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화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잔글 (내용)
 
15번째 줄: 15번째 줄:
  
 
=='''내용'''==
 
=='''내용'''==
주로 [[당의]]와 함께 착용하였다. 두꺼운 종이에 흑칠을 한 뒤, 가장자리에 금박(金箔)을 입히고 각종 보석으로 장식한다. 궁에서는 주로 칠보를 장식한 [[화관|칠보 화관]]을 착용하였다. 18세기 [[영조]] 때 내린 [[가체금지령]]을 통해 [[가체]]를 [[화관]]으로 대신하게 함으로써 [[화관]]이 일반화 되었다. 궁궐에서 착용하는 형태의 [[화관]]은 민간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ref>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218쪽.</ref>
+
주로 [[당의]]와 함께 착용하였다. 두꺼운 종이에 흑칠을 한 뒤, 가장자리에 금박(金箔)을 입히고 각종 보석으로 장식한다. 궁에서는 주로 칠보를 장식한 [[화관|칠보 화관]]을 착용하였다. 18세기 [[영조]] 때 내린 [[가체금지령]]을 통해 [[가체]]를 [[화관]]으로 대신하게 함으로써 [[화관]]이 일반화되었다. 궁궐에서 착용하는 형태의 [[화관]]은 민간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ref>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218쪽.</ref>
  
 
=='''지식 관계망'''==
 
=='''지식 관계망'''==

2017년 12월 17일 (일) 18:02 기준 최신판


화관
(花冠)
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대표명칭 화관
한자표기 花冠
구분 관 및 쓰개
착용신분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 외명부
착용성별 여성



정의

조선시대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 외명부 등 왕실 여성 및 상류층 부녀자들이 예복을 입을 때 갖추어 쓰는 관이다.[1]

내용

주로 당의와 함께 착용하였다. 두꺼운 종이에 흑칠을 한 뒤, 가장자리에 금박(金箔)을 입히고 각종 보석으로 장식한다. 궁에서는 주로 칠보를 장식한 칠보 화관을 착용하였다. 18세기 영조 때 내린 가체금지령을 통해 가체화관으로 대신하게 함으로써 화관이 일반화되었다. 궁궐에서 착용하는 형태의 화관은 민간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왕비 화관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왕세자빈 화관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왕세손빈 화관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화관 당의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화관 의궤 A는 B에 기록되어 있다 A ekc:mentions B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218쪽.
  2.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218쪽.
  3.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http://museum.dankook.ac.kr/) 소장.
  4.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http://museum.dankook.ac.kr/) 소장.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 高美娟, 「韓國女性의 頭飾에 관한 硏究 -朝鮮時代를 中心으로-」,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3.
  • 金奏希, 「朝鮮朝 冠帽裝飾에 관한 硏究 -女性用暖帽와 禮冠에 附着된 寶石裝飾을 中心으로-」,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9.
  • 석주선, 『冠帽와 首飾』, 단국대학교출판부,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