서, 여성 의복에 대한 가치관과 그 형태도 달라진 상황이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사회적 기반이 많이 흔들리게 되었으며, 그 여파로 이전 제도를 다시 정립하기 위해 명분과 유교를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사회 풍토가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남성과 여성의 차별성, 그리고 몸가짐에 대한 의복규제가 여성에게 더 엄격해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기녀]]나 일반 백성 여성에 대해서는 의복에 대한 규제가 심각하지 않아 먼저 [[기녀]]들부터 [[사대부]] 여성과는 차별화된 의복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당시 유교주의에 억눌린 여성성이 [[기녀]]들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유행을 타고 일반 백성을 거쳐 사대부 여성들까지도 점차 따라하게 된 것이다. 특히 18세기 이후부터는 저고리 길이가 짧아져 속옷이 드러나게 하고, 하체를 풍만하게 하여 여성 곡선을 살리는 형태로 의복이 변화하였다.<ref>김혜영, 「기녀복식을 중심으로 본 조선후기 여성 복식의 연구」, 『培材論叢』, Vol 2, 1997, 427-455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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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13 기준 최신판

의복 목록
한글팀 의복목록 01 표지.jpg
한자명칭 衣服目錄
영문명칭 A document about the names and numbers of clothes
작자 미상
간행시기 조선후기
기탁처 경주김씨 직각종택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유형 고문서
크기(세로×가로) 23.5×108.0㎝
판본 필사본
수량 1장
표기문자 한글


정의

여성의 의복을 종류별로 열거한 한글 목록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치마, 저고리, 단속곳, 속속곳, 바지, 고의 등의 하의와 적삼 등의 상의, 버선, 행주치마, 보자기와 같은 용품 등을 기록하였다. 물품과 수량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보아 평상시 필요한 물목이라기보다는 큰 의례를 준비하는 물목으로 보인다. 더욱이 직물에 있어서도 여름용 모시와 봄·가을용 삼팔(중국명주), 부사견, 숙고사, 보일오(보로) 등의 직물명이 보이며, 모본단 및 솜을 둔 겨울옷도 있다. 또 바느질 방법에 있어서도 여름용 깨끼저고리도 보이고, 봄·가을용으로 간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바느질한 박이겹저고리와 모시치마도 있으며, 다듬이질을 한 명주도 기록하고 있어 사계절에 필요한 모든 의복을 망라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색실을 이용하여 듬성듬성 꿰맨 모시진솔 단속곳도 기록하고 있어 여성 의복을 한꺼번에 가장 많이 장만하게 되는 혼례용 의복 목록으로 판단된다. 특히 불난사, 보일오 등 새로운 직물명이 보이고 박이, 깨끼, 겹, 재양 등의 바느질법과 옷감 손질법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사대부가의 의생활문화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1]

조선후기 의복기록 집성

조선의복에 대해서 많은 자료가 있으나 종합적으로 정리된 것은 매우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 자료를 궁중의복이나 각각의 양반가 기록에서 찾아야 할 정도로 매우 분산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서유구가 『임원경제지』를 찬술하였는데, 이전 복식 저작과 다르게 복식의 법제와 명칭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복식의 재료, 생산, 관리, 단장과 재봉도구까지 완벽한 의복에 대한 백과사전을 지향하였다.[2]

조선후기 의복과 여성

조선후기는 여러 가지 사회적 변화를 거치면서, 여성 의복에 대한 가치관과 그 형태도 달라진 상황이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사회적 기반이 많이 흔들리게 되었으며, 그 여파로 이전 제도를 다시 정립하기 위해 명분과 유교를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사회 풍토가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남성과 여성의 차별성, 그리고 몸가짐에 대한 의복규제가 여성에게 더 엄격해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기녀나 일반 백성 여성에 대해서는 의복에 대한 규제가 심각하지 않아 먼저 기녀들부터 사대부 여성과는 차별화된 의복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당시 유교주의에 억눌린 여성성이 기녀들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유행을 타고 일반 백성을 거쳐 사대부 여성들까지도 점차 따라하게 된 것이다. 특히 18세기 이후부터는 저고리 길이가 짧아져 속옷이 드러나게 하고, 하체를 풍만하게 하여 여성 곡선을 살리는 형태로 의복이 변화하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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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관계망

  • 의복 목록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임원경제지 의복 목록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의복 목록 임진왜란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의복 목록 병자호란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의복 목록 경주김씨 직각종택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의복 목록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임원경제지 서유구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기녀 사대부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기녀 임진왜란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기녀 병자호란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사대부 임진왜란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사대부 병자호란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조선후기 의복 목록은 간행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의복 목록경주김씨 직각종택에 보관되었다
37.39197 127.054387 의복 목록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현재 소장되어 있다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152쪽.
  2. 홍나영, 「조선후기 복식과 《임원경제지》」, 『진단학보』, Vol 108, 2009, 131~165쪽.
  3. 김혜영, 「기녀복식을 중심으로 본 조선후기 여성 복식의 연구」, 『培材論叢』, Vol 2, 1997, 427-455쪽.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논문
    • 홍나영, 「조선후기 복식과 《임원경제지》」, 『진단학보』, Vol 108, 2009, 131-165쪽.
    • 홍나영, 「조선시대 복식에 나타난 여성성」,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Vol 13, 2006, 81-102쪽.
    • 김혜영, 「기녀복식을 중심으로 본 조선후기 여성 복식의 연구」, 『培材論叢』, Vol 2, 1997, 427-4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