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신기화차"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중신기화차의 활용과 한계) |
|||
(사용자 2명의 중간 판 15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물품정보 | {{물품정보 | ||
|사진=한글팀 신기전 03 중신기전.JPG | |사진=한글팀 신기전 03 중신기전.JPG | ||
− | |사진출처=채연석,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2719 신기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 + | |사진출처=채연석,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2719 신기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
|대표명칭=중신기 화차 | |대표명칭=중신기 화차 | ||
|한자표기=中神機 火車 | |한자표기=中神機 火車 | ||
12번째 줄: | 12번째 줄: | ||
|관련단체= | |관련단체= | ||
|관련장소= | |관련장소= | ||
− | |관련물품= | + | |관련물품= [[신기전]] |
− | |관련유물유적= | + | |관련유물유적= [[화포식언해]] |
}} | }} | ||
<!-- | <!-- | ||
52번째 줄: | 52번째 줄: | ||
--> | --> | ||
=='''정의'''== | =='''정의'''== | ||
− | [[화차]] 위에 [[신기전|중신기전(中神機箭)]]을 설치한 | + | [[화차]] 위에 [[신기전|중신기전(中神機箭)]]을 설치한 중화기이다. |
+ | |||
=='''내용'''== | =='''내용'''== | ||
− | ===[[ | + | ===[[중신기화차]]의 구조=== |
− | 문종시기(1450-1452)에 개발된 [[화차]]는 수레 자체에 작은 기둥을 세우고 그 밑에 바퀴를 부착시켰다. 이 역할은 | + | 문종시기(1450-1452)에 개발된 [[화차]]는 수레 자체에 작은 기둥을 세우고 그 밑에 바퀴를 부착시켰다. 이 역할은 발사각을 최대 43도까지 조정하여 발사체의 사거리를 조절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화차]]위에는 여러가지 발사체를 설치하거나 해체가 가능하였다. 만약 [[신기전]]이 발사체인 경우 [[화차]] 위에 [[신기전|중신기전]]과 [[신기전|소신기전]]만 [[화차]] 위에 설치가 가능하였다. [[신기전|중신기전]]과 [[신기전|소신기전]]은 크기가 작기 때문에 [[신기전|중신기전]]은 40발 [[신기전|소신기전]]은 100발을 동시에 쏠 수 있게 설치하였다. <ref>蔡連錫, 「走火와 神機箭의 硏究」, 『역사학보』70, 역사학회, 1976, 16-36쪽.</ref> |
− | <ref>蔡連錫, 「走火와 神機箭의 硏究」, | ||
− | ===[[ | + | ===[[중신기화차]]의 활용과 한계=== |
− | [[신기전]] 설치 | + | [[신기전]] 설치 하는 [[화차]]는 조선 중기 이후로 점점 사라졌다. 반면 [[총통|총통(銃筒)]]을 설치한 형태의 [[화차]]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점차 늘었다. 그 이유는 [[신기전]] 자체가 화약이 너무 많이 소비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세시기 로켓형 무기는 날아가는 동안 바람이나 추진분사 기술 수준이 미흡하기 때문에, 명중률이 매우 낮다는 고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사실 [[신기전|대신기전]]은 조선 초기에만 사용되었고, [[신기전|중신기전]]과 [[신기전|소신기전]]은 발사 수량을 늘려서 명중률을 높혔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조선 중기 이후에는 발사체를 소형 [[총통]]류로 바뀌게 되는데, [[총통]]을 사용할 경우 한 [[총통]]에 15발 정도의 소형 철환을 장전할 수 있어, 엄청난 수량의 탄막 공격이 가능하다. 효율성이 높기 때문에 점차 대체되어 [[중신기 화차]]를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된 것이다. |
− | <ref>8蔡連錫, 「走火와 神機箭의 硏究」, | + | <ref>8蔡連錫, 「走火와 神機箭의 硏究」, 『역사학보』70, 역사학회, 1976, 83-88쪽.</ref> |
=='''지식 관계망'''== | =='''지식 관계망'''== | ||
+ | *'''화포식언해 지식 관계망''' | ||
+ | <html> | ||
+ | <scrip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script> | ||
+ | <input type="button" value="Graph" onclick="reload();"> | ||
+ | <iframe width="100%" height="670px" src="http://dh.aks.ac.kr/Encyves/Graph/A042/A042.htm"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
+ | </html> | ||
===관계정보=== | ===관계정보=== | ||
− | {|class="wikitable sortable" | +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background:white; width:100%; text-align:center;" |
!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 | |- | ||
− | |[[화차]]||[[ | + | |[[화차]]||[[중신기화차]]||A는 B를 포함한다||A dcterms:hasPart B |
|- | |- | ||
|[[신기전]]||[[대신기전]]||A는 B를 포함한다||A dcterms:hasPart B | |[[신기전]]||[[대신기전]]||A는 B를 포함한다||A dcterms:hasPart B | ||
75번째 줄: | 81번째 줄: | ||
|[[신기전]]||[[소신기전]]||A는 B를 포함한다||A dcterms:hasPart B | |[[신기전]]||[[소신기전]]||A는 B를 포함한다||A dcterms:hasPart B | ||
|- | |- | ||
− | |[[ | + | |[[중신기화차]]||[[신기전]]||A는 B와 관련이 있다||A edm:isRelatedTo B |
− | |||
− | |||
|- | |- | ||
|[[신기전]]||[[화차]]||A는 B와 관련이 있다||A edm:isRelatedTo B | |[[신기전]]||[[화차]]||A는 B와 관련이 있다||A edm:isRelatedTo B | ||
90번째 줄: | 94번째 줄: | ||
|15세기||[[중신기 화차]]가 제작되었다 | |15세기||[[중신기 화차]]가 제작되었다 | ||
|} | |} | ||
+ | |||
=='''시각자료'''== | =='''시각자료'''== | ||
===갤러리=== | ===갤러리=== | ||
103번째 줄: | 108번째 줄: | ||
===더 읽을 거리=== | ===더 읽을 거리=== | ||
*논문 | *논문 | ||
− | **蔡連錫, 「走火와 神機箭의 硏究」, | + | **蔡連錫, 「走火와 神機箭의 硏究」, 『역사학보』70, 역사학회, 1976, 15-88. |
− | **오경후, 「화차(火車)의 제조(製造)와 임란(壬亂) 정세(情勢)의 변화(變化)」, | + | **오경후, 「화차(火車)의 제조(製造)와 임란(壬亂) 정세(情勢)의 변화(變化)」, 『孔子學』21, 한국공자학회, 2011, 107-132쪽. |
− | + | *웹자원 | |
− | *채연석,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3467 주화],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 + | **채연석,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3467 주화]",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5년 1월 29일. |
− | *채연석,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2719 신기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 + | **채연석,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2719 신기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
[[분류:한글고문서]] | [[분류:한글고문서]] | ||
[[분류:물품]] | [[분류:물품]] | ||
− |
2017년 11월 25일 (토) 04:30 기준 최신판
중신기 화차(中神機 火車) | |
대표명칭 | 중신기 화차 |
---|---|
한자표기 | 中神機 火車 |
유형 | 물품 |
시대 | 조선시대 |
용도 | 무기 |
관련물품 | 신기전 |
관련유물유적 | 화포식언해 |
목차
정의
화차 위에 중신기전(中神機箭)을 설치한 중화기이다.
내용
중신기화차의 구조
문종시기(1450-1452)에 개발된 화차는 수레 자체에 작은 기둥을 세우고 그 밑에 바퀴를 부착시켰다. 이 역할은 발사각을 최대 43도까지 조정하여 발사체의 사거리를 조절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화차위에는 여러가지 발사체를 설치하거나 해체가 가능하였다. 만약 신기전이 발사체인 경우 화차 위에 중신기전과 소신기전만 화차 위에 설치가 가능하였다. 중신기전과 소신기전은 크기가 작기 때문에 중신기전은 40발 소신기전은 100발을 동시에 쏠 수 있게 설치하였다. [1]
중신기화차의 활용과 한계
신기전 설치 하는 화차는 조선 중기 이후로 점점 사라졌다. 반면 총통(銃筒)을 설치한 형태의 화차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점차 늘었다. 그 이유는 신기전 자체가 화약이 너무 많이 소비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세시기 로켓형 무기는 날아가는 동안 바람이나 추진분사 기술 수준이 미흡하기 때문에, 명중률이 매우 낮다는 고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사실 대신기전은 조선 초기에만 사용되었고, 중신기전과 소신기전은 발사 수량을 늘려서 명중률을 높혔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조선 중기 이후에는 발사체를 소형 총통류로 바뀌게 되는데, 총통을 사용할 경우 한 총통에 15발 정도의 소형 철환을 장전할 수 있어, 엄청난 수량의 탄막 공격이 가능하다. 효율성이 높기 때문에 점차 대체되어 중신기 화차를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된 것이다. [2]
지식 관계망
- 화포식언해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화차 | 중신기화차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신기전 | 대신기전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신기전 | 중신기전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신기전 | 소신기전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중신기화차 | 신기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신기전 | 화차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총통 | 화차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5세기 | 중신기 화차가 제작되었다 |
시각자료
갤러리
중신기전 발사체인 중신기 화차 발사모습
주석
- ↑ 蔡連錫, 「走火와 神機箭의 硏究」, 『역사학보』70, 역사학회, 1976, 16-36쪽.
- ↑ 8蔡連錫, 「走火와 神機箭의 硏究」, 『역사학보』70, 역사학회, 1976, 83-88쪽.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논문
- 蔡連錫, 「走火와 神機箭의 硏究」, 『역사학보』70, 역사학회, 1976, 15-88.
- 오경후, 「화차(火車)의 제조(製造)와 임란(壬亂) 정세(情勢)의 변화(變化)」, 『孔子學』21, 한국공자학회, 2011, 107-1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