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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성형, 「白沙 李恒福의 「朝天錄」 硏究」, 『한자한문교육』17권0호,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2006. | ||
+ | *웹자원 | ||
+ | ** 緣田, "[http://blog.daum.net/lrrock5050/330 조천록 상(上) 기문(記聞)]", <html><online style="color:purple">『Daum 블로그 - 경주(慶州 月城)이씨』<sup>online</sup></online></html>, 작성일: 2010년 09월 21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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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4일 (일) 23:26 기준 최신판
조천록(朝天錄) | |
대표명칭 | 조천록 |
---|---|
한자표기 | 朝天錄 |
저자 | 이항복(李恒福) |
간행시기 | 1629년 |
시대 | 조선시대 |
정의
이항복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올 때의 기록을 엮은 책이다.
내용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 1556-1618)이 1598년(선조 31)에 정응태의 무고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사신으로 파견되어 명(明)에 다녀오면서, 사행(使行)의 여정에서 지었던 한시 및 동행들과 수창(酬唱)한 한시 등을 모아서 기록한 것이다.[1]
이와 같은 사행록(使行錄)은 공적인 사신의 임무를 수반한 여행기록이기 때문에, 일반 기행문과는 그 성격이 다른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사신을 선발할 때 뛰어난 문사가 사신의 일행으로 포함되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관례였다. 공자(孔子)도 이를 언급할 정도로 사신의 문학적 소양은 외교에서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되었으며, 작품의 수준은 그 국가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하였다. 사행록은 뒤에 사신으로 선발될 사람에게는 사행의 지침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2]
이 기록은 날짜별로 정리가 되어 있으며, 6개월 정도의 중국 사행기록이 실려 있다. 주로 보고 들은 것을 서술하였으며, 필요에 따라 일기(日記)의 형식으로 적었고, 시(詩)로 대신한 부분도 있다.[3]
『조천록』은 1629년 간행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며, 이항복의 문집인 『백사집(白沙集)』 별집 제5-6권에 실려 있다.[4]
지식관계망
- 이항복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조천록 | 이항복 | A는 B가 저술하였다 | A dcterms:creator B |
조천록 | 정응태 무고사건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백사집 | 조천록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주석
- ↑ 이성형, 「白沙 李恒福의 「朝天錄」 硏究」, 『한자한문교육』17권0호,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2006.
- ↑ 이성형, 「白沙 李恒福의 「朝天錄」 硏究」, 『한자한문교육』17권0호,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2006.
- ↑ 緣田, "조천록 상(上) 기문(記聞)",
『Daum 블로그 - 경주(慶州 月城)이씨』online , 작성일: 2010년 09월 21일. - ↑ 緣田, "조천록 상(上) 기문(記聞)",
『Daum 블로그 - 경주(慶州 月城)이씨』online , 작성일: 2010년 09월 21일.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논문
- 이성형, 「白沙 李恒福의 「朝天錄」 硏究」, 『한자한문교육』17권0호,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2006.
- 웹자원
- 緣田, "조천록 상(上) 기문(記聞)",
『Daum 블로그 - 경주(慶州 月城)이씨』online , 작성일: 2010년 09월 21일.
- 緣田, "조천록 상(上) 기문(記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