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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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정원용(1783~1873)의 동다리와 전복.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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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문화재청, 「문화재대관-복식․자수편」, 문화재청, 2006, 135쪽.
|이칭별칭= 협수(狹袖), 夾袖, 동달이, 彤多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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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동다리
|착용시대= 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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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용신분= 왕실, 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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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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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무관의 복식 중 [[군복(軍服)]] 구성요소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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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 [[왕세자]], [[왕세손]]과 [[백관]]이 행행(幸行)이나 외국에 사신으로 파견되거나 국난을 당하였을 때 착용하였던, 조선후기 [[백관의 군복]]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이다.<ref>권오선, 「조선후기 동다리에 관한 연구」,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22쪽.</ref>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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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조선전기 [[융복(戎服)]]에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군복의 소매를 좁게한 간편한 복식이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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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백관의 군복]]간편한 복장이 필요하게 되어 좁은 소매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었다.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갑옷]]이나 [[백관의 융복]] 이외에 간편한 [[백관의 군복]]인 [[협수|협수(夾袖)]]와 [[전복|전복(戰服)]] 또는 [[쾌자|쾌자(快子)]]라는 양식의 복식이 등장한다.<ref>박성실, 김향미, 「조선시대 기능적 馬上衣類의 실증적 고찰」, 『韓國服飾』 20호,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55쪽.</ref> [[협수]]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문효세자|문효세자(文孝世子, 1782~1786)]]의 염습의(斂襲衣) 중에 포함되었다.
*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좁은 소매에 대한 논의가 거듭되면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갑옷이나 융복 이외에 간편한 복장의 군복이 요구되어 [[협수(狹袖)]]와 [[전복(戰服)]] 또는 [[쾌자(快子)]]라는 양식의 복식이 등장.<ref>박성실, 김향미(2002) 조선시대 기능적 馬上衣類의 실증적 고찰. 韓國服飾 20호,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p. 55.</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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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협수의 겉감은 연두색 화단(花緞)에 수구는 대홍색 운문단이며 안은 진홍색 광직(廣織)이다.(夾袖, 表連頭色花緞袖口大紅雲紋緞, 內眞紅廣織.)
* 동다리형 협수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문효세자]](文孝世子, 1782~1786)의 염습의(斂襲衣) 중에 포함: "협수의 겉감은 연두색 화단(花緞)에 수구는 대홍색 운문단이며 안은 진홍색 광직(廣織)이다."<ref><文孝世子殯宮魂宮都監儀軌> “夾袖, 表連頭色花緞袖口大紅雲紋緞, 內眞紅廣織.</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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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文孝世子殯宮魂宮都監儀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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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깃이 달리고 소매 전체 또는 소매의 일부가 붉은색의 옷감으로 장식되었다. 안은 청색계열 이며, 양옆에는 무가 달려있다. 무 양옆과 뒷중심선이 트여 활동성을 강조 하였다. 또한 붉은 소매부분은 화려함과 더불어 위엄과 용맹을 나타내고, 좁은 소매와 트임으로 활동적인 움직임을 고려하였다. [[동다리]] 위에 [[전복|전복(戰服)]]을 더하고 [[광대|광대(廣帶)]]와 [[전대|전대(戰帶)]]를 매며, [[전대]]에 [[병부]]를 차기도 한다. [[전립|전립(戰笠)]]을 쓰고 등에 통개(筒箇)와 화살, 환도(還刀)를 찬 후 [[목화|목화(木靴)]]를 신어 [[백관의 군복]]의 일습(一襲)을 갖춘다.<ref>권오선, 「조선후기 동다리에 관한 연구」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18~22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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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용신분과 착용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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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관계망'''==
* 왕․문무백관들이 모두 몸을 가볍고 편하게 하기 위하여 입었던 복장으로 행행(幸行)이나 호위복, 외국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을 때와 국난을 당하였을 때 입었던 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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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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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철종 어진.jpg|철종 어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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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 || 동다리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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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음이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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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세자]] || 동다리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협수(夾袖), 동다리는 <궁중발기>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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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관]] ||  동다리 || A는 B를 착용한다 ||  A ekc:wears B
===기본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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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다리의 형태는 직령의 깃이 달리고 소매 전체 또는 소매의 일부가 붉은색의 옷감으로 장식하고 안은 청색계열로 받침. 양옆에는 무가 달려있으며, 무 양옆과 뒷중심선이 트여 활동성을 강조. 붉은 소매부분은 화려함과 더불어 위엄과 용맹을 나타내고, 좁은 소매와 트임으로 활동적이게 함.<ref>권오선(2002) 조선후기 동다리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단국대학교. p. 22.</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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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 군복]] ||  동다리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동다리 위에 전복(戰服)을 더하고 [[광대(廣大)]]와 [[전대(戰帶)]]를 매며, 전대에 병부를 차기도 함. [[전립(戰笠)]]을 쓰고 등에 통개(筒箇)와 화살, 환도(還刀)를 찬 후 [[목화(木靴)]]를 신어 군복의 일습 갖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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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병기(1818~1875) 동다리.jpg|김병기(1818~1875) 동다리.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문화재대관-복식․자수편> p. 135.
 
파일:김병기(1818~1875) 전복.JPG|김병기(1818~1875) 전복.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문화재대관-복식․자수편> p. 135.
 
파일:정원용(1783~1873)의 동다리와 전복.JPG|정원용(1783~1873)의 동다리와 전복.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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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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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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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복식구성,김병기동다리고려대.jpg|김병기(1818~1875) 동다리<ref>문화재청, 「문화재대관-복식․자수편」, 문화재청, 2006, 135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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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궁중기록화 복식 동다리01 민속박물관.jpg | 조선시대 동다리.<ref>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소장.</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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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원용(1783~1873)의 동다리와 전복.JPG | 정원용(1783~1873)의 동다리와 전복.<ref>문화재청, 문화재대관-복식․자수편, 문화재청, 2006, 140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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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철종 어진.jpg|철종 왕의 군복 착용 어진.<ref>국립고궁박물관(http://www.gogung.go.kr/) 소장.</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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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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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references/>
 
<references/>
  
[[분류:궁중기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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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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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및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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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선, 「조선후기 동다리에 관한 연구」,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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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正子, 「韓國軍服의 變遷硏究」, 『대한가정학회지』 제24권 4호, 대한가정학회, 1986.
 +
* 金賢舜, 「軍服에 對한 硏究 -具軍服을 中心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0.
 +
* 문광희, 「조선 후기 甲胄 및 具軍服에 관한 연구-부산 忠烈祠 소장 유물을 중심으로-」, 『한복문화』 제7권 1호, 한복문화학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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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가영, 「조선시대의 갑주」,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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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실, 김향미, 「조선시대 기능적 馬上衣類의 실증적 고찰」, 『韓國服飾』 20호,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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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成熙, 「軍服飾의 記號學的 分析-舊韓末 期陸軍服을 中心으로-」, 상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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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궁중기록화]] [[분류:복식]]

2017년 11월 19일 (일) 12:37 기준 최신판


동다리
(同多里)
문화재청, 「문화재대관-복식․자수편」, 문화재청, 2006, 135쪽.
대표명칭 동다리
한자표기 同多里
이칭별칭 동다리(彤多里), 동달이, 협수(狹袖), 협수(夾袖)
구분 의복
착용신분 왕실, 무관
착용성별 남성



정의

조선시대 , 왕세자, 왕세손백관이 행행(幸行)이나 외국에 사신으로 파견되거나 국난을 당하였을 때 착용하였던, 조선후기 백관의 군복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이다.[1]

내용

조선 전기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겪으며 백관의 군복에 간편한 복장이 필요하게 되어 좁은 소매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었다.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갑옷이나 백관의 융복 이외에 간편한 백관의 군복협수(夾袖)전복(戰服) 또는 쾌자(快子)라는 양식의 복식이 등장한다.[2] 협수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문효세자(文孝世子, 1782~1786)의 염습의(斂襲衣) 중에 포함되었다.

Quote-left.png 협수의 겉감은 연두색 화단(花緞)에 수구는 대홍색 운문단이며 안은 진홍색 광직(廣織)이다.(夾袖, 表連頭色花緞袖口大紅雲紋緞, 內眞紅廣織.) Quote-right.png
출처: 『文孝世子殯宮魂宮都監儀軌』


곧은 깃이 달리고 소매 전체 또는 소매의 일부가 붉은색의 옷감으로 장식되었다. 안은 청색계열 이며, 양옆에는 무가 달려있다. 무 양옆과 뒷중심선이 트여 활동성을 강조 하였다. 또한 붉은 소매부분은 화려함과 더불어 위엄과 용맹을 나타내고, 좁은 소매와 트임으로 활동적인 움직임을 고려하였다. 동다리 위에 전복(戰服)을 더하고 광대(廣帶)전대(戰帶)를 매며, 전대병부를 차기도 한다. 전립(戰笠)을 쓰고 등에 통개(筒箇)와 화살, 환도(還刀)를 찬 후 목화(木靴)를 신어 백관의 군복의 일습(一襲)을 갖춘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동다리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왕세자 동다리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백관 동다리 A는 B를 착용한다 A ekc:wears B
왕의 군복 동다리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왕세자의 군복 동다리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백관의 군복 동다리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백관의 공복 동다리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동다리 전복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동다리 전립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권오선, 「조선후기 동다리에 관한 연구」,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22쪽.
  2. 박성실, 김향미, 「조선시대 기능적 馬上衣類의 실증적 고찰」, 『韓國服飾』 20호,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55쪽.
  3. 권오선, 「조선후기 동다리에 관한 연구」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18~22쪽.
  4. 문화재청, 「문화재대관-복식․자수편」, 문화재청, 2006, 135쪽.
  5. 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소장.
  6. 문화재청, 문화재대관-복식․자수편, 문화재청, 2006, 140쪽.
  7. 국립고궁박물관(http://www.gogung.go.kr/) 소장.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권오선, 「조선후기 동다리에 관한 연구」,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 金正子, 「韓國軍服의 變遷硏究」, 『대한가정학회지』 제24권 4호, 대한가정학회, 1986.
  • 金賢舜, 「軍服에 對한 硏究 -具軍服을 中心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0.
  • 문광희, 「조선 후기 甲胄 및 具軍服에 관한 연구-부산 忠烈祠 소장 유물을 중심으로-」, 『한복문화』 제7권 1호, 한복문화학회, 2004.
  • 박가영, 「조선시대의 갑주」,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 박성실, 김향미, 「조선시대 기능적 馬上衣類의 실증적 고찰」, 『韓國服飾』 20호,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2.
  • 李成熙, 「軍服飾의 記號學的 分析-舊韓末 期陸軍服을 中心으로-」, 상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