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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乘 積粟萬鍾 累茵而坐 列鼎而食 乃歎曰 雖欲食藜藿之食 爲親負米 不可得也 孔子聞之曰 由也 | 百乘 積粟萬鍾 累茵而坐 列鼎而食 乃歎曰 雖欲食藜藿之食 爲親負米 不可得也 孔子聞之曰 由也 | ||
可謂生事盡力 死事盡思者也</span> | 可謂生事盡力 死事盡思者也</sp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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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석문2=중유의 자는 자로이니 공자의 제자이다. 어버이 섬김을 지극히 효성으로 하였는데, 집이 가난하여 | + | |해석문2=중유의 자는 자로이니 공자의 제자이다. 어버이 섬김을 지극히 효성으로 하였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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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해석문6=“비록 나물을 먹으며 어버이를 위하여 쌀을 지려하나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데, | |
− | + | |해석문7=공자가 들으시고 말하시기를 | |
+ | |해석문8=“자로는 ‘살아서 섬김에 힘을 다하고 죽은 후 섬김에 사모함을 다한다.’ | ||
+ | |해석문9=라고 이를 이이로다.” 하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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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9일 (월) 18:08 기준 최신판
본 기사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2016년에 개최한 특별전 '한글, 소통과 배려의 문자(2016.6.29~12.31)'의 도록 및 2016~2017년에 진행한 금요강독회 중 자로부미 관련 '발표내용'을 참고 활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원문 중 옛 한글의 경우 웹브라우저 및 시스템의 문자세트(character set) 표현상 한계로 인해 표시가 불완전할 수 있으며, 각 내용상의 사소한 교정은 별도의 언급 없이 적용하였습니다. |
원문과 해석문
원문 | 해석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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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路負米 列國 魯
仲由字子路 孔子弟子 事親至孝 家貧 食藜藿[1]之食 爲親負米於百里之外 親歿之後 南遊於楚 從車 百乘 積粟萬鍾 累茵而坐 列鼎而食 乃歎曰 雖欲食藜藿之食 爲親負米 不可得也 孔子聞之曰 由也 可謂生事盡力 死事盡思者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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즁유의 자 뢰니 공 뎨라 어버이 셤기믈 지효로 | 중유의 자는 자로이니 공자의 제자이다. 어버이 섬김을 지극히 효성으로 하였는데, |
집이 가난야 나믈음식을 먹으며 어버이를 위여 니 밧긔 을 져오더니 | 집이 가난하여 나물음식을 먹으며 어버이를 위하여 백리 밖에서 쌀을 져오더니, |
어벼이 죽은 후의 남으로 초나라 놀 조 술위 일이고 만죵 곡식을 흐며 | 어버이 죽은 후에 남으로 초나라에 노닐 때에 좆는 수레가 일백이고 만종 곡식을 쌓으며, |
자리 겹으로 안즈며 솟츨 버러 먹을 이에 탄식여 오 | 자리를 겹으로 앉으며 솥을 벌여 먹을 때 이에 탄식하여 말하기를 |
비록 믈을 먹으며 어버이 위여 을 지랴나 가히 엇디 못리로다 | “비록 나물을 먹으며 어버이를 위하여 쌀을 지려하나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데, |
공 드시고 오사 | 공자가 들으시고 말하시기를 |
로 가히 닐오 살아셔 셤기 힘을 다고 죽은 후 셤기 모믈 다다 | “자로는 ‘살아서 섬김에 힘을 다하고 죽은 후 섬김에 사모함을 다한다.’ |
니라리로다 | 라고 이를 이이로다.” 하셨다. |
주석
- ↑ 藜藿 : 여곽. 명아주 잎과 콩잎이라는 뜻으로, 아주 변변치 못한 음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