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립"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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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혜주, 「조선시대 중인 복식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 송혜주, 「조선시대 중인 복식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
*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 | *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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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7일 (일) 17:26 기준 최신판
초립 (草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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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초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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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草笠 |
착용신분 | 어마(御馬) 등 하급 관리 |
착용성별 | 남성 |
정의
누런 빛의 풀을 엮어 만든 갓[笠]의 하나로, 장년과 구별하기 위해 관례를 올린 소년들에게 착용하게 하였다.[1]
내용
재료나 만드는 방법으로 보아 패랭이에서 갓으로 이행하는 중간단계의 것으로 보거나, 삿갓, 방갓, 패랭이로부터 후대의 흑립으로 옮겨가는 발전상의 단계로 보기도 한다. 초립은 대나무를 사용하여 대우와 양태를 따로따로 만든 다음 붙이기 때문에 대우의 꼭대기를 평평한 형태로 만들 수 있다. 신분이 낮은 사람이 쓰는 갓으로 알려졌으나 조선 초기에는 사대부와 상민이 함께 착용하였다. 신분의 구분을 두기 위해 양반은 진초립(眞草笠)이라 하여 대나무의 수를 날수는 30죽, 씨수는 14죽 이하로 만들었고, 양인이나 천인은 상초립(常草笠)을 착용하여 대나무의 날수는 15죽 이하, 씨수는 7죽 이하로 만들었다. 그 후 『경국대전』에서 날수를 제한하여 양반의 초립은 섬세한 50죽, 상민은 성근 30죽으로 구별하였고, 『대전속록』에는 50죽은 관직자만 착용하고, 사족은 30죽, 서인은 20죽으로 구분하였다. 조선중기 이후 관례(冠禮)를 한 소년이 착용하였으며, 흑립이 유행하면서 군복이나 견마부(牽馬夫), 별감의 상복(常服)에 착용하던 관모였으며 조선후기로 가면서 초립은 낮은 신분에서 쓰는 대표적인 쓰개가 되었다. 조선초기에는 상하 구분없이 착용하다가 흑립이 유행하면서 초립은 별감이나 하급관원이 쓰던 관모로 국말까지 내려왔다.[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어마(御馬) | 초립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초립 | 황의 |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 A ekc:goesWith B |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 ↑ 임원경제연구소, 『섬용지2』, 풍석문화재단, 2016, 34쪽.
- ↑ 송혜주, 「조선시대 중인 복식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57~58쪽.
- ↑ 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소장.
- ↑ 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소장.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송혜주, 「조선시대 중인 복식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