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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진(崔世珍)은 조선 중기의 음운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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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음운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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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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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년 8월에 봉세자별시(封世子別試)에 2등으로 급제한 후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오위장(五衛將)·상장군(上將軍)·승문원제조(承文院提調)· 등을 거쳐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능통한 중국어와 이문 실력 때문에 중국에서 사신이 올 때마다 통역을 담당하여 왕의 신임을 받았다.<ref>박태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7404 최세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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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괴산, 자는 공서(公瑞)이다. 사역원정(司譯院正) 최발(崔潑)의 아들이다. 1502년(조선 연산군 8) 8월에 봉세자별시(封世子別試)에 2등으로 급제한 후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오위장(五衛將)·상장군(上將軍)·승문원제조(承文院提調)· 등을 거쳐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능통한 중국어와 이문 실력 때문에 중국에서 사신이 올 때마다 통역을 담당하여 왕의 신임을 받았다.<ref>박태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7404 최세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1524년(중종 19) 『친영의주』와 『책빈의주』등을 한글로 풀이하였다. 1527년에는 『훈몽자회』를 완성하였는데, 여기에서 처음으로 한글의 자음·모음의 이름을 정하고, 순서와 받침 등을 정리하여 국어학 발달에 큰 업적을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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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및 저작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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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인 학문====
 
====실용적인 학문====
최세진은 의 학문은 어디까지나 실용성을 존중한 것으로 그는 응용언어학자라 하겠다. 그가 누구의 문인으로서 학문을 전수 받았는지는 문헌 기록이 없으나, [[사성통고 | 『사성통고(四聲通考)』]][[사성통해 | 『사성통해(四聲通解)』]]의 관계를 고려하여 생각할 때 책을 통하여 [[신숙주 | 신숙주(申叔舟)]]에게서 영향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ref>박태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7404 최세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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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진은 실용성을 존중한 응용언어학자라 할 수 있다. 그가 누구의 문인으로서 학문을 전수 받았는지는 문헌 기록이 없으나, 최세진이 편찬한 [[사성통해 | 『사성통해(四聲通解)』]][[사성통고 | 『사성통고(四聲通考)』]]를 증보한 것임을 고려할 때 책을 통하여 [[신숙주 | 신숙주(申叔舟)]]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ref>박태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7404 최세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저작활동====
 
====저작활동====
[[최세진]]은 40여년간에 걸쳐 저작 7종과 번역·언해 10종을 합쳐 모두 17종의 저술을 남겼다. 그 중, [[사성통해 | 『사성통해』]]는 [[홍무정운역훈 | 『홍무정운역훈』]]에서 옮겨 적은 정음, 속음 외에 당대의 시음인 금속음이 기록되어 있는 책으로, 후대 음운학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유희]]의 [[언문지 | 『언문지』]]도 사성통해의 영향을 받아 저술한 책이다. 또한 [[번역노걸대 | 『번역노걸대(飜譯老乞大)』]]·[[번역박통사 | 『번역박통사(飜譯朴通事)』]]는 중국어교과서로서 풍부한 어휘를 남겼으며 번역본은 당시 국어의 구조를 정리,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훈몽자회 | 『훈몽자회(訓蒙字會)』]]는 아동들에게 한자의 음과 뜻을 실물을 통하여 정확히 가르치기 위하여 상권·중권에 전실(全實)글자를, 하권에 잡어(雜語)라 하여 반실반허자를 실었다. 한글 실용화와 옛말연구에 있어 귀한 책이다. 번역서인 『[[여훈]]』은 국왕이 교서관에 직접 간행을 명하여 조선의 주요한 여성교훈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ref>박태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7404 최세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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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진]]은 40여년간에 걸쳐 저작 7종과 번역·언해 10종을 합쳐 모두 17종의 저술을 남겼다. 그 중 [[홍무정운역훈 | 『홍무정운역훈』]]에서 옮겨 적은 정음, 속음 외에 당대의 시음인 금속음을 기록한 『사성통해』는 후대 음운학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200년 후에 나온 [[유희]]의 [[언문지 | 『언문지』]]도 사성통해의 영향을 받아 저술한 책이다. 또한 [[번역노걸대 | 『번역노걸대(飜譯老乞大)』]]·[[번역박통사 | 『번역박통사(飜譯朴通事)』]]는 중국어교과서로서 풍부한 어휘를 남겼으며 한글번역본은 당시 국어의 구조를 정리,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훈몽자회 | 『훈몽자회(訓蒙字會)』]]는 아동들에게 한자의 음과 뜻을 실물을 통하여 정확히 가르치기 위하여 상권·중권에 전실(全實)글자를, 하권에 잡어(雜語)라 하여 반실반허자를 실었다. 이 또한 한글 실용화와 옛말연구에 있어 귀한 책이다. 번역서인 『[[여훈]]』은 국왕이 교서관에 직접 간행을 명하여 조선의 주요한 여성교훈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ref>박태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7404 최세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지식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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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한글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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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5일 (토) 00:51 기준 최신판

최세진(崔世珍)
한글팀 일러 조선중년문관.png
대표명칭 최세진
한자표기 崔世珍
본관 괴산(槐山)
공서(公瑞)
출생지 1473
사망지 1542
시대 조선
국적 조선
대표저서 훈몽자회, 사성통해
최발(崔潑)


정의

조선 중기의 음운학자이다.

내용

생애

본관은 괴산, 자는 공서(公瑞)이다. 사역원정(司譯院正) 최발(崔潑)의 아들이다. 1502년(조선 연산군 8) 8월에 봉세자별시(封世子別試)에 2등으로 급제한 후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오위장(五衛將)·상장군(上將軍)·승문원제조(承文院提調)· 등을 거쳐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능통한 중국어와 이문 실력 때문에 중국에서 사신이 올 때마다 통역을 담당하여 왕의 신임을 받았다.[1] 1524년(중종 19) 『친영의주』와 『책빈의주』등을 한글로 풀이하였다. 1527년에는 『훈몽자회』를 완성하였는데, 여기에서 처음으로 한글의 자음·모음의 이름을 정하고, 순서와 받침 등을 정리하여 국어학 발달에 큰 업적을 이룩하였다.

학문 및 저작활동

실용적인 학문

최세진은 실용성을 존중한 응용언어학자라 할 수 있다. 그가 누구의 문인으로서 학문을 전수 받았는지는 문헌 기록이 없으나, 최세진이 편찬한 『사성통해(四聲通解)』 『사성통고(四聲通考)』를 증보한 것임을 고려할 때 책을 통하여 신숙주(申叔舟)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2]

저작활동

최세진은 40여년간에 걸쳐 저작 7종과 번역·언해 10종을 합쳐 모두 17종의 저술을 남겼다. 그 중 『홍무정운역훈』에서 옮겨 적은 정음, 속음 외에 당대의 시음인 금속음을 기록한 『사성통해』는 후대 음운학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200년 후에 나온 유희 『언문지』도 사성통해의 영향을 받아 저술한 책이다. 또한 『번역노걸대(飜譯老乞大)』· 『번역박통사(飜譯朴通事)』는 중국어교과서로서 풍부한 어휘를 남겼으며 한글번역본은 당시 국어의 구조를 정리,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훈몽자회(訓蒙字會)』는 아동들에게 한자의 음과 뜻을 실물을 통하여 정확히 가르치기 위하여 상권·중권에 전실(全實)글자를, 하권에 잡어(雜語)라 하여 반실반허자를 실었다. 이 또한 한글 실용화와 옛말연구에 있어 귀한 책이다. 번역서인 『여훈』은 국왕이 교서관에 직접 간행을 명하여 조선의 주요한 여성교훈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3]

지식 관계망

  • 훈몽자회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사성통고 신숙주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사성통고 사성통해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사성통해 홍무정운역훈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사성통해 언문지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언문지 유희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번역노걸대 최세진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사성통해 최세진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번역박통사 최세진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훈몽자회 최세진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여훈 최세진 A는 B에 의해 번역되었다 A ekc:translator B

주석

  1. 박태권, "최세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박태권, "최세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박태권, "최세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