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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암 [[송시열]](1607~1689) | + | 우암 [[송시열]](1607~1689)은 서문과 발문을 통해 딸을 시집보내는 늙은 아버지의 걱정을 담아 지었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원본은 딸과 혼인하는 [[권유]](權惟, 1625~1684)의 가문에 전했으나, 이를 베낀 것이 우암 집안에 전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
딸에게 당부하는 내용은 모두 2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제목은 부모를 섬기는 도리, 남편을 섬기는 도리, 시부모를 섬기는 도리, 형제가 화목한 도리, 친척이 화목한 도리, 자식을 가르치는 도리, 제사를 받드는 도리, 손님을 접대하는 도리, 투기하지 말아야 하는 도리, 말을 조심하는 도리, 재물을 절약하는 도리, 일을 부지런히 하는 도리, 병환을 모시는 도리, 의복과 음식을 마련하는 도리, 노비를 부리는 도리, 재물을 꾸고 받는 도리, 팔고 사는 도리, 소원하는 도리, 중요한 경계, 옛사람의 착한 행실로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발문에서 제대로 교훈하지 못하고 시집보내게 된 것을 민망하게 여기며 한 달에 두세 번씩 읽고 허물없이 행동할 것을 당부하였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190쪽.</REF> | 딸에게 당부하는 내용은 모두 2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제목은 부모를 섬기는 도리, 남편을 섬기는 도리, 시부모를 섬기는 도리, 형제가 화목한 도리, 친척이 화목한 도리, 자식을 가르치는 도리, 제사를 받드는 도리, 손님을 접대하는 도리, 투기하지 말아야 하는 도리, 말을 조심하는 도리, 재물을 절약하는 도리, 일을 부지런히 하는 도리, 병환을 모시는 도리, 의복과 음식을 마련하는 도리, 노비를 부리는 도리, 재물을 꾸고 받는 도리, 팔고 사는 도리, 소원하는 도리, 중요한 경계, 옛사람의 착한 행실로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발문에서 제대로 교훈하지 못하고 시집보내게 된 것을 민망하게 여기며 한 달에 두세 번씩 읽고 허물없이 행동할 것을 당부하였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190쪽.</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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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는 건국초기에서부터 정부가 주도적으로 각종 여성교훈서를 간행하였고, 위정자들은 지속적으로 여성교화정책을 시행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위정자들은 여말선초의 사회혼란의 요인 중의 하나가 여성들의 풍기문란이라고 보고 이를 교화하기 위한 방도로 여성교육을 중시하였다. | 조선시대는 건국초기에서부터 정부가 주도적으로 각종 여성교훈서를 간행하였고, 위정자들은 지속적으로 여성교화정책을 시행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위정자들은 여말선초의 사회혼란의 요인 중의 하나가 여성들의 풍기문란이라고 보고 이를 교화하기 위한 방도로 여성교육을 중시하였다. | ||
− | 대표적인 여성교훈서로 세종대의 [[삼강행실도 언해 |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비롯하여 소혜왕후 한씨의 [[내훈 | 『내훈(內訓)』]]등이 편찬되었고, 1481년에 [[삼강행실도 언해 | 『언해속삼강행실열녀도(諺文三綱行實烈女圖)』]]가 간행 반포되어 전국의 일반 부녀자에게 강습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여성교화 장려책은 중종 연간(1506~1544)에도 강력하게 계속되었다. 중종 | + | 대표적인 여성교훈서로 세종대의 [[삼강행실도 언해 |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비롯하여 소혜왕후 한씨의 [[내훈 | 『내훈(內訓)』]]등이 편찬되었고, 1481년에 [[삼강행실도 언해 | 『언해속삼강행실열녀도(諺文三綱行實烈女圖)』]]가 간행 반포되어 전국의 일반 부녀자에게 강습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여성교화 장려책은 중종 연간(1506~1544)에도 강력하게 계속되었다. 1517년(중종 12) 6월 홍문관에서는 [[소학 | 『소학(小學)』]], [[열녀전 | 『열녀전(烈女典)』]], [[여계 | 『여계(女戒)』]], [[여칙 | 『여칙(女則)』]]과 같은 서적을 국역하여 전국에 간행 반포하여 풍속을 바로 잡자고 전의하여, 즉시 시행하였다. 또한 1532년(중종 27) 9월에는 최세진이 [[여훈 | 『여훈(女訓)』]]을 번역하여 왕에게 바치자, 왕은 교서관에 이를 간행하도록 하였으며, 1543년(중종 38)에는 유향의 [[열녀전 | 『열녀전(烈女典)』]]에 대한 번역사업을 구체적으로 논의하였다.<ref>마송의, 「송시열의 『戒女書』를 통해 본 조선 후기 여성교육의 특징」,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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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송시열의 『계녀서(戒女書)』에 나타난 도덕적 가치덕목 분석 및 활용에 관한 연구」, 경인교육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 **이정은, 「송시열의 『계녀서(戒女書)』에 나타난 도덕적 가치덕목 분석 및 활용에 관한 연구」, 경인교육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 ||
− | **김문준, 「우암 송시열의 생애와 사상 ; 우암 송시열의 『계녀서』」, 『한국사상과 | + | **김문준, 「우암 송시열의 생애와 사상 ; 우암 송시열의 『계녀서』」, 『한국사상과 문화』23, 한국사상과문화학회, 2004. |
**정은화, 「宋時烈의 女性敎育觀 : 「戒女書」를 中心으로」, 충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5. | **정은화, 「宋時烈의 女性敎育觀 : 「戒女書」를 中心으로」, 충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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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23:18 기준 최신판
우암계녀서 | |
한자명칭 | 尤庵戒女書 |
---|---|
영문명칭 | Song Siyeal's book for his daughter |
작자 | 송시열 |
간행시기 | 17세기중반 |
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25.0×18.7㎝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책 |
표기문자 | 한글 |
목차
정의
우암 송시열이 권유에게 시집 가는 맏딸을 위하여 쓴 책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우암 송시열(1607~1689)은 서문과 발문을 통해 딸을 시집보내는 늙은 아버지의 걱정을 담아 지었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원본은 딸과 혼인하는 권유(權惟, 1625~1684)의 가문에 전했으나, 이를 베낀 것이 우암 집안에 전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딸에게 당부하는 내용은 모두 2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제목은 부모를 섬기는 도리, 남편을 섬기는 도리, 시부모를 섬기는 도리, 형제가 화목한 도리, 친척이 화목한 도리, 자식을 가르치는 도리, 제사를 받드는 도리, 손님을 접대하는 도리, 투기하지 말아야 하는 도리, 말을 조심하는 도리, 재물을 절약하는 도리, 일을 부지런히 하는 도리, 병환을 모시는 도리, 의복과 음식을 마련하는 도리, 노비를 부리는 도리, 재물을 꾸고 받는 도리, 팔고 사는 도리, 소원하는 도리, 중요한 경계, 옛사람의 착한 행실로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발문에서 제대로 교훈하지 못하고 시집보내게 된 것을 민망하게 여기며 한 달에 두세 번씩 읽고 허물없이 행동할 것을 당부하였다.[1]
『계녀서』로 대표되는 여성교훈서의 편찬
- 정부가 주도한 계녀서 편찬
조선시대는 건국초기에서부터 정부가 주도적으로 각종 여성교훈서를 간행하였고, 위정자들은 지속적으로 여성교화정책을 시행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위정자들은 여말선초의 사회혼란의 요인 중의 하나가 여성들의 풍기문란이라고 보고 이를 교화하기 위한 방도로 여성교육을 중시하였다.
대표적인 여성교훈서로 세종대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비롯하여 소혜왕후 한씨의 『내훈(內訓)』등이 편찬되었고, 1481년에 『언해속삼강행실열녀도(諺文三綱行實烈女圖)』가 간행 반포되어 전국의 일반 부녀자에게 강습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여성교화 장려책은 중종 연간(1506~1544)에도 강력하게 계속되었다. 1517년(중종 12) 6월 홍문관에서는 『소학(小學)』, 『열녀전(烈女典)』, 『여계(女戒)』, 『여칙(女則)』과 같은 서적을 국역하여 전국에 간행 반포하여 풍속을 바로 잡자고 전의하여, 즉시 시행하였다. 또한 1532년(중종 27) 9월에는 최세진이 『여훈(女訓)』을 번역하여 왕에게 바치자, 왕은 교서관에 이를 간행하도록 하였으며, 1543년(중종 38)에는 유향의 『열녀전(烈女典)』에 대한 번역사업을 구체적으로 논의하였다.[2]
- 유교적 가치를 담은 여성 교육 서적
17세기 이후 사대부를 중심으로 향촌사회가 유교사회로 재편되었다. 이에 따라 가문의식이 강조되어 자연스럽게 문중을 중심으로 한 가부장적 가족제도가 강화되었다. 유교적 가부장제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가족 성원들이 유교적 가치를 내면화하고 유교적 규범을 따르는 것이 필요하였다. 사대부 남성은 여성 교육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하였고, 여성 교육의 필요성이 강화되었으며, 여성을 위한 여성 교훈서를 간행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 사대부들이 간행한 여성교훈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송시열의 『계녀서(戒女書)』이다.
사대부들이 펴낸 여성교훈서의 전형적인 내용은 시부모 봉양(事舅姑), 남편 모시기(事君子), 친척과 화목하게 지내기(睦親戚), 제사지내기(奉祭祀), 손님 접객(接賓客), 태교, 육아, 노비 부리기(御奴婢), 떳떳한 마음기르기(恒心) 등이 있다. 송시열의 『계녀서』 내용도 이와 유사하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우암계녀서 | 송시열 |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권유 | 우암계녀서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송시열 | 권유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우암계녀서 | 속삼강행실열녀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우암계녀서 | 삼강행실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우암계녀서 | 내훈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우암계녀서 | 소학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우암계녀서 | 열녀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우암계녀서 | 여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우암계녀서 | 여칙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우암계녀서 | 여성교훈서 | A는 B에 포함된다 | A dcterms:isPartOf B |
속삼강행실열녀도 | 여성교훈서 | A는 B에 포함된다 | A dcterms:isPartOf B |
삼강행실도 | 여성교훈서 | A는 B에 포함된다 | A dcterms:isPartOf B |
내훈 | 여성교훈서 | A는 B에 포함된다 | A dcterms:isPartOf B |
소학 | 여성교훈서 | A는 B에 포함된다 | A dcterms:isPartOf B |
열녀전 | 여성교훈서 | A는 B에 포함된다 | A dcterms:isPartOf B |
여계 | 여성교훈서 | A는 B에 포함된다 | A dcterms:isPartOf B |
여칙 | 여성교훈서 | A는 B에 포함된다 | A dcterms:isPartOf B |
우암계녀서 | 국립중앙도서관 | A는 B에 소장되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
17세기 후반 | 송시열이 시집가는 딸을 위해 우암계녀서를 저술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497765 | 127.003674 | 국립중앙도서관에 우암계녀서가 소장되어 있다. |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190쪽.
- ↑ 마송의, 「송시열의 『戒女書』를 통해 본 조선 후기 여성교육의 특징」,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 ↑ 마송의, 「송시열의 『戒女書』를 통해 본 조선 후기 여성교육의 특징」,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논문
- 이정은, 「송시열의 『계녀서(戒女書)』에 나타난 도덕적 가치덕목 분석 및 활용에 관한 연구」, 경인교육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 김문준, 「우암 송시열의 생애와 사상 ; 우암 송시열의 『계녀서』」, 『한국사상과 문화』23, 한국사상과문화학회, 2004.
- 정은화, 「宋時烈의 女性敎育觀 : 「戒女書」를 中心으로」, 충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