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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의==
[[허준]]『[[동의보감|동의보감東醫寶鑑]]』의 「[[내경편|내경편內景篇]]」언해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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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이 쓴 『[[동의보감|동의보감東醫寶鑑]]』의 「[[내경편|내경편內景篇]]」을 언해하여 필사한 책이다.
  
 
==내용==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허준]]이 편찬한 『[[동의보감|동의보감(東醫寶鑑)]]』의 「[[동의보감내경편|내경편內景篇]]」을 언해하여 필사한 책이다. 한문본은 총 25권 25책의 분량인데, 언해본은 그 중 「[[동의보감내경편|내경편]]」 권1·3·5만 남아있다. 앞에 전체의 목차를 한글로 옮긴 것으로 미루어 당초 전체를 언해할 목적이었으나 어떤 사정에 의해 「[[동의보감내경편|내경편]]」만 언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언해 시기와 언해 담당자는 분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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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본은 총 25권 25책의 분량인데, 언해본은 그 중 「[[동의보감내경편|내경편]]」 권1·3·5만 남아있다. 앞에 전체의 목차를 한글로 옮긴 것으로 미루어 당초 전체를 언해할 목적이었으나 어떤 사정에 의해 「[[동의보감내경편|내경편]]」만 언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언해 시기와 언해 담당자는 분명하지 않다.
장서각 소장본이 유일한데, 종이나 장정으로 보아 왕실에서 편찬한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전체를 언해하여 일반 백성에게 보급하려는 목적보다는 의녀 등이 왕실에서 『[[동의보감]]』을 습득하고 활용하려는 목적에서 언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85쪽. 「[[동의보감내경편|내경편]]」의 언해본 중 잔존하는 부분에 대해 도록에서는 권1·2라고 하였으나, 권1·3·5로 수정함. 이래호, 「장서각 소장 한글 필사본《동의보감 내경편》의 국어학적 고찰」, 『장서각』21,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198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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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소장본이 유일한데, 종이나 장정으로 보아 왕실에서 편찬한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전체를 언해하여 일반 백성에게 보급하려는 목적보다는 의녀 등이 왕실에서 『[[동의보감]]』을 습득하고 활용하려는 목적에서 언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85쪽. 「[[동의보감내경편|내경편]]」의 언해본 중 잔존하는 부분에 대해 도록에서는 권1·2라고 하였으나, 권1·3·5로 수정함. 이래호, 「장서각 소장 한글 필사본《동의보감 내경편》의 국어학적 고찰」, 『장서각』21,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198쪽.</REF>
  
 
===[[동의보감내경편언해]]의 특징===
 
===[[동의보감내경편언해]]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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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내경편언해]]의 저술배경===
 
===[[동의보감내경편언해]]의 저술배경===
 
이 책은 [[창덕궁 낙선재]]로 옮겨진 [[창덕궁 연경당]]의 한글 자료로 『[[연경당서책목록]]』에서도 그 모습이 확인된다. 왕실에서 편찬되는 한글 문헌은 주로 왕실의 여성을 위한 것이었다. 낙선재의 다른 소설류와 달리 『[[동의보감]]』은 독자층이 넓지 않아 필요한 부분만 언해되어 전해져오는 것으로 추측된다. 『[[동의보감]]』 전체를 언해하였다는 기록이 없거니와 주 독차층이었을 왕실 여성이 전문적인 『[[동의보감]]』의 내용 전부를 볼 이유도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내경편]]」은 오장육부의 병증과 치료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양생(養生:음식, 운동, 정서 등의 생활 규칙으로 몸을 건강하게 하는 법)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조선 후기 양생사상이 널리 유행하였는데 이와 관련하여 궁중 여성들이 관심을 가지고 『[[동의보감내경편언해]]』를 필사한 것으로 추측된다.<ref>이래호, 「한글본 동의보감의 언해 양상과 국어학적 특징」, 『인문학연구』22,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2, 310-316쪽.</ref>
 
이 책은 [[창덕궁 낙선재]]로 옮겨진 [[창덕궁 연경당]]의 한글 자료로 『[[연경당서책목록]]』에서도 그 모습이 확인된다. 왕실에서 편찬되는 한글 문헌은 주로 왕실의 여성을 위한 것이었다. 낙선재의 다른 소설류와 달리 『[[동의보감]]』은 독자층이 넓지 않아 필요한 부분만 언해되어 전해져오는 것으로 추측된다. 『[[동의보감]]』 전체를 언해하였다는 기록이 없거니와 주 독차층이었을 왕실 여성이 전문적인 『[[동의보감]]』의 내용 전부를 볼 이유도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내경편]]」은 오장육부의 병증과 치료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양생(養生:음식, 운동, 정서 등의 생활 규칙으로 몸을 건강하게 하는 법)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조선 후기 양생사상이 널리 유행하였는데 이와 관련하여 궁중 여성들이 관심을 가지고 『[[동의보감내경편언해]]』를 필사한 것으로 추측된다.<ref>이래호, 「한글본 동의보감의 언해 양상과 국어학적 특징」, 『인문학연구』22,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2, 310-316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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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서]]와 [[동의보감총목]]이 제시되고 난 뒤 권1이 시작된다. 서문에서 '(*옛한글)우리 션종대왕계오셔 몸 다스리는 법으로 ㅄㅓ 뭇 사람 건지는 어질믈 밀위샤 의학에 마음을 두시고 백셩의 셩을 지념하샤 병신년간(1596년, 선조 29)의 명하샤 태의 신 허준을 브라샤 하교왈(*옛한글)"이라 하고 있다. 또 '(*옛한글)쥰이 믈너가 션배 의원에 뎡쟉과 태의에 양녜슈와 김응탁 니명원 뎡녜냠 등으로 더브러 ㅽㅏ 모도여 대강을 닐위더니(*옛한글)' 라고 한 것을 보면 1596년 [[허준]]이 [[선조]]의 명을 받아 유의(儒醫:선비이면서 의학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 [[정작|정작(鄭碏)]], 태의 [[양예수|양예수(陽醴壽)]], [[김응탁|김응탁(金應鐸)]] [[이명원|이명원(李命源)]], [[정예남|정예남(鄭禮男)]] 등과 함께 『[[동의보감]]』을 편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유재란으로 편찬이 중단되었다. 서문에서 '(*옛한글)허쥰의게 하교하샤 혼자 챤셩하라(*옛한글)'라고 하고 있는 것을 통해 허준이 『동의보감』편찬을 다시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옛한글)셩샹계오셔 즉위하신지 삼년 경술(1610년, 광해군 3) 쥰이 비로소 역사를 밧쳐 진어 하매 뎨목을 동의보감이라 하니 므랏 이십오권이라 … 또 뎨 됴신 니뎡귀랄 명하샤 셔문을 지어 책 머리에 더하라 … 만력 사십일년(1613년) 십일월 일 내의원 봉교간행(*옛한글)' 라고 한 것으로 보아 서문은 1613년 니뎡귀에 의해 쓰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니뎡귀는 [[이정구|이정구(李廷龜)]]를 말한다.) <ref>김목한 등, 『장서각한글자료해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85쪽.</ref>
 
[[동의보감서]]와 [[동의보감총목]]이 제시되고 난 뒤 권1이 시작된다. 서문에서 '(*옛한글)우리 션종대왕계오셔 몸 다스리는 법으로 ㅄㅓ 뭇 사람 건지는 어질믈 밀위샤 의학에 마음을 두시고 백셩의 셩을 지념하샤 병신년간(1596년, 선조 29)의 명하샤 태의 신 허준을 브라샤 하교왈(*옛한글)"이라 하고 있다. 또 '(*옛한글)쥰이 믈너가 션배 의원에 뎡쟉과 태의에 양녜슈와 김응탁 니명원 뎡녜냠 등으로 더브러 ㅽㅏ 모도여 대강을 닐위더니(*옛한글)' 라고 한 것을 보면 1596년 [[허준]]이 [[선조]]의 명을 받아 유의(儒醫:선비이면서 의학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 [[정작|정작(鄭碏)]], 태의 [[양예수|양예수(陽醴壽)]], [[김응탁|김응탁(金應鐸)]] [[이명원|이명원(李命源)]], [[정예남|정예남(鄭禮男)]] 등과 함께 『[[동의보감]]』을 편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유재란으로 편찬이 중단되었다. 서문에서 '(*옛한글)허쥰의게 하교하샤 혼자 챤셩하라(*옛한글)'라고 하고 있는 것을 통해 허준이 『동의보감』편찬을 다시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옛한글)셩샹계오셔 즉위하신지 삼년 경술(1610년, 광해군 3) 쥰이 비로소 역사를 밧쳐 진어 하매 뎨목을 동의보감이라 하니 므랏 이십오권이라 … 또 뎨 됴신 니뎡귀랄 명하샤 셔문을 지어 책 머리에 더하라 … 만력 사십일년(1613년) 십일월 일 내의원 봉교간행(*옛한글)' 라고 한 것으로 보아 서문은 1613년 니뎡귀에 의해 쓰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니뎡귀는 [[이정구|이정구(李廷龜)]]를 말한다.) <ref>김목한 등, 『장서각한글자료해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85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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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읽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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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단행본
*#김목한 등, 『장서각한글자료해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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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한 등, 『장서각한글자료해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논문
 
*논문
*#옥영정, 「동의보감 초간본의 현황과 한글본 동의보감의 특징」,  『동의보감 국제학술 심포지엄』, 한국한의학연구원·한국의사학회 공동주관,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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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영정, 「동의보감 초간본의 현황과 한글본 동의보감의 특징」,  『동의보감 국제학술 심포지엄』, 한국한의학연구원·한국의사학회 공동주관,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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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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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웅석, "[http://jsg.aks.ac.kr/data/dir/bookView.do?callNum=K3-327 동의보감내경편]", <html><online style="color:purple">『장서각』<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유용한 정보===
 
===유용한 정보===
*차웅석, "[http://jsg.aks.ac.kr/data/dir/bookView.do?callNum=K3-327 동의보감내경편]", <html><online style="color:purple">『장서각』<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안상우, "[http://www.mjmedi.com/news/articleView.html?idxno=27010 여성을 위해 풀어쓴 언해 의약서]", 『민족의학신문』, 작성일: 2014년 4월 11일.
 
*안상우, "[http://www.mjmedi.com/news/articleView.html?idxno=27010 여성을 위해 풀어쓴 언해 의약서]", 『민족의학신문』, 작성일: 2014년 4월 11일.
  
[[분류:한글고문서]][[분류:전시자료]][[분류: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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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글고문서]][[분류:전시자료]][[분류:문헌]]
[[분류:이혜영]] [[분류:교열/수정완료]]
 

2017년 12월 8일 (금) 01:36 기준 최신판

동의보감내경편언해
한글팀 동의보감내경편언해 01 동의보감내경편언해 메인.jpg
한자명칭 東醫寶鑑內景篇諺解
영문명칭 A Korean annotated copy of Heo Jun’s Donguibogam (Principles and Practice ofEastern Medicine)
작자 미상
작성시기 19세기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청구기호 3-327
유형 고서
크기(세로×가로) 34.8×23㎝
판본 필사본
수량 3冊
표기문자 한글


정의

허준이 쓴 『동의보감東醫寶鑑』의 「내경편內景篇」을 언해하여 필사한 책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한문본은 총 25권 25책의 분량인데, 언해본은 그 중 「내경편」 권1·3·5만 남아있다. 앞에 전체의 목차를 한글로 옮긴 것으로 미루어 당초 전체를 언해할 목적이었으나 어떤 사정에 의해 「내경편」만 언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언해 시기와 언해 담당자는 분명하지 않다. 장서각 소장본이 유일한데, 종이나 장정으로 보아 왕실에서 편찬한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전체를 언해하여 일반 백성에게 보급하려는 목적보다는 의녀 등이 왕실에서 『동의보감』을 습득하고 활용하려는 목적에서 언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

동의보감내경편언해의 특징

장서각에 소장된 『동의보감내경편언해』는 권1, 3, 5로 총 3책이다. 표기방식이 18세기 중반 이후 부터 19세기 초반까지의 특징과 대체로 일치한다는 점, 어휘·문법적 특징이 19세기 중반과 일치하는 점으로 보아 19세기 중반이나 그 이후에 언해(한글번역)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 다른 특징은 한문본에는 없는 협주(夾註:두 줄로 작게 적은 주석)를 달았다는 점이다. 독자가 주로 한글을 사용하는 계층(여성)이었음을 배려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문본과 비교하여 잘못된 언해가 종종 보이는데, 언해자가 한의학에 대한 지식이 깊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빠뜨린 부분도 있고 잘못읽은 한자음도 많다는 점으로 보아 언해작업이 정밀하게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추측된다. 왕실문헌의 특징인 공격지(空隔紙:표지와 본문 사이에 끼워 넣은 빈 종이)가 있고 글씨체가 발흘림체의 전형적인 궁체인 것으로 보아 필사는 궁중의 여성(의녀)이 했을 것으로 보인다.

동의보감내경편언해의 저술배경

이 책은 창덕궁 낙선재로 옮겨진 창덕궁 연경당의 한글 자료로 『연경당서책목록』에서도 그 모습이 확인된다. 왕실에서 편찬되는 한글 문헌은 주로 왕실의 여성을 위한 것이었다. 낙선재의 다른 소설류와 달리 『동의보감』은 독자층이 넓지 않아 필요한 부분만 언해되어 전해져오는 것으로 추측된다. 『동의보감』 전체를 언해하였다는 기록이 없거니와 주 독차층이었을 왕실 여성이 전문적인 『동의보감』의 내용 전부를 볼 이유도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내경편」은 오장육부의 병증과 치료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양생(養生:음식, 운동, 정서 등의 생활 규칙으로 몸을 건강하게 하는 법)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조선 후기 양생사상이 널리 유행하였는데 이와 관련하여 궁중 여성들이 관심을 가지고 『동의보감내경편언해』를 필사한 것으로 추측된다.[3]


연계 자원 보러 가기
의서를 언해하여 백성의 목숨을 구하다


지식 관계망

  • 의서를 언해하여 백성의 목숨을 구하다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동의보감내경편언해 창덕궁 낙선재 A는 B에 있었다 A ekc:formerLocation B
창덕궁 낙선재 창덕궁 연경당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동의보감내경편언해 동의보감내경편 A는 B의 언해본이다 A edm:isDerivativeOf B
동의보감 동의보감내경편 A는 B에 포함된다 A dcterms:isPartOf B
연경당서책목록 동의보감내경편언해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양생 동의보감내경편언해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창덕궁 연경당 동의보감내경편언해 A는 B에 있었다 A ekc:formerLocation B
연경당서책목록 창덕궁 연경당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동의보감내경편언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동의보감 허준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610년 허준동의보감을 저술하였다.
19세기 동의보감내경편언해가 필사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39197 127.054387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동의보감내경편언해를 소장하였다.
37.582695 126.991537 동의보감내경편언해창덕궁 연경당에 보관되었다.
37.578602 126.993544 동의보감내경편언해창덕궁 낙선재에 보관되었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85쪽. 「내경편」의 언해본 중 잔존하는 부분에 대해 도록에서는 권1·2라고 하였으나, 권1·3·5로 수정함. 이래호, 「장서각 소장 한글 필사본《동의보감 내경편》의 국어학적 고찰」, 『장서각』21,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198쪽.
  2. 이래호, 「장서각 소장 한글 필사본『동의보감 내경편』의 국어학적 고찰」, 『장서각』21,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198쪽.
  3. 이래호, 「한글본 동의보감의 언해 양상과 국어학적 특징」, 『인문학연구』22,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2, 310-316쪽.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단행본
    • 김목한 등, 『장서각한글자료해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 논문
    • 옥영정, 「동의보감 초간본의 현황과 한글본 동의보감의 특징」, 『동의보감 국제학술 심포지엄』, 한국한의학연구원·한국의사학회 공동주관, 2011.
  • 웹자원

유용한 정보