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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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대 임무는 ‘[[왕세자]]의 생산’으로 | + | 최대 임무는 ‘[[왕세자]]의 생산’으로 적통(嫡統)을 출산하지 않으면 왕실과 조정이 내분과 갈등에 휩싸일 수 있으며, 폐비의 고통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ref>임민혁, 『조선국왕 장가 보내기』, 글항아리, 2017, 14쪽.</ref> [[왕세자]]를 출산한 [[왕비]]는 왕실의 외척 가문으로 권력의 한 축을 형성하며 정치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의 왕 27명 중에서 적장자를 [[왕세자]]로 삼은 경우는 불과 7명뿐이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442272&cid=51704&categoryId=51713#api조선의 왕비]", 동영상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네이버.</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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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중웅, 『조선 왕비 열전』, 선영사, 2015. | * 임중웅, 『조선 왕비 열전』, 선영사, 2015. | ||
* 홍미숙, 『조선이 버린 왕비들』, 문예춘추사, 2016. | * 홍미숙, 『조선이 버린 왕비들』, 문예춘추사, 20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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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4일 (토) 11:07 기준 최신판
왕비 (王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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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왕비 |
---|---|
한자표기 | 王妃 |
이칭 | 국모(國母) |
정의
조선시대 왕의 아내이자 나라의 어머니로, 조선시대 여성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이다.[1]
내용
지위와 활동
왕비는 백관의 딸로, 간택의 과정을 통해 선발된다. 조선전기에는 왕과 왕비가 동급이었지만, 16세기 이후부터 남녀차별이 심해지면서 국가행사에 나서지 않았다. 가을에 양로연과 40번이 넘는 국가제사와 잔치를 준비했다.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내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례를 행하기도 했다.[2]
임무
최대 임무는 ‘왕세자의 생산’으로 적통(嫡統)을 출산하지 않으면 왕실과 조정이 내분과 갈등에 휩싸일 수 있으며, 폐비의 고통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3] 왕세자를 출산한 왕비는 왕실의 외척 가문으로 권력의 한 축을 형성하며 정치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의 왕 27명 중에서 적장자를 왕세자로 삼은 경우는 불과 7명뿐이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장렬왕후 | 왕비 | A는 B에 해당한다 | A dcterms:type B |
명성왕후 | 왕비 | A는 B에 해당한다 | A dcterms:type B |
인현왕후 | 왕비 | A는 B에 해당한다 | A dcterms:type B |
선의왕후 | 왕비 | A는 B에 해당한다 | A dcterms:type B |
정순왕후 | 왕비 | A는 B에 해당한다 | A dcterms:type B |
효의왕후 | 왕비 | A는 B에 해당한다 | A dcterms:type B |
철인왕후 | 왕비 | A는 B에 해당한다 | A dcterms:type B |
순원왕후 | 왕비 | A는 B에 해당한다 | A dcterms:type B |
왕 | 왕비 | A는 B의 남편이다 | A ekc:hasWife B |
왕비 | 왕비의 대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비 | 왕비의 소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비 | 왕비의 편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주석
- ↑ 임민혁, 『조선국왕 장가 보내기』, 글항아리, 2017, 14쪽.
- ↑ 조선의 왕비", 동영상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네이버. - ↑ 임민혁, 『조선국왕 장가 보내기』, 글항아리, 2017, 14쪽.
- ↑ 왕비", 동영상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네이버.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신명호, 『조선왕비실록(숨겨진 절반의 역사)』, 역사의 아침, 2007.
- 신명호, 『조선의 왕비로 살아가기(조선 왕실의 일상, 2)』, 돌베개, 2012.
- 임민혁, 『조선국왕 장가 보내기』, 글항아리, 2017.
- 임중웅, 『조선 왕비 열전』, 선영사, 2015.
- 홍미숙, 『조선이 버린 왕비들』, 문예춘추사,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